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자지원점검과장으로 활동했던 오지원 변호사. ⓒ시사IN 조남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자지원점검과장으로 활동했던 오지원 변호사. ⓒ시사IN 조남진

대전지법과 수원지법에서 판사를 지낸 오지원 변호사(47)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자지원점검 과장과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참사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의 웬만한 문제들이 다 드러난다고 말했다. 지금은 법무법인 ‘법과 치유’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수습된 아이들이 안산으로 올라오면서 분향소가 차려졌는데 망설이다가 찾아갔어요. 그때의 장면은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아요. 교복을 입은 채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영정 사진이 너무 안 어울리고 낯설었어요. 그런데 질서 유지하는 분이 사람이 많으니까 빨리빨리 조문하라고 재촉하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어요. 이 와중에 재촉당해야 된다는 사실이 화가 났고,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진도에 내려갈 수도 없고, 이런 참사는 처음이라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꿈을 꿨는데, 우리 집이 저층인데 앞에 놀이터가 있거든요. 거기에 교복 입은 애들이 와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걔네들이 너무 밝게 웃으면서 저보고 나오라고 손짓하는 거예요. 이 얘기는 진짜 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데요. 그 꿈을 꾸고 딱 일어났는데 자기 엄마 아빠랑 도와주라는 얘기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사무실 접고 안산으로 계속 출퇴근했어요.

유가족들은, 정부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한 것처럼 얘기하는 데 분노했어요. 거짓말이죠. 정부는 참사를 자기들이 홍보해야 한다는 관념 말고는 없었던 거예요.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부족하고 무능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오히려 더 신뢰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렇게 엄혹한 상황에서 에어포켓이라도 있다고 거짓말을 해야지 어떻게 사망했다고 인정하냐,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해요. 그런데 특조위에서 미국에 출장 조사를 갔을 때 ‘슬프지만 정확한 정보를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냥 대국민 홍보 말고는 정부 조직 안에 그 기능이 없었어요. 그런 불신이 쌓이다 보니 모든 게 의심스러웠죠.

특조위(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피해자지원과장으로 가게 됐어요. 그런데 진실규명을 반대하는 여당 추천위원들 때문에 일이 안 돌아가는 거예요. 회의만 하면 ‘이런 조직이 왜 있냐’부터 시작해요. 조사 개시 결정을 해야 하는데 건건이 이 조사를 왜 하느냐고 얘기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거기다가 특조위 초기에 예산 낭비 하지 말라는 시위가 열렸어요. 노란배지 달고 지하철로 출근하던 특조위 직원이 폭행당하기도 했고요. 일하지 말라고 보수단체들이 사무실에 난입하기까지 했어요.

세월호 참사 직후에 피해자분들은 진도랑 팽목항이 너무 지옥 같았다고 해요. 참사도 지옥인데 참사 이후 상황이 더 지옥 같았다고. 시신이 처음 팽목항에 들어왔을 때 한 일주일 동안 그냥 막 널브러져 있었고, 사진 찍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오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해외 출장에서 알게 됐어요. 미국하고 일본을 다녀왔고, 영국은 문헌조사를 했는데 똑같이 하는 말이 ‘피해 최소화’였어요. 재난이 안 벌어지는 건 불가능한데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 국가의 역할이고 그것이 자기들의 목표라고 공무원들이 얘기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권 중심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처럼 훈계하고, 빨리 잊어라, 정리해라, 진상규명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인정해주고 수용하라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훈련을 안 해서 그런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미국 같은 경우 병원·경찰·지자체·소방이 전부 협업하는데 훈련 때 최대 3배까지 수용하는 훈련을 한대요. 그러니까 무슨 악마들이라서 일부러 방치한 게 아니라 훈련이 미리 안 돼 있으니까 일주일 동안 지옥을 만들어버렸고, 그때 정부 불신이 최고점을 찍게 된 거죠.

한국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피해 지원이나 피해자라는 개념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피해 지원과 관련해서는 행안부의 복구 과에서 처리해요. 재난의 관리는 예방·대비·대응·복구로 되어 있는데 피해 지원이라는 개념이 없다 보니 우습게도 복구라는 개념으로 복구 과에서 수습과 복구를 해요. 거기에다 대고 피해자들 지원이 인권적으로 돼야 한다고 했더니 ‘저희는 인권 그런 거 모릅니다. 저희는 그런 거 하는 부서가 아니에요’ 하며 인권위 같은 데 가서 얘기하라는 거예요.

참사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의 웬만한 문제들이 다 나와요.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어디가 됐든 똑같아요. 지자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대하는 자세라든지 자기들 책임 회피를 위한 기제가 너무 비슷해요. 공무원들은 ‘책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해요.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피해자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해주면 자기들이 번거로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피해자 중심적인 관점을 갖는 걸 극도로 꺼려요. 참사라는 문명의 일시적인 상실 상황에서 지옥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서 결국은 피해자들의 권리로 승화시켜야 해요.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책임은 회피하면서 일을 안 하려고 하니까 계속 정쟁이 되는 거잖아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10년 동안 진짜 너무 고생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잘했다고 얘기해드리고 싶어요. 옳았다고. 우리가 실패한 게 아니고, 그냥 헛된 과정을 보낸 건 아니라고. 너무 결과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어요. 얼마나 사회가 많이 바뀌었는데요. 그리고 지금 이태원 참사 피해자분들도 너무 힘들 텐데 생각보다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동조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눈에 보이는 건 비방하고 반대하는 일부거든요. 근데 거기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기억, 추모, 회복 이런 단어가 우리나라에, 그것도 참사 현장에는 없었거든요. 이런 단어 자체가 피해자 권리까지 포함해서 얘기가 되고 있어요. 엄청난 변화예요. 포기하지 않는 힘, 기억하고 변화시키려고 하는 힘이 근간에 생겼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분들이 정말 죽을 둥 살 둥 활동한 덕분에 한국 사회가 안전해지고 있는 거죠. 안전한 건 티가 안 나지만 저는 항상 감사하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어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자지원과장으로 일하던 오지원 변호사가 정부가 활동 종료를 통보한 다음 날인 2016년 7월1일 유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서울 중구 나라키움빌딩 특조위 사무실로 정상 출근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자지원과장으로 일하던 오지원 변호사가 정부가 활동 종료를 통보한 다음 날인 2016년 7월1일 유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서울 중구 나라키움빌딩 특조위 사무실로 정상 출근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기자명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nm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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