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인근 주민들과 세월호 유가족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온 임남곤 팽목마을 이장. 그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세월호 팽목 기억관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팽목항 인근 주민들과 세월호 유가족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온 임남곤 팽목마을 이장. 그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세월호 팽목 기억관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70~80대 노인이 대부분인 팽목마을에서 임남곤 이장(57)은 젊은 세대에 속한다. 마을 노인들과 세월호 유가족 사이에 마찰이 생기거나 하면 처리는 그의 몫이었다. 그는 “서로 입장 바꿔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라며 상황을 정리해왔다고 했다. 팽목항 세월호 기억관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임남곤 이장을 찾는다.

“용인에 사는 형수한테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어요. 팽목 근방에서 선박 사고가 났다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어요. TV를 보니 긴급 뉴스라며 선박이 침몰 중이라는 속보가 뜨더라고요. 지인이랑 점심을 먹는데 또 전원 구조가 되었대요. 사실 팽목항이 지척이지만 정보는 TV로 전해 듣는 게 전부였어요. 퇴근하고 저녁에 한번 들르거나 주말에 한 번씩 둘러보는 정도였지요. 원체 많은 단체가 와 있었고, 전국 119 구조대가 다 와 있었어요. 구급차 오가는 소리가 나면 ‘또 인양해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119가 철수할 때까지 정신없이 붐비는 상황이었지요.

제가 마을에서 가장 젊은 세대예요. 동네 사람들이 보통 70~80대 정도예요. 바닷가 마을 노인분들이라 미신에 대한 믿음이 커요. 1973년에 한성호 사고가 바로 이 산 너머에서 났어요.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들지만, 물에 빠져 사람이 죽으면 혼 건진다고 진혼굿을 했어요. 그래서 동네 노인들은 웬만해서는 팽목항에 잘 안 와보려고 해요.

2019년에 팽목항 인근에 석탄재 매립한다고 해서 그때 반대운동을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쪽으로 많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세월호 추모관 있는 이쪽을 다 밀어버리려 했거든요. 동네 어른들은 보수 매체에서 하는 자극적인 방송을 듣고는 ‘보상금 이미 다 주었다는데 어째 저 사람들은 안 나간다냐?‘ 하면서 역정을 내셨어요. 그럴 때면 ‘어르신들 그런다고 해서 제가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저 땅 우리 마을 땅 아니거든요’ 하며 달래기도 많이 했어요. 어르신들은 10년 동안 이렇게 있으니까 보기 싫을 수도 있겠지요. ’자식 앞세운 사람들 마음도 조금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하면서 마을 분들 달랬어요. 고생 좀 했지요.

세월호 참사는 많은 파장을 낳은 사건인데 지금 보면 여전히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많이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를 봤을 때도 그렇고요.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민에게 인권에 대한 생각을 한 단계 높여준 사건이에요. 사건·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나겠지요. 하지만 수습이나 처리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인권을 중심에 두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정부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많이 미흡한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제2의 세월호, 제2의 이태원 사태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피해자들이 어떤 주장을 할 때 그걸 억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그 부모 혹은 당사자라고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세월호 팽목 기억관에 그려진 그림. ⓒ시사IN 조남진
세월호 팽목 기억관에 그려진 그림. ⓒ시사IN 조남진

 

기자명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nm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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