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히말라야를 넘지 못했다. 중국 신장 지방에서 탄생해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서쪽으로는 비록 중동 지역을 건너뛰긴 했으나 이탈리아까지 전파됐다. 그러나 남행열차를 타는 데는 실패했다. 폭 200~400㎞에 길이 2500㎞의 거대한 얼음 장벽인 히말라야는 인도아대륙(인도반도)을 북쪽의 침입자로부터도 지켜냈지만, 후루룩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요리의 전파도 막아낸 셈이다.
인도 요리는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취약점이 있다. 국수가 없거니와 국물 요리도 없다. 고향 음식에 대한 희구는 사람마다 다른 편인데 나에겐 김치의 부재보다 탕면 요리의 결핍이 가장 괴로웠다.
빵처럼 먹는 국수, 이디야팜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 진탕 술을 마신 다음 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무리 텅 빈 거리를 헤매봐야 마땅한 먹거리를 찾지 못했을 때 나는 실의에 빠진다. 인도인들이 마시는 요구르트 음료 ‘라씨’가 숙취에 좋다며 권하지만 속이 부대낄 때 이국의 먹거리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숙취의 시간이 길어지고,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지니 여행 또한 순조로울 리 없고, 해장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술을 덜 마시니 여행의 기쁨 또한 반감된다. 국물에 빠뜨린 국수가 인도에 있었다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텐데, 국수는 대체 왜 히말라야를 넘지 못했을까? 도대체 이 넓은 땅에 자연발생적인 국수는 없는 걸까?
티베트는 인도 기준으로는 히말라야 너머에 있다. 국수는 히말라야를 못 넘었을 뿐 이 고원지대까지는 상륙했다. 티베트 음식 툭파는 우리네 탕면에 가깝고 템툭은 수제비랑 비슷하다. 인도에는 나라가 망한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된 티베트 난민 8만5000명이 살고 있는데 그나마 그들 덕에 툭파나 템툭이라도 먹을 수 있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티베트 난민들이 운영하는 식당만 보면 고향 집을 찾은 듯 반갑게 문을 두드린다.
그저 멀건 채수에 찰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인도산 밀가루로 만든 국수 혹은 밀가루 반죽이 들어가 있지만, 그래도 반갑다. 여기서 잘 만든 육수를 찾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먹다 보면 그저 소금과 후춧가루로만 간을 해도 맛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게 인도 남서부 케랄라 사람들이 먹는 이디야팜(사진)이라는 주식이다. 이 요리는 영락없이 메밀국수를 닮았다(이디야팜은 쌀로 만든다.)
흥분해서 이걸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어보니 종업원이 주방 한구석을 가리킨다. 금속 틀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그 안에 반죽을 넣어 사람이 프레스로 당긴다. 맞다. 우리가 냉면을 뽑을 때 보던 광경이다. 그렇게 뽑은 면을 찬물에 헹궈서 찰기를 더하는 것까진 맞는데, 그다음부터가 달랐다. 면을 손바닥만한 크기로 차곡차곡 쌓은 후 그대로 말렸다. 나는 애가 닳았다. 아니 저렇게 하면 면이 엉겨붙을 텐데. 허탈해진 나는 요리사에게 물었다. “이건 어찌 먹나요?” 요리사는 빙긋 웃더니 시범을 보였다. 뭉쳐진 국수 가닥을 손으로 찢은 뒤 커리에 담가 먹었다. 힘들게 뺀 면을 왜 저리 먹는지 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쯤 되니 ‘인도에 면은 존재하지만, 먹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탕면은 확실히 없다’로 정리해야만 했다.
참고로 이디야팜은 스리랑카나 말레이반도에서는 스트링 호퍼라고 부르는데 커리와 곁들이는 간편식으로 꽤 퍼져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확실히 이 요리가 인도에서 왔다는 걸 명시하지만, 막상 본토인 인도에서는 이제야 지역 요리 탐구가 시작되는 중이라 이디야팜의 기원에 대한 자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여행작가가 공부해야 할 것이 은근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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