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판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판교는 첨단 IT 기업의 현대식 사옥이 줄지어 늘어선 곳이다. 회사 옆에 금토천이 흘러서 점심을 먹고 자주 걷곤 했는데, 종종 하얗고 날개가 큰 새가 유유자적 날아가다 물가로 내려왔다. 백로였다. 그저 백로 한 마리가 인간 세상에 내려왔을 뿐인데, 그 순간 마치 내가 잠깐 신선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판교가 꼭 무릉도원이 된 느낌이었다. 새 한 마리가 도시의 인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새는 인간의 삶과 아주 밀접한 동물이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면서 수많은 동물을 내쫓았지만, 새를 완전히 내쫓기란 불가능했다. 〈새의 언어〉는 미국의 조류 관찰자 시블리가 84종의 새에 관해 알려주는 조류 도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새에 관한 정보를 주려는 게 아니다. 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펴도 아름다운 새의 그림으로 가득하다.
이 책이 알려주는 새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는 끝이 없다. 간단히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많은 새가 물가에 산다. 그러나 새의 깃털은 물에 젖지 않는다. 이는 깃털 구조 때문이다. 깃털은 보통 가운데에 중심 깃대가 있고, 양쪽으로 깃가지가 뻗어 나온다.
깃가지에는 다시 양쪽으로 무수하게 촘촘한 깃가지들이 뻗어 있다. 물방울은 표면장력 때문에 뭉치는 속성이 있는데 깃가지가 워낙 촘촘하게 층을 이루고 있어서 물방울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물에 젖지 않아 아웃도어 의류에 자주 쓰이는 고어텍스 소재가 이런 새의 지혜를 빌려 만들었다.
다음엔 새의 눈을 한번 살펴보자. 서양에서는 눈이 좋은 사람을 ‘독수리 눈(이글 아이)’이라고 부른다. 과학적으로 독수리가 인간보다 다섯 배 이상 시력이 좋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한참 전부터 그랬다. 새는 고속비행을 해야 하므로 우리보다 시각 정보처리가 훨씬 빠르다. 만약 새가 영화를 본다면 모든 장면이 슬로비디오로 보일 것이다.
수명 다해 죽는 새는 거의 없다
우리는 흔히 ‘새대가리’라는 말을 쓴다.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는 어떨까. 비둘기는 무려 4000㎞ 떨어진 곳에서도 집을 정확하게 찾아올 수 있다. 비둘기의 감각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다. 비둘기는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고, 별의 위치를 읽을 수 있으며, 초저주파음도 듣고, 냄새를 따라간다. 비둘기는 한번 지나간 길은 주요 표지물을 기억해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
인간은 새를 멍청하다 여기면서 한편으론 하늘을 나는 자유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삶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항상 먹이를 구해야 하고, 포식자를 피해 안식처를 찾고, 짝을 찾아 번식하며, 새끼가 클 때까지 돌봐야 한다. 늙어 수명이 다해서 죽는 새는 거의 없다는 말이 가슴 아프다.
〈새의 언어〉를 보니 새는 결코 멍청하지 않다. 자기 생에 주어진 문제에서 언제나 최선의 답을 찾으며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진화해왔다. 그저 우리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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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가족들이 주고 받은 9년 동안의 편지 - 〈봄을 기다리는 날들〉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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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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