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기회다 - 행복한 방구석 ⑦ 게임

자녀들이 빠진 게임의 세계에 입문해볼 수 있도록 이경혁 게임평론가가 부모도 해볼 만한 당대의 게임 화제작을 알려준다. 부모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게임, 동시에 교양과 사회적 메시지가 포함된 게임들을 두루 망라했다. 방구석 격리의 시대에 진가를 빛내는 디지털 게임의 세계에 첫발을 들이기에 어렵지 않은 구성이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현재 기기를 구하기 어렵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플레이 투게더’ 캠페인을 제시했다. 온라인 디지털 게임은 같이 놀면서도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 훌륭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진입장벽이 좀 있는 매체다. 고사양 게임에는 스펙 좋은 PC나 게임기가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설치나 한글패치 추가 같은 일들은 ‘컴알못’에겐 넘기 힘든 장벽이다.

그렇기에 게임 추천은 덥석덥석 내가 재미있었던 게임을 꺼내는 일이 아니다. 독자가 가지고 있는 게임 환경, 게임을 하는 목적, 스스로의 게임 경험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에 두고 추천 게임을 선정했다.

특히 중심에 둔 그룹은 본인은 게임을 잘 모르지만 자녀들이 신나게 게임하는 걸 보며 궁금해했을 그룹이다. 본인이 게임을 잘 알면 알아서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덥석 자녀가 하는 게임을 잡으면 이해하기도 정붙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대 화제작을 포함하되, 하이엔드급 장비를 요구하는 게임들은 제외해 접근성을 고려했다. 자녀의 게임이 궁금한 학부모 입장을 생각하면서도 결국 게임의 즐거움은 자기 스스로를 향한 위안이기에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게임들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동시에 교양과 사회적 메시지가 포함된 게임들도 포착해보고자 했다. 아무쪼록 방구석 격리의 시대, 진가를 빛내는 디지털 게임의 세계에 첫발을 들이기가 어렵지 않은 구성이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플레비 퀘스트〉(2020, PC, 전략 시뮬레이션)

어지간한 게임은 다 해본 게임 마니아에게는 최신작이면서도 재미에 비해 덜 알려진 작품이 요긴할 것이다. 근 8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올해 출시된 이 게임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에 중세 십자군 전쟁이라는 소재를 버무렸다.

비슷한 장르와 주제를 가진 〈토탈 워〉 등의 대형 시리즈보다 〈플레비 퀘스트〉는 한결 가볍고 경쾌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충실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룸 술탄국-시칠리아 왕국-신성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메인 시나리오는 종교와 정치, 경제가 얽혀 만들어내는 중세 왕국들의 외교전 한복판에 플레이어의 선택을 갖다 앉힌다.

등장인물들의 패러디 넘치는 대사는 호불호가 갈리며, 모바일 게임에 가까운 듯한 전투 운영방식은 유닛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단순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단순하기에 오히려 가벼운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이 〈플레비 퀘스트〉의 가장 큰 덕목인 듯하다. 이만큼의 가벼움에 저만큼의 역사를 담아냈다는 ‘가성비’로는 상당한 성과.

〈툼 레이더 리부트〉(2013, PC/콘솔, 액션 어드벤처)

컴퓨터를 사줬더니 오락만 해서 화난다? 잠시 PC를 빼앗아 내가 뭔가 해보고 싶지만 막상 무슨 게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이 게임을 검색해보자. ‘겜알못’도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을, ‘툼 레이더’ 시리즈의 최신 리부트 3부작이다.

섹시 심벌로만 알려졌던 라라 크로프트가 주인공인 이 시리즈는 2013년 이후 전격적인 리부트를 통해 과도한 섹스어필을 벗어던지고 좀 더 현실적인 여성 탐험가의 모험담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총 3편이 출시된 리부트 시리즈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보여줬던 미궁과 퍼즐, 고대의 신비한 힘 속에 숨겨진 보물과 비밀이라는 두근거리는 모험의 이야기를 플레이어 스스로 직접 이끌어갈 수 있는 훌륭한 무대로 손색이 없다.

겜알못도 초반 튜토리얼만 잘 따라가면 어렵지 않아 적절한 난이도로 추천작이 되었다. 줄거리도 복잡하지 않고 퍼즐의 재미도 쏠쏠하다. 여성 캐릭터가 플레이의 외곽이 아닌 중심에서 직접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도 상당한 납득과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열대우림 대정글 속의 비밀을 향하는 여정은 여행이 제한된 시대를 버텨내는 훌륭한 대체재.

〈모여봐요 동물의 숲〉(2020, 닌텐도 스위치, 샌드박스)

상반기를 휩쓸며 간혹 사회면까지도 오르내리는 화제의 그 게임 맞다. 코로나19 이후 물동량이 멎은 상태에서 발생한 ‘동숲 붐’은 앞선 발매작인 〈링피트 어드벤처〉와 함께 닌텐도 스위치의 대규모 품절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붐을 이뤘으니, 가히 올해 상반기의 게임은 〈동물의 숲〉이라 부를 만하다.

치열한 경쟁, 손에 땀을 쥐는 승부와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섬에서 과일 따고 낚시하며 동물 친구들과 같이 노는 게임이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평화가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제는 품절사태를 뚫고 기기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 게임은 전혀 어렵지 않으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하기엔 무 투자, 집 대출금 같은 금융 요소가 있어서 다소 설명이 필요할 수 있다. 학부모 유저들은 낮에 아이들이 망쳐놓은 섬을 밤에 복구하는 식으로 플레이하기도 한다. 방콕에서 무인도의 유유자적을 느끼기엔 확실히 이만한 선택이 없다.

〈리그 오브 레전드〉(2009, PC, 온라인 대전)

〈리그 오브 레전드〉는 PC방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게임이다.

자녀가 하는 게임이 뭔지 알고 싶은 1순위 게임. 세계 최대 e스포츠의 중심이자 한국 PC방에서 근 10년간 거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바로 그, ‘롤(LOL)’이다.

요구하는 컴퓨터 사양이 높지 않고, 기본적으로 무료라 놀라울 정도의 손쉬운 접근성을 자랑한다. 어지간한 노트북에서도 돌아갈 정도. 하지만 막상 게임에 들어가면 게임 규칙이 초보자에게 가혹할 정도로 높아서 당황스럽다.

복잡해 보이는 아이템 조합에 눈이 돌아가다 보면 어두운 풀숲에서 적이 튀어나와 나를 도륙하곤 사라진다. 아군은 그때마다 위로나 조언은커녕 ‘님 뭐함?’은 양반인 조롱과 타박만 쏟아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이 게임을 상징하는 이른바 ‘부모 욕’은 당신에겐 별 타격이 없을 수도 있겠다(욕설은 과거보다는 강하게 단속해 좀 줄어든 편이다).

부모 세대에겐 좀 어렵고 힘든 게임이겠지만, 힘든 과정을 뚫고 들어가 보면 청소년 세대가 무엇에 열광하고 화내는지 힌트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예 그 경쟁의 재미에 당신이 푹 빠져버릴 가능성도 결코 적지 않다. 괜히 전 세계를 몇 년간 휩쓸고 있는 게임이 아니다.

〈마인크래프트〉(2011, PC/모바일/엑스박스/닌텐도 스위치, 샌드박스)

〈마인크래프트〉의 피라미드는 하루아침에 지어지지 않는다.

자녀가 좀 더 어리다면 ‘롤’보다는 〈마인크래프트〉다. 노래 ‘네모의 꿈’을 연상케 하는 온통 네모난 것들 가득한 숲과 강 속에서 뚝딱거리는 재미가 이 게임의 핵심이다. 그냥 사이버 블록놀이 아니야?라고 생각하기엔 그 블록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 크다.

방과후 교실 등에서 〈마인크래프트〉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지며 어린이용 게임으로 회자되지만, 큰 오산이다. 〈에반게리온〉의 제3도쿄시를 게임 안에 만들기도 하고, 언론 검열이 심한 국가에 검열자료 열람이 가능한 디지털 도서관을 짓는 일도 할 수 있다.

지루한 시간을 가장 빠르게 잡아먹는 놀이가 뭔가를 만드는 공작 놀이다. 손끝의 촉감은 없지만 더 많은 기능과 가능성을 제공하는 〈마인크래프트〉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근지러워서라도 뭔가 만들어보겠다는 욕망이 솟구칠 것이다. 물론 대부분 초심자가 꿈꾸는 섣부른 욕망은 빠른 포기를 낳으므로 천천히 꾸준하게 적응해보자. 피라미드는 하루아침에 지어지는 게 아니다.

〈레플리카〉(2016, PC/모바일, 어드벤처)

풍부한 메시지와 감동을 주는 이른바 AAA급 게임은 고성능 PC나 콘솔 기기를 요구하지만, 스마트폰이나 사무용 PC로도 묵직한 이야기를 못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인디 게임 〈레플리카〉가 이 분야에선 대표적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영감을 얻은 캐나다 소설 〈리틀 브라더〉는 제작자 소미(Somi)에게 또 다른 게임의 영감을 제공했다. 게임은 가상의 스마트폰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독재국가 속 한 개인이 감금 상태에서 마주하는 여러 갈등과 선택 상황을 주의 깊게 다룬다.

박근혜 정권 당시 출시되어 주목받았던 이 게임은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 당시 하루 무료 배포로 뚜렷한 정치적 입장을 보이며 게임의 사회적 메시징이라는 측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게임 경험이 적은 사람들도 손쉽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지만, 퍼즐과 해석이 평이한 수준은 아니다.

〈궁수의 전설〉(2019, 모바일, 슈팅)

스마트폰에는 수많은 게임이 광고로 쏟아지지만, 막상 설치해보면 어딘가 비슷비슷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류들의 홍수 속에 2019년 액션 게임 하나가 유독 빛났는데, 〈궁수의 전설〉이다.

주인공 캐릭터는 그냥 손가락을 화면에 얹고 밀면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손을 떼면 알아서 자동으로 무기를 발사한다. 별다른 사전지식이 없어도 충분한 이 단순 조작은 그러나 유의미한 난이도 앞에서 상당한 재미로 변모한다.

그 쉬운 조작에도 불구하고 매 스테이지는 녹록지 않은 집중도를 요구하며, 진행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내 캐릭터와 적 구성은 적정한 밸런스를 잃지 않아 도전과 달성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자동 사냥과 방치형으로 직접 게임에 개입하는 감성을 잃은 현대 모바일 게임에서 보기 드물게 나 자신의 숙련도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수작.

〈전염병 주식회사〉(2012, PC/콘솔/모바일, 전략 시뮬레이션)

날씨 좋은 계절에 방콕이라니, 코로나19에 대한 자발적 격리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럴 땐 방구석에서 진짜 코로나를 다뤄볼 수 있는 게임을 해보는 것도 한 방법.

〈전염병 주식회사〉는 플레이어가 직접 전염병의 시점에 선다. 전 지구의 인류를 내 병원체에 감염시켜 살상하면 승리하는 게임의 규칙은 바이러스, 진균류, 나노 생물무기, 박테리아 등 수많은 실제 병원체의 특성을 살리면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재채기와 설사 증상을 섞어 연구진의 바지에 설사를 터뜨려 연구 속도를 늦춘다든지 하는 개그 묘사와 함께 팬데믹으로 인해 연기되는 올림픽 일정 같은 현실적 섬뜩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무엇보다 인간이 손을 얼마나 열심히 씻느냐로 난이도가 구분된다는 점은 팬데믹 시대를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브롤스타즈〉(2018, 모바일, 온라인 대전)

청소년에게 〈리그 오브 레전드〉가 있다면, 초등생에게는 이 게임이 있다. 스마트폰에서도 충분히 온라인 멀티플레이 대전의 긴장감을 즐길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 슈퍼셀의 히트작 〈브롤스타즈〉다.

터치스크린 조작이라 세밀하기 어렵지만, 그 어려운 걸 또 해내는 실력자들이 온라인에 널린 세계다. 3대 3의 오리지널 게임 구조는 전형적으로 ‘내가 잘해도 팀원이 망치면 망하는’ 온라인 대전의 세계를 묘사하는 데 차고 넘치며, 캐릭터마다 서로 다른 사거리와 공격력, 특수기는 아군의 절묘한 하모니를 만들며 합이 맞았을 때 터지는 승리의 쾌감을 만끽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물론 그 콤보가 적에게서 터져나오면 화가 나는 것도 사실).

〈브롤스타즈〉는 아이들이 많이 한다고 하지만, 나이와 성별 없이 누구나 재미를 느낄 만한 게임이다. 무엇보다 〈브롤스타즈〉의 장점은 스마트폰으로 누워서 뒹굴거리며 온라인 대전의 팽팽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신을 위한 팁 한 가지. 연패를 겪고 있다면 잠깐 쉬어라. 멘탈 깨진다.

기자명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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