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김소희 지음 만만한책방 펴냄

부동산이 코로나19 바이러스만큼이나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사실 ‘아파트’의 다른 말이다. 어느 동네, 무슨 아파트에 사는가는 이미 그 자체로 계급이다. 그래서 20억원, 30억원을 뚫고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관심을 쏟는다. 그런데 세상에는 월세 20만원, 30만원조차 부담스러운 사람이 훨씬 많다. 한편에선 강남 아파트와 종부세로 침 튀기며 싸우는 동안, 반대편에는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피 튀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리〉는 김소희 작가가 친구 순이와 함께 작업실 겸 자취 집을 구하며 겪는 일을 그린 자전적 만화다. 웹툰 작가를 꿈꾸지만 연재처를 구하지 못한 김소희 작가는 학습 교재 등에 일러스트를 그리며 살아간다. 친구 순이는 그림을 반대하는 부모 때문에 집을 나왔다. 이들은 아직 마땅히 내세울 커리어도 없고, 최소한의 보증금도 부족하다. LTV, DTI와 상관없이 대출이 나올 리 없다.

두 사람의 바람은 소박하다. 책상 두 개를 놓을 공간에, 햇빛도 좀 들어오고, 겨울에는 난방이 되면 좋겠다. 주방은 사치여도 화장실은 꼭 필요하다. 그저 인간으로 살기 위해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소박한 자리를 바란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증금 300만원으로 인간의 조건을 갖추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동네 부동산을 아무리 뒤져도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어묵집에서 추천해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작업실을 찾았다. 심지어 공간도 넉넉한 20평. 부푼 마음을 안고 찾아갔지만 깊고 어두운 지하에서 망해버린 목욕탕이 이들을 기다린다. 결국 그들은 목욕탕이었지만 난방도 안 되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 자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콘크리트가 뿜어내는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4개월 만에 나오고 말았다.

인간답게 살 자리도, 인격적인 일자리도 없다

자리를 찾는 둘의 여정은 끝이 없고, 눈물겹다. 그럭저럭 괜찮은 옥탑방을 얻었지만 이번에는 등기가 되어 있지 않은 집이라 계약기간도 다 채우지 못한 채 쫓겨났다. 나무로 된 방범창을 뜯고 도둑이 들어오는 낡은 빌라, 싱크대 옆에 바로 변기가 있는 작업실, 자개농 안에 재래식 변기를 놓은 집에, 지하 2층 주차장에 컨테이너를 놓고 ‘원룸’이라고 부르는 곳까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곳투성이다. 당장 보증금 몇백만 원, 월세 10만원만 더 내도 자리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을 마련할 수 없는 두 사람은 언제나 최소한이라 여겼던 조건 중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자리〉에서 ‘자리’란 꼭 공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청년들은 사회와 일터에서도 자기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최소한의 인격적 대접을 해주는 일자리 역시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오늘도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한 청춘들의 치열한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기자명 박성표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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