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기회다 - 행복한 방구석  국악

김문성 국악평론가가 성악 발성이나 록 발성 가수 못지않게 통쾌하게 지르는 속 시원한 국악 창법을 보여주는 송가인 등 국악계 출신 대중가수들의 비결을 소개한다. 그냥 지르는 게 아니라 오장육부를 뒤트는 듯한 처절함과 애연함으로 한을 실어 지르는 그들의 창법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그 연원을 밝힌다.

 

 

ⓒ연합뉴스송가인 공연을 공유하는 유튜브 채널이 많은데, 그중에서 성주풀이 같은 민요를 함께 부르는 채널을 권한다.

〈미스트롯〉 진 송가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 왕중왕 김용임. 송가인과 김용임은 국악을 배운 가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트로트 열풍 속에 국악을 배운 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소위 ‘국악가요 가수’들이 요즘 예능 대세이자 오디션 대세이다. 한때는 찬밥 신세에 지나지 않던 국악이 갑자기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록 발성 가수 못지않게 지르는 통쾌하고 속 시원한 창법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지르는 게 아니라 오장육부를 뒤트는 듯한 처절함과 애연함으로 한을 실어 지른다. 물론 국악 가수라고 모두 다 지르지는 않는다. 간드러진 창법도 있다. 비음과 두성을 적절히 섞은 간드러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정통 트로트 창법 가수든, 국악 가수든 일단 지르고 본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잘 구별되지 않는다. 국악 전공 가수와 그렇지 않은 가수의 노래에 차이가 있나? 물론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동안 그 차이를 구별하는 귀명창이 되어보자. 방구석 1열, 거실 마루 스탠드석에서 리모컨을 통해서 말이다.

먼저 송가인의 노래를 검색해 감상하자. 시작은 죽어가던 트로트를 심폐소생시켜 전성기로 이끈 〈미스트롯〉이다. 송가인 공연을 공유하는 유튜브 채널이 많은데, 그중에서 트로트 말고도 성주풀이 같은 민요를 함께 부르는 채널을 권한다. 대개 지역 방송사가 중계한 지역 축제에 초대받은 송가인 편 영상들이 화질이나 음질이 좋다. 적어도 하루나 반나절 정도는 송가인에게 푹 빠져보자. 자동으로 연관 검색되는 송가인 영상은 가급적 놓치지 말고 감상할 것. 그러고 나서 유지나를 검색해보자.

송가인처럼 일찍부터 판소리를 전공했으니, 송가인과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가수다. 유지나의 대표곡인 ‘내 사랑아’ ‘고추’ ‘돈돈돈타령’을 듣다 보면 고3 시절 출전한 KBS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대상 수상자의 포스를 확실하게 느끼게 된다. 유지나 역시 송가인처럼 정통 트로트 곡을 판소리 창법을 섞어 커버한 영상이 많으니 서너 시간 투자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자.

송가인과 유지나처럼 판소리 창법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가수로는 김현정이 있다. 익히 알고 있는 ‘그녀와의 이별’과 ‘멍’ 하이라이트 부분을 부를 때 어떻게 소리를 내뱉는지 집중해서 감상하자. 한 호흡으로 쭉 밀어내는 통성 쓰임새가 느껴질 것이다. 김현정은 판소리 흥보가를 배운 이력이 있으며, 단전에서부터 소리를 끌어내 시원하게 지르는 기술의 달인이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 왕중왕 김용임.

‘뽕짝’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이쯤 되면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김용임도 국악 전공자인데 송가인과는 창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용임은 송가인이나 유지나처럼 지르고 찌르는 창법을 많이 쓰지 않는다. 왜일까? 국악이지만 판소리가 아니라 민요를 배웠기 때문이다. 김용임은 민요 창법을 쓴다. 그럼 민요 창법과 판소리 창법은 차이가 있는가? 많은 차이가 있다.

여기서 잠시 민요 창법이 돋보이는 가수들의 음악을 훑어보자. 민요 창법 트로트는 실은 우리나라 트로트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트로트가 유행가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인 1920년대 말부터 1940년대까지 유행가를 부른 가수 상당수는 권번에서 국악을 배운 기생들로, 이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이화자, 선우일선, 왕수복, 김복희, 이은파, 장옥조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이들 가운데 판소리 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르는 창법의 트로트는 볼 수 없었다. 대신 경기민요의 밝고 화사한 창법, 서도민요의 애절하고 선 굵은 창법이 트로트 속에 많이 녹아들었다.

지르는 창법의 노래는 해방 후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받은 음악들에서 나타났다. 반면 1960년대까지 여전히 트로트는 미려하고 아기자기한 민요 창법을 많이 사용했다. 이 때문에 판소리를 배운 김세레나의 데뷔 초기 노래들 역시 판소리 창법보다는 청아하고 밝은 민요 창법에 바탕하고 있다.

너무 연식이 오래되긴 했지만, 일제강점기의 선우일선, 이화자, 왕수복 같은 가수의 노래를 검색해서 감상해보고, 60년대의 김세레나, 김부자, 송춘희 그리고 하춘화까지 이어지는 가수들의 노래를 찾아서 들어보면 판소리 창법과 민요 창법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김용임으로 돌아오자. 〈나는 트로트 가수다〉 왕중왕 김용임은 민요 창법을 쓰는 트로트 가수다. 김용임은 경기여고 재학 시절 전통무용과 민요를 배웠다. 이제 〈나는 트로트 가수다〉를 쭉 검색해서 감상하자. 그리고 다시 김용임과 자동연관 검색 기능으로 뜨는 ‘가야금 열두 줄’ 같은 김용임의 노래를 들어보자. 송가인과는 확연히 다른 창법이 묻어난다. 송가인과 함께 대표적인 대중 국악 가수로서 이미지를 굳힌 송소희는 전형적인 민요 목을 쓰는 소리꾼으로, 가수보다는 소리꾼에 가깝다. 송가인과 더불어 국악가요를 널리 알리고 있는 송소희는 엄연히 말하면 트로트 가수는 아니다. 민요 소리꾼이다. ‘배 띄워라’ 같은 신민요 감상을 추천한다. 송소희 영상을 찾아 감상하다 보면 반나절은 금방 지나간다.

가요에 녹아든 민요 창법이 좀 더 궁금하다면 〈미스트롯〉에 출연했던 정미애를 검색해보자. 대구의 경기소리 명창 정은하를 사사한 정미애가 당장 송가인과 창법 측면에서 비교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다. 맑고 애절한 느낌의 경기민요 창법을 많이 구사한다. 경기민요 창법은 발음을 좀 더 미분화하지만 정미애는 발음을 민요처럼 세분화하지는 않는다. 전형성을 배제했다. 맑고 깨끗한 창법이라서 ‘장녹수’든 ‘인연’이든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민요 창법 트로트는 판소리 창법 트로트에 비해 앵기는 맛은 덜해도 질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민요 창법으로 노래한 대형 가수로는 일본을 들었다 놨다 했던 이박사가 있다. 이박사는 15세에 경기민요를 배워 그의 노래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창법을 녹여냈다. 이박사의 영상은 방구석 1열보다는 거실 마루 스탠드석을 추천한다. 몸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지칠 수 있으니 이쯤에서 답이 없는 퀴즈 하나 풀어보자.

흔히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하는데 뽕짝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2박자 계통인 트로트를 양풍으로 반주할 때 ‘쿵짝 쿵짝’ 하는 소리가 마치 ‘뽕짝 뽕짝’처럼 들려 이를 뽕짝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까지는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굳이 ‘쿵짝’ 대신 ‘뽕짝’으로 부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또 다른 설로는 ‘일본(本/뽕·일본 지칭)+작(作·노래)처럼 ‘일본 것’이라는 의미로 낮춰 부른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론가 박용구는 ‘일본+짝(덩이, 짐짝, 게다짝)’처럼 일본의 유행가를 비꼰 것이라고 했다. 어느 설이든 모두 일본 음악과 관련 있는 것으로 1960년대 이른바 ‘왜색문화’ 배격 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표현이다. 따라서 가급적 ‘뽕짝’이라는 속된 말 대신 ‘트로트’ 혹은 ‘유행가’를 쓰기로 하자.

ⓒ연합뉴스〈미스트롯〉 리허설 무대.

별 고민 없이 클릭해도 기본은 한다

국악에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도 이 정도 시간을 투자해 국악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를 감상했다면 창법과 발성상 특징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음과 음 사이를 오르고 내릴 때 발생하는 장식음 처리 방법, 비음과 목을 사용한 발성 정도에서 비교되는 국악 창법과 가요 창법에 귀가 충분히 열렸을 것이다.

이쯤 되면 국악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과감히 리모컨을 눌러보자. 그렇다고 처음부터 산조니, 흥보가니, 시나위니, 종묘제례악을 풀버전으로 감상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된다.

그래서 추천하는 몇 가지 팁.

먼저 KT 올레TV에서 방송하는 국악방송을 감상한다. 토크쇼부터 전통 국악, 퓨전 국악까지, 옛 명인부터 미래의 국악 신동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국악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놀랍게도 요즘은 국악도 뮤직비디오를 통해 곡을 소개하고 있다. 뮤직비디오라니, 조금은 어려울 수 있는 음악을 영상으로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 때문에 쏠쏠한 재미가 있다. 국악방송은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KT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감상하면 된다.

ⓒ연합뉴스국립국악원 단원들이 1월21일 ‘울울창창’ 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이 유튜브로 제공하는 온라인 일일 콘서트도 ‘꿀잼’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온라인 공연물이다. 10분 내외의 가무악 콘텐츠를 소개하는데, 요즘 가장 핫한 국악인들이 공연한다. 쉽고 지루하지 않아 국악 입문에 매우 유용하다. 전주를 여행할 때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기본은 하는 것처럼, 국립국악원 콘텐츠의 장점은 별 고민 없이 클릭해도 기본은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악이 힘들면 윤복희 혹은 김정호 같은 가수들의 영상으로 빠져나와 판소리 창법으로 부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이름 모를 소녀’ 같은 노래를 감상해보고, 그래도 성이 차지 않으면 가왕 조용필이 민요 발성으로 부르는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 영상을 감상하길 권한다.

그런 다음 다시보기를 통해 〈불후의 명곡〉의 단골 가수 박애리, 김준수의 판소리 발성 가요들을 검색하여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음치가 아닌 실력자로 나온 국악인들이 상당히 많은데, 비록 골라 찾아봐야 하는 귀찮음은 있으나 국악 버전 가요들의 수준은 상당하다. 또한 〈미스터트롯〉에 가려 빛을 보진 못했지만 〈보이스퀸〉에도 상당한 실력을 지닌 국악계의 트로트 고수들이 출연했는데, 이들의 노래를 쭉 훑어보는 것도 귀가 트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가기, 이전, 다시보기를 반복하다 보면 여러분은 분명 대한민국 최고의 귀명창이 되어 있을 것이다.

기자명 김문성 (국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