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금강농산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은 2017년 4월에 멈춰 있다. 익산시가 공장을 폐쇄한 때다.

금강농산에서 8년 동안 근무한 김재길씨(47)가 텅 빈 공장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여기에 기계가 남아 있었는데….” 공장 부지 왼쪽 끄트머리에 있던 식당은 헐렸다. 직원 20여 명이 밥을 먹던 길쭉한 테이블도 사라졌다. 정수기도, 싱크대도 보이지 않았다. 공장 마당에 쌓여 있던 KT&G 로고가 찍힌 팰릿(화물을 쌓는 틀)도 없었다. 공장 안을 둘러보던 김씨가 유일하게 남은 설비 앞에 멈춰 섰다. “이건 사이즈가 커서 못 뜯어갔나 보네.” 2~3층 높이의 비료 사일로(저장탱크)였다.

2017년 11월 금강농산이 파산한 뒤 공장 부지는 경매를 통해 경북 영천시에 있는 ㅁ비료 업체로 넘어갔다. 마을에 또 다른 비료 공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장점마을 주민들이 항의하자, 익산시는 그제야 뒤늦게 ㅁ업체로부터 다시 부지를 사들였다. ‘증거’가 될 수도 있는 공장 내부에 남아 있던 자재는 ㅁ업체가 모두 철거해 가져간 뒤였다. 취재진이 금강농산을 방문한 2월11일에도 ㅁ업체 소속 화물트럭 두 대와 봉고차 한 대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재길씨의 집에서 공장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지만, 그는 눈이 내리는 겨울날이 아니면 차를 타고 출퇴근했다. 야간 근무가 끝나면 피곤해서 집까지 걸어갈 힘도 없었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김씨는 밤 근무를 했다. 밤 11시에 출근해 아침 8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마침 밤 근무조 동료가 퇴사하면서 빈자리가 났고, 다소 피곤하더라도 그편이 수당이 더 많이 붙어 다소 욕심을 냈다. 공장이 가동을 쉬는 날이어도 비가 오면 나가봐야 했다. 공장과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이다. 초기에 일했던 최정녀씨(74), 이장 김인수씨(70)와 김재길씨를 뺀 나머지 공장 직원은 모두 외지인이었다. 대부분 인근 군산시에 살았다.

비 오는 날 출근할 때면 빗물을 퍼내는 게 급했다. 지붕에서 샌 비로 바닥이 진흙탕이 되기 전에 양수기(물을 끌어올리는 펌프)를 돌려야 했다. 슬레이트 재질의 공장 지붕은 자주 삭았다. 반죽된 비료 알갱이를 300℃가 넘는 고열로 건조하는 공정 때문이었다. 재료에 불길이 직접 닿는 과정 속에서 불완전연소가 일어났다. 역학조사는 이때 1급 발암물질이 포함된 연기가 생성됐다고 결론 내렸다.

ⓒ시사IN 이명익장점마을 주민인 김재길씨는 금강농산에서 8년간 일했다.김씨가 공장 내부를 설명하고 있다.

금강농산 대표도 폐암으로 숨져

연기가 굴뚝으로 빠져나가기 전 유해 성분을 걸러주는 세정 시설은 무용지물이었다. 연기를 씻어주는 물을 갈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강농산은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도, 폐수를 처리할 전문 업체를 부르지도 않았다.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위원으로 대기오염 부분을 조사한 강공언 교수(원광보건대 보건의료학부)는 이미 오염물질이 가득 찬 물에 계속해서 오염물질을 넣어봤자 세척이 될 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제 기능을 못하는 세정 시설을 거친 연기는 물기까지 머금어 무거워졌다. 무거운 연기는 멀리 퍼지거나 희석되지 않은 채 장점마을에 고였다. “차라리 세정하지 말고 연기를 그냥 내보내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 강 교수가 말했다.

공장이 운영되던 당시 이갑찬 대표는 공장과 마을 집단 암 발병 사이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공장 때문에 암에 걸려 죽은 마을 사람이 있다면 공장에서도 암으로 죽은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직원 모두 건강하다’는 논리였다. 강공언 교수는 “공장 내부의 공기가 외부보다 오히려 더 깨끗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원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먼지가 많이 발생했을지는 몰라도 발암물질 같은 유해한 성분은 대부분 굴뚝을 통해 바로 배출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폐쇄 직전까지 공장을 다닌 직원 17명 중 〈시사IN〉과 연락이 닿은 10명은 모두 냄새 때문에 불편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재길씨는 “먼지는 많이 났어도 연기는 심하지 않았다”라고 했고, 그와 함께 9년 동안 근무한 한 아무개씨(64) 역시 “그냥 수증기만 좀 났지 별다른 건 딱히 없었다”라고 말했다. 공장 아래에서 20년간 축사를 운영해온 장점마을 주민 장영수씨(57)도 “젖소가 자꾸 죽어서 몇 번 찾아가 항의한 적이 있는데, 희한하게 공장 안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라고 기억했다.

이갑찬 대표가 자신한 것처럼 모든 직원이 건강했던 건 아니다. 민관협의회의 또 다른 위원 중 한 명인 오경재 교수(원광대 예방의학교실)는 “역학조사를 통해 노동자의 암 발생률도 (마을 주민만큼) 일관되게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역학조사팀은 2002년부터 2017년까지 금강농산에서 근무한 직원 82명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추출했다. 이 중 5명이 암에 걸린 것을 확인했다. 2004년 유방암, 2005년 위암, 2013년 대장암, 2014년 피부암, 2015년 폐암으로 각각 한 명씩 진단을 받았다. 이갑찬 대표 역시 2018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 대표를 포함하면 밝혀진 것만 6명인 셈이다.

역학조사팀에 따르면 2003~2016년 금강농산 노동자의 암 발생률은 일반인구집단 대비 2.90배였다. 공장이 문을 닫기 전까지 근무한 직원 모두 현재 건강하다고 응답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암에 걸린 직원은 발병 뒤 이미 공장을 떠났거나, 공장을 떠난 다음 발병 사실을 알았으리라 추정된다.

금강농산에서 근무한 직원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시사IN〉과 연락이 닿은 17명 중 10명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를 주저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직원은 “내가 알기로 직원 중에서 암에 걸린 사람은 없다. 헛소문이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오경재 교수는 “‘환경재난’이라 부를 수 있는 장점마을 사태에서 정부가 놓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금강농산 근무 경력이 있는 노동자에 대한 추적관리다”라고 말했다.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아서 오 교수가 개별적으로 노무사를 섭외해 관련 건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역학조사 결과도 나왔겠다, 산재보험보상법이 있으니 업무관계성을 인정받기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시사IN 이명익2월11일 경북 영천시 ㅁ업체 소속 차량이 금강농산 내부에 남아 있는 물품을 실어가는 모습.

금강농산 노동자 건강은 누가 책임지나

하지만 노무사는 며칠 만에 두 손을 들었다. “이분들도 피해자이지만 분노에 차 있다. 마을 주민들이 괜히 문제를 만들어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금강농산에 근무했던 이들의 상황과 심리적 맥락을 고려한 상담 및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분 한 분 설득해나가야 한다. 지금은 건강하더라도 언제 발병할지 모르기 때문에 고용보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고용노동부에서라도 나서야 한다.”

농촌에서 농사 이외의 일자리를 좀처럼 구하기 힘든 절박한 현실은 직원들의 반발감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금강농산이 파산한 뒤 김재길씨는 다른 면소재지에 위치한 공장에 일자리를 잡았다. 함께 일한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공장으로 옮겨갔다.

2017년 3월 민관협의회 위원들과 마을 주민 간담회에서 아버지 이갑찬 대표를 이어 금강농산을 책임지고 있던 이수영 사장은 장담했다. “회사가 집단 암 발병 원인일 리 없으며 우리가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책임지고 전액 보상하겠다.” 하지만 그해 4월 금강농산은 익산시로부터 폐쇄 조치를 받고 폐업 절차를 밟았다. 사과도, 보상도 없었다. 익산시는 비료관리법과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이수영 사장을 고발했고, 이 사장은 지난 2월 구속 수감됐다.

김재길씨는 익산시 등 지자체나 정부 기구의 관리감독 부재를 지적했다. “공장에서는 그래도 서류를 다 갖춰서 보고했다. 그 서류가 맞는지 꼼꼼히 들여다보며 관리하는 건 지자체나 정부의 몫 아닐까.” 김재길씨는 그나마 주기적으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직원들의 잠재적 건강 위험 요소는 고스란히 각자의 책임으로 남겨졌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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