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진도’ 뺀 해외의 트랜스 여성 여대 입학
  •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 호수 649
  • 승인 2020.02.2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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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달리 해외 대학은 일찌감치 트랜스젠더 입학을 허용했다. 여성임을 입증하지 않아도 스스로 여성으로 인식하면 입학이 가능하도록 했다. 우리도 진작 관련 정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AP Photo2017년 8월 트랜스 여성 니노츠카 러브 씨가 웰즐리 대학 기숙사에서 짐을 풀고 있다.

1월30일 트랜스젠더 학생이 숙명여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보도된 후 초유의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2월7일 A씨는 등록을 포기했다. 내가 속한 직장을 소수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고, 그는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남기는 것은 반성과 다짐의 한 과정이다.

사실 복잡한 문제는 아니었다. 법원에 의해 성별이 정정된 여성이 여자대학에 합격했을 뿐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특별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여성으로서의 법적 권리를 온전하게 소유한 학생이 합법적 절차를 통해 입학했는데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겠는가?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불허하는 규정을 세우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대놓고 불법 규정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설사 그렇게 학칙을 바꾼다고 한들, 트랜스젠더 학생을 구분하여 입학을 불허할 방법이 없다.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성염색체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한 말이다.

오히려 대학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A씨가 입학 후 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무엇일지 점검하고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트랜스젠더 학생이 초중고와 대학에서 겪는 여러 문제들은 이미 수차례 보고된 바 있다. 만약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위험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지 못했다면, 대학도 일정한 책임을 진다.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대법원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별 정정을 허가한 것이 2006년이다. 이 법적 결단은 최소한 성별 정정이 완료된 사람에 대해서만은 그 어떠한 차별도 해선 안 된다는 공적 선언이었다. 하지만 법적 성별 정정 절차를 밟지 못한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성별 정정이 완료된 사람조차 교육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 바로 2020년 이 사건이다.

우리와 달리 해외의 대학은 멀찌감치 ‘진도’를 뺐다. 웰즐리 대학, 스미스 대학, 마운트홀리오크 대학, 바너드 대학, 브린마 대학 등 미국의 여대들은 이미 5년 전부터 트랜스젠더 포용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정책은 법적 성별이 여성으로 변경된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허용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법적 성별 정정이 완료된 트랜스젠더를 입학시킬지 여부는 학교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여대들이 결단한 것은 ‘법적으로 성별 정정이 되지 않은 경우’ 또는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여성임을 입증하는 어떠한 법적·의료적 증명서도 요구하지 않으며, 스스로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도록 했다. 트랜스젠더 여성뿐만 아니라 논바이너리, 인터섹스 등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문을 연 여대도 있다. 심지어 태어날 때는 여성이었지만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남성의 입학을 허용하는 여대도 있다.

그렇다면 여성으로 입학했지만 재학 중에 남성으로 ‘커밍아웃하였거나 나아가 외과적 수술까지 마친’ 경우는 어떻게 할까? 대부분의 여대에서는 그런 경우에도 졸업할 때까지 학생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전환한 여성이 입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학 중에 성전환한 남성도 졸업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 여대들의 변화도 놀랍다. 일본의 나라 여대(2020년), 오차노미즈 여대(2020년), 미야이가쿠인 여대(2021년)가 법적 성별 정정이나 성전환 수술 여부와 무관하게 트랜스젠더 여성을 입학시키겠다는 입학 정책을 발표했으며, 도쿄 여대, 쓰다주쿠 대학, 니혼 여대, 지쿠시조가쿠인 대학도 입학 허용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모든 젠더를 위한 화장실’ 200여 개 마련

트랜스 여성을 입학시키는 것이 여대로서의 정체성을 붕괴시키고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얘기가 있다. 트랜스젠더 입학을 허용한 일본과 미국 여대의 현실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킨다. 미국의 명문 여대들은 여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페미니즘을 지향하지만, 트랜스 여성을 입학시키는 것이 오히려 여대의 설립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트랜스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대학의 이념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페미니즘 연구를 선도하는 오차노미즈 여대는 트랜스 여성 문제에도 가장 먼저 눈을 떴다. 이 학교가 제정한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에 관한 대응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트랜스 여성을 포용하는 정책이 여대의 이념과 배치되지 않으며, 이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여대”를 지향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연합뉴스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18년 10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성별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을 위한 대학은 여전히 필요하다. 여성들의 안전이 보장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을 위한 안전한 공간에 대한 요구는 그 자체로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하다. 취약한 점이 없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끈질기게 개선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의 정당한 요구를 내세워 트랜스젠더를 분리하고 배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미국 스미스 대학은 트랜스젠더 입학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팀을 꾸려 여대로서의 정체성과 트랜스젠더 입학의 관계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일본 오차노미즈 여대의 가이드라인에는 입학 상담 창구, 가명 사용, 성별 기재, 재학 중 성전환, 교외 실습 및 유학 시 대처 방안, 성별중립 화장실 설치, 동아리 활동, 취업 지원,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아우팅 방지 정책까지 트랜스젠더를 포용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총망라해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놓았다. 학부생이 2500명쯤 되는 스미스 대학에는 200개가 넘는 ‘모든 젠더를 위한 화장실’을 마련했으며, 사적 공간이 보장되는 샤워실과 탈의실을 갖춘 ‘모든 젠더를 위한 라커 룸’을 설치했다. 오차노미즈 여대도 신축 기숙사를 짓고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건물마다 1개씩 총 15개를 설치했다. 여성의 정당한 요구를 존중하면서 트랜스젠더를 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A씨는 결국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는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아픔과 상처 대신 ‘연대의 정신을 잊지 않고, 다른 곳에서 노력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 퇴행의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한 발을 내디뎌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느 한 여자대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트랜스젠더는 남녀공학 대학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직장에서도 편견에 고통받고 차별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소수자다. 그들이 어느 곳에 가서도 안전하게 교육받고 일할 수 있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한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국회는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소수자 차별금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각 기관과 조직에서 시행될 수 있는 차별금지 가이드라인을 제안하고 그 시행을 적극 견인해나가야 한다. 초중고, 대학, 각종 공공기관과 사기업 등에서는 구성원 모두의 평등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A씨의 좌절은 진작 했어야 했던 이 모든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다. 트랜스젠더는 언젠가 우리 옆으로 다가올 수 있는 외부인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서 함께 살고 있는 동료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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