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2019년 12월10일 정헌율 익산시장은 서울 강남구 KT&G 서울사옥 앞에 있었다(사진). ‘익산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사태 KT&G 책임 촉구’ 집회의 앞줄을 지켰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그날 집회에서 정 시장은 잠시 언급됐을 뿐이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익산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정헌율 시장은 전임 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나며 열린 2016년 4월 재선거로 임기를 시작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정 시장이 임기를 시작할 무렵 장점마을도 주민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고 있었다. 시기가 잘 맞았다. 정 시장은 장점마을 문제를 이전 시장들처럼 외면하기 어려웠다. 2016년은 장점마을이 ‘집단 암 발병’으로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지역 이슈를 넘어 전국 이슈가 되면서 익산시의 관리·감독 부실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속된 민원에도 꿈쩍 않던 익산시가 악취와 폐기물 단속에 나선 것도 2016년부터였다. 2017년 4월에는 금강농산을 폐쇄 조치했다. 금강농산은 폐쇄 중지 가처분신청으로 맞섰지만 그해 11월 결국 파산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폐쇄하기에는 애매한 위반이라고 기억했다. “니켈(중금속) 배출 기준치 위반인데, 산업단지 같은 데서 그 수치가 나왔으면 위반이 아닌 숫자였다. 그동안 더 심한 위반 사항에도 폐쇄 조치를 안 했던 시가 마을 주민들이 역학조사를 청원한 지 일주일 만에 결정한 일이라 우리끼리는 정치적 의도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조치로 공장 문을 닫은 상태에서 역학조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겉으로는 마을을 위해 공장을 폐쇄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학조사 결과를 왜곡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이후 실제로 역학조사가 험난한 길을 걸었던 것도 공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금강농산 폐쇄와 더불어 원인 규명과 환경오염 기초조사를 위한 공식기구인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민관협의회)’도 2017년 4월 출범했다. 장점마을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과 민간 전문가, 주민이 처음으로 머리를 맞댔다. 김세훈 민간위원(전북대학교 환경공학박사)은 거버넌스가 작동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성취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멱살부터 잡고 욕설과 고소·고발이 오가다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민관협의회는 달랐다. 양측 모두 요구사항을 조정하면서 테이블을 유지했다. 30차 회의까지 열렸는데, 앞으로 남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만큼 회의가 더 필요할 거다.”

지자체 최초로 환경특별사법경찰관 도입

정헌율 시장은 3월6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행정의 총체적 부실을 인정했다. “내가 오기 전의 일이지만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준비 중인 소송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겠다.” 책임자에 대한 징계나 처벌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방공무원법에 의한 일반 업무의 징계시효가 3년이기 때문이다. 정 시장은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실이나 불법에 관여했던 공무원들은 이미 다 떠난 상태다. 남아 있다 하더라도 징계시효가 지나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감사원이 두 차례나 감사를 하고도 결과를 아직 못 내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도시와 수도권에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악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폐기물 처리업과 같은 영세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방에 모였다. 익산시도 예외는 아니다. 정 시장은 “지역 성장이 멈추더라도 삶의 질을 챙겨야 한다는 걸 장점마을을 통해 배웠다”라고 말했다.

2019년 11월 익산은 환경친화도시를 선포했다. 환경안전국을 신설하고 환경직 공무원도 현재 42명에서 2022년까지 62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올해 3월에는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환경특별사법경찰관을 도입해 현재 3명이 활동 중이다. 특별사법경찰관은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의 공무원에게 수사권을 주는 제도다. 오염이 가져온 낙인이 장점마을 것만은 아니었다. 익산시 역시 지역 이미지 실추라는 ‘보이지 않는 손실’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장점마을이 환경문제 해결의 ‘선례’를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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