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분노의 도로〉는 인류가 거의 멸망한 가상의 미래를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다. 도입부에서 인류가 멸망한 과정을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는데, 그때 대사가 나온다. “왜 사람들을 죽이는 거야?” “기름 때문이지, 멍청아!”

이것은 단순히 영화 속 대사가 아니다. 슬프게도 현실이다. 중동에서만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 전쟁이 터졌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9·11 테러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수많은 테러가 일어났다. 중동의 갈등은 겉으로는 극단적인 광신도들이 벌이는 종교갈등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뿌리를 파고들어 가면 땅속 깊이 묻혀 있는 시커먼 욕망, 석유와 마주치게 된다.

〈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는 석유를 둘러싼 미국과 중동의 혼탁하고 지독한 관계를 보여준다. 중동과 미국의 악연은 무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국은 지금과 같은 초강대국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모로코·알제리·튀니지 등지에서 활약하던 해적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해적들은 미국 상선을 나포하고 선원의 몸값을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협상도 해보고, 해군을 보내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당하는 쪽이었다.

만평을 보는 듯한 재치 있는 연출

해적이 사라진 뒤 미국은 중동 지역에 서서히 영향력을 넓혀갔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석유가 중요해지자 태도가 달라졌다. 미국은 ‘이슬람교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는 핑계를 대고서 군대를 북아프리카에 상륙시켰다. 그리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왕과 몰래 접촉했다. 그렇게 미국은 석유를,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조의 안보를 보장받았다. 이후 미국의 행보는 더욱 은밀해지고, 수법은 악랄해졌다. 이란에서는 모사데크 총리가 서구 열강에 석유 채굴 이권을 모두 빼앗기고 있다면서 석유산업 국유화를 추진했다. 그러자 CIA는 영국 첩보부 MI6(엠아이식스)와 손잡고 모사데크를 규탄하는 가짜 시위대를 꾸려 정권을 전복시킨 후 친미 독재 왕조를 세워버렸다. 타국의 정권을 입맛대로 바꾼 미국은 40년 뒤 호메이니가 이란에서 혁명을 일으킬 때까지 이란 석유 이권의 40%를 착복하며 막대한 이익을 훔쳐갔다.

이후에도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해 중동 갈등을 부추겼고 걸프전쟁, 9·11 테러, 이라크 침공 등 미국과 연관된 굵직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 책은 복잡한 역사의 흐름을 쭉 훑어 내려가며 마지막에 한마디로 정의한다. “미국은 항상 좋은 의도로 중동에 개입한 것도 아니며 언제나 최악의 순간에 문제에서 빠졌다.” 강렬한 흑백 대비로 판화를 연상시키는 다비드 베의 그림도 흥미롭다. 만평을 보는 듯한 재치 있는 연출로 당시의 상황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다비드 베의 스타일은, ‘중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그래픽노블 〈페르세폴리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기자명 박성표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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