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에게 상처 주고 여권이 신장된다면···”
  • 김영화 기자
  • 호수 649
  • 승인 2020.02.2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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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A씨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지만 논란은 계속된다. 23개 페미니즘 단체에서는 성별 변경 불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요구했다. A씨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김흥구2월10일 숙명여대 게시판에 트랜스젠더 입학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숙대 등록 포기합니다.’ 2월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A씨(22)가 글을 올렸다. 그가 2020학년도 숙명여대 입학전형에 최종 합격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지 9일 만이었다. 법학부 20학번이 될 예정이었던 그는 대학 입시를 다시 준비한다. “대학을 가고자 하는 당연한 목표, 그 속의 꿈조차 누군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고, 조사의 대상에 불과하다.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까지 빼앗겼다.” A씨가 입학을 포기하며 남긴 말이다. 그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다.

A씨는 지난해 8월 타이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10월 법원에서 성별 정정 허가를 받았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도 ‘2’로 변경되었다. 지난 1월30일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한희 변호사를 롤모델 삼아 법대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했다. 처음부터 성정체성을 밝힐 의도는 없었다. 계기가 되었던 건 지난 1월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에게 쏟아진 말을 지켜보면서다. 변 하사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후 육군으로부터 전역 판정을 받고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A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 사회에 섞여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저는 그냥 학생이고 싶고요. 논쟁이 되고 기사로 나오고 해야 된다는 것 자체가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가 나온 뒤 곧바로 A씨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숙명여대 커뮤니티와 오픈 채팅방에서 ‘합격했으면 조용히 다닐 것이지 입학 전부터 언플(언론 플레이)을 한다’며 그를 비난하거나, 여대를 이용해 ‘사회적 여성성’을 취득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를 향한 반감도 서슴없이 표출되었다. “겉모습을 인위적으로 바꾸었을지 몰라도 진짜 여성이 될 수 없다”라거나 “여장 남자가 여대에 침입하는 사건과 무엇이 다르냐”와 같이 존재를 부정하는 말들이었다. A씨는 결국 9일 만에 숙명여대 등록을 포기했다.

국내 트랜스젠더 인구 5만~25만명

트랜스젠더는 성(별)정체성과 출생 시 법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성별 위화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 접근성에 대한 시론〉(2015)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인구는 5만~25만명으로 추측된다. 자신의 젠더를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말하는 성별 정체성(시스젠더, 트랜스젠더 등)과 누구에게 성적으로 끌리는지를 설명하는 성 지향성(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은 다르다. 시스젠더(생물학적 성별과 심리적인 성별이 서로 일치하는 사람)와 달리 트랜스젠더들은 성별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해 ‘트랜지션’이라는 전환 과정을 거친다. 정신과 진단 및 호르몬요법, 성전환 수술 등 의료적 조치가 포함된다.

ⓒ연합뉴스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부사관.

A씨를 향한 날 선 반응은 주로 ‘래디컬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일부 학내 동아리 및 단체에서 나왔다. 래디컬 페미니스트 소모임 ‘PIEATER’S’는 ‘숙명의 딸들이여 숙명을 구하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우리는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왔다. 남성으로 태어나 몇십 년간 남성 권력을 누렸던 트랜스젠더에게 여성들의 공간에 들어올 자격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했다. 또 숙명여대 문과대학 19학번이라고 밝힌 한 작성자는 “우리 학교에 올 수 있었던 다른 여성의 자리를 빼앗은 트랜스젠더 남성이다. 본인의 권리를 위해 여성의 파이를 빼앗았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 남성 때문에 학교 시설 이용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라며 안전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거나, “여성이 여성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명을 지를 때, 당신들은 여성성을 가진 남성도 여성으로 인정해달라 말한다. 이것은 명백히 피해를 받아온 여성에 대한 우롱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8년 서울 혜화역과 광화문 등지에서 열린 불법촬영 규탄 집회에서 비슷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생물학적 여성만 출입 가능’하다는 주최 측의 규정 때문이었다. 당시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희화화한 이미지와 함께 ‘트젠(트랜스젠더)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라’는 주최 측 공지까지 나오면서 트랜스젠더를 혐오했다는 강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시사하는 것은 혜화역 시위와 또 달랐다. 법과 제도가 보장한 학습권이 혐오로 인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박한희 변호사는 “드러내지 마라, 조용히 살아라, 말하지 말라는 요구다. 만약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지 않았으면 지금쯤 문제없이 입학하지 않았을까. 동등한 시민으로서 문턱을 넘을 권리가 가로막히게 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A씨가 입학을 포기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남성 입학반대 TF팀(이하 TF팀)’을 꾸려 생물학적 여성만 입학할 수 있도록 학칙 개정 운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의 23개 페미니즘 단체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통해 법원이 성별 변경 신청을 기각할 것과 국회가 성별 변경 불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성별 변경 반대 온라인 서명에 1만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IN 신선영2016년 6월11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퀴어 페스티벌 행사가 열렸다.

“찬반 구도로 이 문제를 논쟁화하지 말아주세요.” 숙명여대에 재학 중인 주현지씨(24·가명)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퀴어 당사자인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다양한 층위의 의견이 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혐오 표현을 보며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개개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여성 인권이 신장된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교내에는 이미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에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다수 존재한다. 2월7일 SNS를 통해 익명의 글이 올라왔다. “그 대학 다니는 FTM(Female To Male)입니다. 이 학교가 합격자분을 담기엔 그릇이 너무 작았나 봅니다”라며 A씨에 대한 연대를 표하기도 했다. 주씨도 A씨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싶었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이 ‘아우팅’될까 봐 주저했다. 그동안 A씨의 입학에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 보도되면서 숙명여대 전체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페미니즘 내부가 분열되었다’ ‘이제 더 이상 여대는 필요 없다’라는 반페미니즘 주장이 힘을 얻었다.

A씨의 입학에 반대하는 흐름을 주도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혐오가 아닌 두려움과 공포’라고 반박한다. 대자보와 커뮤니티를 통해 외부인 남성이 숙명여대에 무단 침입한 사건을 하나씩 언급했다. 지난해 3월 마약 전과 남성이 숙명여대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다 도주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5월에는 남자 중학생 3명이 상·하의를 벗은 채 캠퍼스 내 연못에 뛰어들었다. 6월에는 여장한 남성이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안전에 대한 요구가 학생들 사이에 빗발쳤다. 숙명여대 정문 앞 ‘우리 대학교 학생들의 안전 및 사고 예방을 위하여 방문자는 정문 보안실에서 출입증을 교부받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붙여진 이유였다.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게 여성혐오”

트랜스젠더 입학을 반대하는 TF팀 대표 김지연씨(24)는 일련의 사건이 여대라는 공간이 그간 얼마나 외부의 성차별적인 시선에서 대상화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대라서 민감하게 반응한다거나 하나의 가십거리로만 소비되어왔어요. 우리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감각을 어떻게 혐오라고 말할 수 있나요?” 공간을 침범당했던 피해 경험은 트랜스젠더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졌다. “한번 트랜스젠더가 숙명에 입학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 단지 정신적으로 자신을 여성이라 칭하는 사람까지 숙명인으로 수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남성들과 학생의 분간도 모호해져 범죄에도 지금보다 더욱 쉽게 노출될 것이다(PIEATER’S 대자보 중).” 그는 TF팀에 소속된 구성원의 수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소속 김예지씨(25)는 이들의 주장이 명백히 ‘트랜스젠더 혐오’라고 지적했다. “교수부터 교직원, 경비노동자, 택배 기사 등 이미 교내에 남성들이 다수 출입하고 있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침입하는 남성과,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려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동일하게 보는 것 자체가 혐오적인 시선이라고 말했다.

생물학적 여성들만 모였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라는 게 오히려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 주현지씨는 “여성으로서는 여대가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퀴어로서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여대는 페미니즘 대자보가 찢긴다거나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는 등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백래시’가 일어나고 있는 다른 대학과 달리 페미니즘에 대해 ‘낙인’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여전히 퀴어, 난민, 노동자 등 보편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낮다고 느낀다. 법학과에 재학 중인 장태린씨(23)는 계속해서 경계를 치는 방식으로 여대를 ‘보호’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반문한다. “범죄든 폭력이든 인간이 사는 공동체라면 어디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 오히려 여성혐오적이지 않나.”

A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처럼 ‘하나의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이 되고 있다. A씨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SNS에는 #나는_앞으로도_트랜스젠더_A님의_편입니다 #합격축하해요_우리가여기있다 등 해시태그 운동이 진행되는 한편, 숙명여대 동문 764명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와의 동행은 숙명인의 출발이며 계속 확장해나가야 할 가치다”라며 공개 지지했다. A씨가 입학을 포기한 다음 날인 2월8일 동덕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의 페미니즘 단체가 연합한 ‘여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발족하기도 했다. 이들은 ‘페미니즘은 언제나 정상이 아닌 여성들과 함께해왔다’라는 성명을 내며 여자대학 내 여성 및 소수자 의제에 대한 연대와 권리 보장에 힘쓸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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