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대기업 노조 책임도 있다
  • 이종태 기자
  • 호수 648
  • 승인 2020.02.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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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이 고임금과 후한 복지를 누리는 내부자(정규직)와 저임금과 낮은 복지에 허덕이는 외부자(비정규직)로 나뉘었다. 오랫동안 ‘내부자·외부자’ 문제에 천착해온 정승국 교수를 만났다.
ⓒ시사IN 윤무영정승국 교수(위)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정착되면, 그 구조에서 이익을 보는 내부자 연합의 저항 때문에 개혁이 쉽지 않다”라고 말한다.

결국 문제는 노동시장이다. 한쪽은 높은 봉급과 안정적 일자리, 심지어 후한 복지까지 누린다. 다른 쪽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복지에서마저 소외된다. 전자는 ‘내부자’, 후자는 ‘외부자’로 불린다.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에는 높은 장벽이 있다. 노동시장이 ‘이중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노동시장 및 복지를 전문 분야로 활동해온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수년 동안 유럽과 한국의 ‘내부자·외부자’ 문제에 천착해왔다. 지난 2월4일 그를 만났다.

글로벌 차원에선 언제부터 ‘내부자·외부자’ 문제가 돌출하게 되었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등)이 ‘모든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200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데이비드 루에다 교수의 논문이 그런 믿음을 뒤집어버렸다. 그는 사민주의 정당들이 1970년대 이후 외부자(비정규직·실업자)보다 내부자(정규직)의 이익에 봉사해왔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에 따라 사민주의 정당의 집권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고용 서비스, 직업훈련 교육, 고용 보조금 등에 국가재정을 투자해서 실업자를 재취업시키는 정책이다). 각종 사회보장제도 중에서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외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적 정책으로 꼽힌다. 그는 ‘정부 내각에서 사민당 출신이 차지하는 점유율’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국가지출’ 등의 자료를 뽑았다. 유럽 16개국의 23년 치 데이터다. 분석 결과, 사민당의 내각 점유율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관련 국가지출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성향인 사민당이 집권해도 외부자의 형편을 개선할 수 있는 노동시장 관련 지출엔 큰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유럽의 경우) 1970년대 이전엔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가 강하지 않았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똑같이 실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사민당은 내부자와 외부자 모두에게 이로운 노동시장 정책을 실시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반에 (정규직을 위한) 고용보호 법안들이 제정되면서, 내부자와 외부자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해고 위험이 사라진) 내부자 처지에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외부자만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이 정책의 성과로 실업자들이 다시 정규직 노동시장으로 돌아오면 자신들과 일자리 및 임금 경쟁을 하게 된다. 결국 내부자들이 자신의 돈(노동시장 정책에 들어가는 세금 분담)으로 실업자를 재취업시키는 노동시장 정책에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고, 루에다는 설명한다. 여기서 내부자 연합(Insider Coalition)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정규직과 사민당이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맹체를 은연중에 형성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킨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중구조(내부자·외부자)가 정착되면, 그 구조에서 이익을 보는 내부자 연합의 저항 때문에 개혁이 쉽지 않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나 진보 성향 정당들이 노동자 상층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한국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느 정도 보편적인 흐름이다. 유럽에서는 1990년대 이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다. 각국 정부와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의 주요 원인을 ‘고용보호제도(EPL:Employment Protection Legislation) 문제’에서 찾았다. 한마디로 정규직의 고용은 지나치게 보호되고, 비정규직은 너무 보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인력을 주로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려 한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옮기기도 어렵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규직 노동조합들의 책임이 컸다. 1980년대 들어 유럽 각국의 경제성장률은 지체되고 실업률은 대폭 상승한다. 정부는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를 어느 정도 완화하자고 노조 측에 요청한다. 그래야 사용자들이 좀 더 수월하게 고용에 나설 것으로 봤다. 노조 측은 완강히 거부하다가(고용보호는 정규직 노조의 핵심적 이익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를 대폭 완화하는 데 동의하게 된다. 비정규직만 대상으로 하는 ‘표적화된 유연성(targeted flexibility)’이 이뤄진 것이다. 지금도 유럽연합(EU) 측은 회원국들에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고용보호 차이를 축소하라고 권장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시도다.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는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어떤 수준인가?

상당히 심각한 편이라고 평가한다. 유럽에서는 남유럽 노동시장(특히 스페인)의 이중구조가 심하다. 비정규직 가운데 정규직 이동에 성공한 노동자의 비율(전환율:transition rate)에서 한국과 스페인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더욱이 한국에는, 유럽에 없는, 주로 정규직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가 있다. 바로 연공급(하는 일보다 근무 연수에 따라 임금수준을 결정)과 기업복지(유럽의 경우 기업복지보다 국가 차원의 복지)다. 한국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연공급은 해당 조직의 정규직과 비정규직(특히 여성) 간 임금 격차를 체계적으로 확대시키는 경향을 가진다. 연공급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관계있다는 의미다. 나는 한국의 노동시장에 대해 ‘지독한 내부자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EPA사회민주주의 성향 정당의 내각 점유율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관련 국가지출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는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래는 독일 사민당 지도부.

한국의 대기업 노조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현상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제조업 부문 대기업 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는 노사관계를 갈등적인 것으로만 파악한다. 임금 교섭과 단체협약 교섭을 통해 가능한 한 최대 수준의 요구를 내놓는다. 요구조건을 얻어내는 방법은 ‘전투적 파업’이다. 작업 현장에서는 노조 대의원들이 각종 규제로 생산과정에 개입한다. 어떤 차량이 잘 팔리는 경우, 그 생산 라인의 스피드를 올려야 한다. 다른 차종의 생산 공장에서 인력을 빼내올 필요가 있다. 수요가 없으면 해당 차종의 인력을 다른 공장으로 옮겨야 한다. 이 경우, (노조 차원의 교섭과 별개로) 회사 측과 현장 노동자 측이 교섭한다. 여기서는 노조 대의원들이 권력자다. 회사 측은 방어적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차량을 시장에 내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대의원들이 질질 끌면 회사 입장에서는 정말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가한 라인과 바쁜 라인 사이에 인력을 옮기는 정도는 회사 측의 권한인 줄 알았다.

인기 있는 차종의 생산 라인이 풀가동되는 경우에는, 그 차종의 생산을 다른 공장으로 가져가야 할 때도 있다. 대의원이나 해당 공장 작업자들이 동의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차종을 ‘우리 공장에서 갖고 있어야’ 연장근로, 휴일특근 등으로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투적 경제주의의 목표는 높은 임금인가?

한국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1993년 무렵부터 확대된다. 대기업 임금은 외환위기 등 몇몇 시기를 제외하면, 전 세계 노동운동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지속적으로 올랐다. 국내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철강이나 자동차, 조선 등 업종별로 조금씩 시기는 다르지만, 정규직 임금의 가파른 상승과 함께 사내하청이 증가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주로 까다롭거나 위험한 공정에 배치되었다. 사측은 사내 하도급 사용, 생산 외주화, 해외공장 설립, 자동화 등의 전략으로 대처했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투자를 거의 않고 해외 투자만 하게 되었다.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고 비정규직 비율을 확대했다. 제조업 부문 대기업들은 신규 채용 자체를 꺼린다. 결국 대기업의 좋은 일자리 수가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청년 고용도 덩달아 악화되었다.

대기업 노동자의 고임금과 하청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의 저임금 간에 관계가 있을까?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측이 정규직 노동자 임금을 엄청나게 올리다 보니 하청 단가를 더욱 박하게 책정하고, 이에 따라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지체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정이환 교수는 2015년 논문(〈임금 불평등 구조의 특성〉)에서 한국·독일·미국·영국의 ‘노조-임금 효과(노조가 임금을 올리는 정도)’를 분석한 바 있다. 미국·영국·독일은 대체로 중간 정도의 임금층에서 ‘노조-임금’ 효과가 크고, 저임금과 고임금층에선 작았다. 한국에서는 고임금층에서 ‘노조-임금’ 효과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다.

ⓒ연합뉴스한국의 정규직 노동조합은 ‘사회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위는 현대자동차 생산 라인.

내부자들은 복지제도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다. 최근 연금개혁 논의에서 노조들은 공무원연금의 개혁에 저항하거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30~34쪽 기사 참조). 외부자 처지에서 보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아니라 기초연금을 강화해야 한다.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에서 ‘사업장 가입자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 및 지역 가입자들의 연금 보험료를 일부 지원하자’고 제안했다가 민주노총에서 기각되기도 했다.

노조 측에선 ‘복지는 자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외부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개편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보듯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해 있다. ‘연금을 취약 집단으로 확장’ ‘공무원 및 공공부문 연금 특혜 폐지’ 등은 물론이고 정규직 위주로 설계된 실업급여 제도를 비정규직들에게 유리하게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복지제도를 탈산업화 시대에 맞게 조정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노조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걸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다. 사실 대기업 노조의 경우, 기업복지가 워낙 탄탄하니까 사회보장제도의 발전에 개입할 현실적 이유가 없다.

복지를 강화하려면 증세가 필수적인데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나라별로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꽤 다르다. 공적 급여 확대를 꺼리는 대신 최저임금을 올리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영국처럼 최저임금은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공적 급여를 제공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자료를 봤는데, 영국 이주민 단체가 만든 표다. 이주노동자들이 유럽에서 저임금 일자리를 구할 때 얻을 수 있는 ‘최종적 가구소득(임금에서 세금을 내고 공적 급여를 받은 액수)’을 국가별로 비교·제시했다. 영국은 미국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대표 국가니까 사회보장제도가 크게 축소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공적 급여가 상당하더라. 영국의 저임금 노동자는 소득세를 내고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공적 급여를 합친 최종 가구소득에서는 영국 노동자가 훨씬 유리하다. 한국의 경우, 면세받는 노동자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 (공적 급여를 올리려면) 증세가 필요하다. 부작용이 적지 않은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보다는 전체 근로 소득자에게 과세·증세하고 공적 급여를 늘리는 구조가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내부자 연합’이 형성되어 있나?

그 개념을 느슨한 의미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정규직을 대변하는 노동조합(민주노총, 한국노총)들이 선거 시기에 한 표가 아쉬운 정당들과 선거연합을 꾸린다. 민주당과 한국노총이 정책협의회를 갖는다거나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 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인적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내부자 연합이 유럽처럼 지속적이고 강하게 형성된 상태는 아닌 듯하다. 약하고 유동적이며 불안정해서, 연금개혁 같은 특정 국면에만 작동한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 중 하나인 ‘공공부문 직무급제(연공급과 달리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 근무 기간이 짧은 비정규직에게 유리)’도 그렇다. 총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정부에 ‘당장 추진하진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총선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느슨한 이유는?

유럽의 경우, 정당과 노조 간의 관계가 굉장히 긴밀했다. 과거에는 양측의 최고 고위층이 매주 회의를 할 정도였다. 사민주의 정당의 뿌리가 노동조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또한 한국의 정규직 노동조합은 ‘사회적 헤게모니’까지 갖고 있진 못하다. 제조업 부문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연공제 유지나 정년 연장 등에 큰 이해관계를 가진다. 정당과의 연대를 통해 제도화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동의를 얻어내긴 힘들다. 지키려는 제도의 성격 자체가 매우 퇴행적이기 때문이다.

ⓒAP Photo지난 1월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편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동참한 소방관들.

내부자가 퇴행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나?

독일 금속노조의 경우, 전통적으로 노동자의 숙련도를 굉장히 중시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보호 수준이 높아도 이를 상쇄할 만큼 노동자의 기능적 유연성(숙련도가 높고 여러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업무로 전환 배치 가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일찍이 독일에서는 노조 내부의 토론을 통해 낮은 직무등급과 높은 직무등급 간의 임금 격차를 크게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숙련도를 높여야 높은 직무등급으로 이동해서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독일 금속노조의 전통적인 숙련화 전략이다.

노조가 노동자들의 숙련화를 촉진한다? 한국이라면 ‘자본의 앞잡이’ 소리 들을 일 아닌가. 공공부문 직무급화는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기획재정부가 몇 개 사업장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으로 ‘직무급제 도입 여부’를 넣으면, 공기업 측에서 거부하기 힘들다.

공무원은?

사실 직무급을 도입한다면 공무원부터 시작해야 한다. 연구자들도 그렇게 권하는데 정부가 꺼리는 듯하다. 공무원을 빼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만 직무급 도입을 적용하면 반발이 있을 것이다. 공무원도 내부자 연합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정치인들은 이중적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외부자를 위한 사회·경제적 개혁이 가능하려면 ‘정치의 역할’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탈리아 좌파 정당인 민주당이 그런 시도를 한 바 있다. 2013년 선거에서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청년·비정규직·실업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면서, 민주당은 궁지에 몰렸다. 득표수가 이전 선거보다 300만 표나 줄었다. 집권 민주당은 신진 정치인인 마테오 렌치가 총리에 오르면서 2014년 3월에 ‘일자리 법안’을 제출한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이 거세게 반발했다. 법안의 핵심이 정규직의 고용보호를 대폭 완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도 로마에 노동자 100만명이 모여 반대 시위를 하기도 했다. 법안의 다른 내용을 보면, 정규직을 채용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사용자 측에 정규직을 고용할 강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이 쉽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대체적으로 청년 실업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민주당의 의도는 명확했다. 좌파 노동조합의 지지를 어느 정도 잃더라도 비정규직·청년·실업자 그리고 중산층 이상 계층으로까지 새롭게 지지 기반을 재구성하고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블록 부르주아(Bloc Bourgeois)’ 전략이라고 부른다.

결과는 어땠나?

일자리법은 그해(2014년) 말에 통과되었다. 2015년에 정규직 일자리가 71만5000개나 증가했다. 그러나 한시적이었다. 고용 보조금이 사라지자 고용 상황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버렸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그만큼 견고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정말 쉽지 않다.

블록 부르주아 전략의 다른 사례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전임자인 올랑드 대통령은 사회당 소속이었지만 공급 측면(노동시장 유연성, 노동생산성 상승)에 초점을 맞춘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사회당 지지율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올랑드 내각의 경제장관을 맡았던 마크롱은 ‘전진하는 공화국’이란 신생 정당을 만들면서 지지 기반의 재구성을 시도해 대성공을 거둔 경우다.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계급 간 양대 블록인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팽팽히 대립해왔다. 그러나 ‘유럽연합 문제’가 새로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기존의 좌우 대립구도에 파열구가 발생했다. (좌파면 EU 찬성, 우파면 EU 반대가 아니라) 기존의 좌파와 우파 블록이 모두 내부에서 EU에 대한 다양한 찬반 의견으로 갈린 것이다. 이렇게 열린 새로운 정책 공간에서 마크롱은 중간층과 그 상층까지를 포함한 새로운 지지 동맹을, 기존의 좌파 블록과 우파 블록을 가로질러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후엔 대선 공약이었던 노동시장 및 연금개혁을 지지 동맹의 뒷받침을 받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연금제도는 문제가 많다. 연금제도가 무려 42개에 달할 뿐 아니라 수령 연령이 62세로 너무 낮고(유럽의 다른 나라는 65세 이상), 연금재정 적자 규모도 2025년엔 172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연금개혁이 시도되었으나 좌파 정부나 우파 정부나 모두 실패했다. 아무튼 중도 좌파 세력의 일부가 새로운 지지 기반의 구성으로 정치적 활로를 개척하면서 기존의 낡고 불평등한 관계들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한국의 정치 지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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