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ch Country?”라고 라주가 물었다. 잠시 내가 멈칫하자 라주의 친구 카말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Which Country belong to you?”라고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는 말인 것 같아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한 그들이 환히 웃어줬다. ‘휘치 컨츄리’는 인도식 영어다. 모든 인도인이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거리에서 만난 인도인들에게는 이게 인도 표준영어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말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영어 회화는 인도에서 시작됐다. 인도의 길거리에서 영어를 배운 탓에 미국 유학 출신 한국인들이 인도식 영어에 쩔쩔맬 때 유창하게 인도인과 대화할 수 있었다. 반대로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미국식 영어는 좀처럼 듣기가 되지 않는다. 물론 내 영어도 미국인들이 유독 못 알아듣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어 사용 국가
예전에 인도 관광청으로부터 여행작가로서 내 신원을 증명하는 문서를 받을 일이 있었다. 원래 호텔 취재가 까다로운 탓이었다. 그런 증명서라도 받아 호텔 측에 보여주고 쉽게 취재를 하려던 일종의 꼼수였다. 인도 관광청의 관리는 영어로 문서를 만들어줬다. 내가 난처해하며 물었다.
“이러면 영어를 모르는 인도인은 읽을 수가 없잖아? 힌디어 문서도 만들어줘.”
“무슨 소리야? 모든 인도인은 영어를 읽고 쓸 수 있어. 이거면 충분해.”
“아니야 시골에 가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극히 드물고, 설령 말을 안다 해도 글을 못 읽는 사람이 허다해.”
“이거 봐, 너 인도인이야? 난 인도인이야. 인도는 우리나라라고. 아무렴 내가 우리나라를 모르겠어? 자, 해달라는 거 해줬으니 이제 가보라고.”
관리는 단호했다. 당신이야 좋은 집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만 살았으니 당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잘하는 거 아니냐고 항변할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영어로 만든 그 문서를 내 앞에서 박박 찢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한국식 영어를 ‘콩글리시’라고 하듯 인도식 영어를 ‘힝글리시’라고 부른다. 우리끼리 키득대는 수준인 콩글리시와 달리 힝글리시는 영어 세계에서 확고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인디언 잉글리시라는 별도의 표제어가 있다. 이 안에는 힌디어권에서 한국의 ‘거시기’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표현인 ‘아차(Achcha)’ 같은 단어도 등재되어 있다. 매년 인디언 잉글리시 단어도 추가된다.
엄청난 인구에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끌며 세계경제에서 지분이 점점 확대되는 나라이다 보니 곧 인도 영어가 영국 영어의 지위 정도는 위협할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선도 점점 늘고 있다. 인도 내에서만 영어 능통자가 2억명이나 되고, 해외의 인도 교민 3200만명까지 합치면 미국 인구의 70%에 육박하는 숫자다. 즉 인도는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어 사용 국가란 이야기다.
20세기 초까지 미국 영어는 영국 바깥 변방 언어 취급을 당했지만, 지금 우리는 영어라고만 부를 뿐 사실상 미국어를 배운다. 미국식 발음 또한 표준 취급을 받는다. 오늘날 인도는 막대한 인구 외에 발리우드라는 문화상품까지 거느리고 있다. ‘배고프다고?’라는 뜻의 힝글리시 ‘헝그리 꺄 헤(Hungry kya hai)?’라는 말을 알아들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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