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유난히 길고 팍팍했다. 코로나로 무너진 일상이 언제쯤 제자리를 찾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끝을 모르는 터널 속에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 가슴 설레고 따뜻한 만화를 봐야 한다. 뭔가 거창한 희망을 찾아 헤매지 말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작품을 말이다.

〈나의 BB〉는 토끼 같은 발랄함을 지닌 무용 천재 BB와 어중간한 그림 실력에 과묵한 성격인 J의 풋풋한 사랑을 담은 만화다. BB가 ‘토끼 같다’는 말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BB의 얼굴은 정말로 토끼니까. 쫑긋한 귀에 하얗고 통통한 볼을 가진 BB에 비해 J는 축 처진 귀에 머리가 덥수룩한 개 그레이하운드 같다. 〈나의 BB〉 속 캐릭터는 모두 사람 몸에 동물 머리를 하고 있지만 전혀 위화감이 없다. 오히려 귀여움을 배가시키고 어떤 동물인지만 봐도 캐릭터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BB와 J는 같은 고등학교의 같은 반 친구다. 항상 허밍을 하고 엉뚱하고 말이 많은 BB. J는 학교에 일찍 오는 BB 때문에 매일 아침 서둘러 학교에 간다. BB의 한마디에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BB와 온종일 함께 있었는데도 집에 오면 그 아이가 보고 싶다. 그렇지만 BB를 좋아하냐는 친구의 질문에는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고, BB의 서슴없는 행동에는 오히려 헷갈려한다.

마음은 언제나 흐르는 것

어설프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가는 두 사람. 하지만 로맨스에는 언제나 방해물이 있기 마련 아닌가. 국제 무용 콩쿠르를 준비해야 하는 BB가 어딘가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을 눈치 챈 BB의 언니. 그는 J에게 두 사람이 대학에 갈 때까지 만나지 말라고 따끔하게 경고한다. 하지만 언니의 오지랖은 정작 BB의 춤을 방해할 뿐이었다.

마음은 언제나 흐르는 것. BB의 춤은 그 흘러가는 마음, 설레는 순간, 떠오르는 감정을 본능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계산되고 훈련받은 기교가 아니라 자기에게 충실했을 때 진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몸짓이자 움직임이었다. 단절과 상실감을 느낀 BB는 결국 대학 입시를 앞두고 중요한 콩쿠르에서 점프 도중 실수를 해 발목을 다치고 만다. 오랫동안 준비한 무대였건만 왜 그런지 BB의 마음은 오히려 후련하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절망하지도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BB 앞에 다시 J가 나타난다.

노래는 공기 반, 소리 반이라고 했던가. BB와 J의 이야기는 그림이 반, 여백이 반이다. 포근한 그림, 이야기의 리듬을 조율하는 여백, 담백한 대사가 어우러져 몽글몽글한 로맨스가 완성된다. 어느 때보다 순수함과 설렘이 필요한 요즘, 가벼운 마음으로 BB와 J를 만나보면 어떨까. 내 안에 숨죽이고 있던 어떤 감정이 다시 솟아 나올지도 모르니까.

기자명 박성표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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