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불평등 완화했나
  • 전혜원 기자
  • 호수 648
  • 승인 2020.02.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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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이중구조 해소와 산별교섭 촉진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장 평등화를 촉진하는 데 미흡했고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철학은 실종되어갔다.
ⓒ연합뉴스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은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임금이 높고 복지 혜택이 좋은 1차 노동시장과 임금이 낮고 복지 혜택도 거의 없는 2차 노동시장으로 나뉜다. 1차 노동시장에 속한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22.3~23.4% 정도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 가운데서는 16.5~19.3%로 추산된다(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 연공임금, 즉 근속연수나 나이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제도다. ‘호봉제’가 핵심이다. 호봉제는 고도성장기에 인력이 많이 필요했던 기업이 노동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했다. 젊을 때는 생산성을 밑도는 임금을 받지만 나이 들어서는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을 받는다. 노동자 처지에서도 생애주기에 맞는 임금을 받을 수 있어 괜찮은 거래였다.

그런데 호봉제의 지속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 저성장 고령화에 접어들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진 것이다. 새 인력을 뽑을 여력도 줄어든다. 더 큰 문제는, 호봉제의 가파른 임금 상승이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에게나 적용될 뿐 중소기업 정규직이나 대·중소기업의 비정규직에게는 남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괜찮은 기업의 임금만 계속 오른다면 기업 간 임금격차는 확대된다. 이뿐만 아니라 호봉제는 기업이 나이 든 노동자를 정년 이전에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으로 내보내는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적어도 민간기업에선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공공·민간을 불문하고 기업들이 꼭 필요한 업무까지 가능한 한 외주화하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임금체계와 관련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디에 다니느냐’에 따라 임금 규모가 달라진다.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돈을 받는다(동일노동-동일임금)’는 국제적 원칙에도 어긋난다. 그래서 호봉제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임금체계가 바로 ‘직무급’이다. 하는 일(직무)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제도다. 직무급이 도입되려면 어떤 직무가 얼마만큼 임금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사회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이다. 개별 기업의 사용자 측과 노조가 만나 ‘우리 회사의 임금’을 논의하는 방식(기업별 교섭)이라면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준수되기 어렵다(한국의 현재 관행). 회사 측의 지불능력과 노조의 힘에 따라 회사마다 임금 인상률이 다르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산업의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노조가 해당 산업 고용주 단체와 협상을 벌인다면, 결국 어떤 기업 노동자든 같은 일을 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기업 간 임금격차가 지금처럼 벌어지지는 않게 된다. 이른바 ‘산업별 교섭(산별교섭)’이다. 이 제도가 작동되는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연합뉴스2017년 7월15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018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확정되었다.

상징적 효과만 얻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공약 중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산별교섭 등 초기업(기업을 넘어서는) 단위 노사교섭 촉진’이 포함되었다.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해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공정임금제 도입으로 대기업-중소기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대졸-고졸 간의 지나친 임금격차를 80% 수준으로 축소’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모두 노동시장 내 임금격차를 개선하려 한 흔적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이중구조 해소와 산별교섭 촉진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직후 힘을 쏟은 정책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인상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뒤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2017년 7월에는 2018년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6.4% 인상하는 안이 의결되었다. 2018년 7월에는 2019년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0.9% 올리기로 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높여 불평등 해소에 기여했는지, 아니면 기존에 일하던 이들을 노동시장에서 튕겨나가게 하거나 영세 자영업자에게 타격을 입혀 불평등을 악화시켰는지는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렇다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불평등 해소에 기여했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6월 말 기준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18만500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 결정되었다. 그 대상은 대체로 저임금 직종의 노동자였다. 비정규직 중 파견·용역의 경우, 건물청소·경비·시설관리 3개 직종 전환자가 전체 전환 완료자의 69.7%를 차지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9년 5월 정규직 전환자 181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 전후 연간 평균임금이 약 390만원(16.3%) 증가했다(전환 이전 연 2393만원→전환 이후 2783만원).

문제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민간부문을 포함한 전체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데 취약했다는 점이다”(이정희, 〈노동리뷰〉 2020년 1월호). 현재로서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효과를 민간으로 확산시키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적 효과만 있을 뿐이다.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 고용’ 같은 원칙을 민간에 확산시키기 위한 공약이 바로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다. 법 개정 사안이다. 정책의 타당성과 별개로, 이 정책은 추진되지 않고 있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였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동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향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 정책 모두 ‘상위 20%의 임금이 높고 고용이 비교적 안정된 이들’과 ‘나머지’ 중에 ‘나머지’를 끌어올리는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상층부의 혜택도 동시에 적절하게 개혁해야 노동시장 평등화가 촉진되는데, 이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흡했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층의 임금과 가계소득을 늘려서 불평등을 개선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곧 소득주도성장의 전부인 것으로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중노동시장 해소도 취약노동 처우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소득주도성장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 결성 촉진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소기업·비정규직 등 2차 노동시장의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 비율이 낮다. 이때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를 통해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면,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어도 단체협약에 규정된 근로조건을 누릴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이 9%에 불과하지만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98%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도 ‘단체협약 적용범위 확대’를 공약했다.

ⓒ시사IN 신선영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불평등 해소에 도움이 된다. 위는 배달 플랫폼 노동자.

나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자영업자로 남겨두기에는 보호가 필요한 ‘특수고용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도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이중구조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흩어져 있을 때보다 노동조건에 목소리를 내기 쉽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결사의 자유’ 등과 관련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공약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를 통해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한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노동존중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존중 사회’를 내건 문재인 정부의 초대 노동부 장관이나 일자리수석은 노동 전문성이 부족했다. 집권 초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정상화, 공공부문 정규직화 등의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고 근로시간 정상화를 무력화하며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 난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들에 대한 전원 직접고용을 방기했다. 노동존중 사회라는 철학은 실종되어갔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취약 노동자의 삶을 바꿀 ILO 핵심 협약 비준, 산별교섭, 단체협약 적용범위 확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시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적 대화’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전략적으로 훌륭한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다. 사회적 대화란 노동조합과 기업, 정부의 대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노동정책을 논의하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그런 일을 하는 기구다. 여기서 노조와 기업이 일정 정도 양보하면서 타협을 이루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경사노위에 참여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사노위는 2018년 11월 민주노총 없이 출범해버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세에 몰린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보완할 근로시간 유연화(탄력근로제)를 경사노위에서 합의해달라고 했다. 기존 노동조합이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계층을 대표하라며 문재인 정부가 경사노위에 새로 포함시킨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가 합의를 거부하면서 경사노위는 파행을 겪었다. 물론 ILO 핵심 협약 비준과 관련해 노사 당사자들의 합의도 이뤄내지 못했다. 정부는 ILO 핵심 협약 비준 관련 법안을 집권 3년 차였던 2019년 10월에야 국회에 냈지만 법 통과는 난망하다.

“산별교섭 통해 직무급 논의하고 도입해야”

정부는 공공부문에서라도 직무급을 도입하는 데 뒤늦게 나서는 모양새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가장 많은 5개 직종에 적용하기 위해 제시한 ‘표준임금체계’의 도입률은 64% 수준에 그친다. 나머지는 기관별로 임금이 다르다. 물론 이 임금은 해당 기관의 기존 정규직을 따라 오를 수 있다. 표준임금체계를 도입한 곳도 기존 정규직은 호봉제를 적용받는 만큼 갈등 요소가 있다. 정부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회’는 지난해 11월에야 출범했다.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한다. 정부는 집권 4년 차인 새해 들어 매뉴얼을 배포하고 일부 공공기관에 직무급 도입을 독려하며 직무급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이병훈 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장(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은 “박근혜 정부 당시 성과연봉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노조와 충돌을 겪은 경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임금이라는 사안 자체를 현장에서 워낙 민감하게 받아들여 현 정부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다소 더디고 미온적이란 지적이 나올 법하다. (공공기관 내, 기관 간) 격차를 줄이되 생애임금을 일정 정도 보장해 현장의 불만과 반발을 줄이는 보완책을 강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은 공식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고령화와 격차 해소 측면에서 임금체계를 논의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에는 동의하지만, (직무급이) 저임금을 고착시킬 우려가 있고 직무평가도 쉽지 않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산별교섭과 맞물려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2019년 6월1일 민주노총과 ILO 긴급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ILO 핵심 협약 비준 촉구’ 집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몇십 년째 정부는 직무급, 노조는 산별교섭을 외치고 있다. 둘 다 자신이 부담스럽게 여기는 부분은 손대지 않으려는 것이다. 직무급은 산별교섭을 통해 논의하고 도입해야 의미가 있다. 이참에 서로가 원하는 것을 함께(직무급과 산별교섭)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양대 노총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계 싱크탱크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2020년 10대 노동의제’의 하나로 ‘산별교섭을 통한 임금체계 개편’을 꼽았다. 무기계약직·비정규직은 초기업 수준의 직무급을 도입하고, 공공부문·대기업 정규직은 하후상박을 통해 임금-근속 커브를 완만하게 낮추며 직무 기반 임금 비중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서도 임금체계 개편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국노총은 2025년까지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민주노총은 아직 정년 연장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정년 연장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됐다”라고 말했지만 정부가 법적 정년 연장 대신 ‘계속고용제도(60세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하되, 재고용·정년 연장·정년 폐지 등 방식을 기업이 선택) 도입 여부를 2022년 이후 논의한다’고 결정한 배경에도 임금체계 문제가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지금 상황에서 법적 정년 연장을 하면 1차 노동시장의 기득권자들만 혜택을 본다. 장기적으로 더 오래 일하는 고용 시스템을 위해서도 임금체계 개편은 필수적인데, 지금은 직무급을 하기 위한 조건도 안 되어 있고 정부 내에서조차 시급성에 대해 공감대가 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을 넘어서 무엇이 동일 노동인지 판단할 만한 근거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당장 성과도 나지 않고 반대는 심하며 10년 이상 걸리는 기초 작업이 요구되는 과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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