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쯤인가. 트위터에서 우연히 어떤 만화를 봤다. 뼈, 근육, 신경 등 인체 해부학을 다루는데 (근육)돼지와 (뼈)다귀가 나와 툭탁툭탁하는 모습이 무척 귀엽고 재미있었다. 이 만화는 인체의 기관 계통을 체계적으로 따라가며 연재되더니, 결국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책으로도 나왔다. 제목은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이하 까해만)이다.

우리는 늘 몸과 함께 살아간다. 1분 1초도 내 몸과 떨어져서 살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우리 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모른다. 〈까해만〉은 몸의 기초가 되는 뼈에서부터 해부학의 역사를 읊는다.

그리고 손, 어깨, 허리, 팔 등 각각의 신체 부위와 신경계, 순환계, 호흡계, 소화계, 비뇨계, 생식계까지 우리 몸을 말 그대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샅샅이 까뒤집는다.

저자 압듈라도 밝혔지만 해부학은 쉽지 않다. 철저한 암기 과목이다. 어떤 기관이 무슨 모양이며, 어떻게 기능하고, 서로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원리를 꿰뚫기 위해서는 일단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제아무리 만화로 친숙하게 다룬다고 해도 어려운 내용이 쉬워질 수는 없다. 이는 만화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할 때 모두가 부딪히는 벽이다.

‘보건계 만화가’를 꿈꾸는 작가

〈까해만〉은 이 벽을 캐릭터화와 패러디로 돌파한다. 신체 주요 기관을 캐릭터로 만들었다. 온몸에 정보를 전달하는 지극히 예민한 신경계를 ‘신경퀸’, 몸의 기둥이 되는 척추를 상징하는 ‘척추퀸’, 그리고 온몸에 피를 돌리는 심장은 여왕 중의 여왕 ‘심장퀸’으로 등장한다.

각각의 캐릭터는 기능에 맞는 외모와 성격을 지녔다. 신경퀸은 뉴런 채찍을 휘두르며 뇌의 에너지원이 포도당인 만큼 단 음식을 좋아하고, 척추퀸은 허리뼈 돌기 모양의 왕관과 척추 모양의 지팡이를 사용한다. 심장퀸은 ‘피’와 직결되는 만큼 뱀파이어이고, 심장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기 때문에 신경퀸과 달리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며 하루 종일 피를 마신다. 세 여왕님 외에도 뇌를 상징하는 우동이라던가, 척추뼈 사이에서 충격을 완화해주는 ‘척추사이원반(일명 디스크)’인 디스크 댕댕이가 등장한다.

직관적인 캐릭터 외에도 〈까해만〉은 매 장면에서 갖가지 만화·애니메이션· 영화·드라마·인터넷 드립에 대한 패러디가 넘쳐난다. 작가 스스로 덕후임을 인정하고 오히려 이를 강조하면서도 내용과 맥락이 통하는 패러디를 재치 있게 풀어 넣는다. 〈까해만〉은 체계적인 해부학 지식 위에 학술이 아닌 교양으로 알아둘 만한 내용을 재미있게 완성했다.

그림체는 전혀 다르지만, 역사·시사만화에 온갖 패러디를 버무리는 만화가 굽시니스트가 떠오른다. 보건계 만화가를 꿈꾼다는 압듈라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기자명 박성표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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