2021년 일본 라면 기업 니신이 인도에서 출시한 ‘激(게키)’ 라면. ⓒ전명윤 제공

요즘 인도는 매년 방문해도 매번 새로운 게 보일 정도로 변화가 가파르다. 특히 최근에는 인스턴트라면 삼국지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라면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 이제 버스 정류장에서 라면 끓여 파는 가판대 한두 개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도에 인스턴트라면이 처음 선보인 건 1983년이다. 당시만 해도 조리를 시작하고 2분 만에 먹을 수 있다는 신속성은 슬로푸드의 나라 인도에서는 전혀 어필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성해방의 관점으로 라면의 보급을 바라보는 시선은 있었다. 그들에게 라면은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인도에서는 수저로 떠먹기 편할 정도로 면을 부숴서 라면을 조리한다. 한국식으로 라면을 끓여주면 이상하다고 한다. 탕면이 아닌 조림면인 데다 면도 부숴서 끓이지만 그래도 라면은 라면이라고 종종 먹게 된다. 특히 라다크같이 먹을 게 없는 동네에서는 한동안 주식이기도 했다. 영화 〈세 얼간이〉의 촬영지로 유명한 판공초의 절경을 볼 때도 나는 인도 라면을 먹고 있었다.

후루룩 먹는 것에 매력 못 느끼는 인도인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라면은 ‘매기’라는 브랜드다. 90%라는 절대적 시장점유율을 지닌 매기에 대해 실질적 경쟁자로 등장한 건 일본의 ‘니신’이다. 참고로 니신은 1991년부터 인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자체 판매망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선 건 2014년 오디샤주에 컵누들 공장을 완공하면서부터다.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도 인도인들이 라면 먹는 양상이 좀 기괴했던지 니신은 졸임이 아닌 탕면이 진짜 컵라면의 맛이라며 홍보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오뚜기가 ‘베지터블 진라면’을 만들어 2018부터 인도 시장 공략을 시작했다. 결과는? 탕면들은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국수를 후루룩거리며 먹는 것에 어떠한 매력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오뚜기도 마찬가지였다. 한·일 라면의 강자들은 인도 시장의 예상 밖 반응에 당황했고, 니신이 곧 놀랄 만한 ‘신상’을 낸다는 이야기가 이쪽 업계에 파다했다.

2021년, 절치부심하던 니신은 꽤 재미있는 신상을 발매했다. ‘게키(激)’ 라면이라 불린 이 신상 라면의 포장지에는 놀랍게도 ‘엄청’이라는 한글이 적혀 있었으며 맛과 제법은 한국의 ‘불닭볶음면’과 흡사했다. 천하의 니신이 한국 불닭볶음면을 카피한 것이다. 처음 게키 라면의 포장지를 봤을 때 어떤 인도 기업이 니신이라는 브랜드와 한국 라면의 느낌을 저열하게 ‘복붙’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니신이 만든 정품이었다.

동아시아인에게 라면은 탕면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한국 라면이라고 하면 주로 신라면을 꼽는다. 반면 탕면이 아닌 졸임 혹은 비빔면 위주로 면을 먹는 나라에 가서 한국 라면을 이야기하면 열이면 여덟아홉은 불닭볶음면 이야기를 한다. 인도에는 탕면 문화가 없다. 니신은 오랜 기간 그들 스타일의 면을 팔려다 이제야 인도인들의 기호를 발견했고, 졸임면이라는 기호와 매운맛을 좋아하는 인도인 취향에 맞춰 컵라면 종가라는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한국 라면을 카피했다.

한국 회사들은 세계적인 대히트 상품(불닭볶음면)의 원조이면서도 여전히 한국인 입맛을 인도인에게 전파하려 한다. 우리 것에 대한 완고함이 라면 사업에서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인도에서 라면 대전은 이제 시작이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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