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위한 미국’ 꿈꾸는 샌더스의 도전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647
  • 승인 2020.02.1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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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급진 좌파’인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로 올라섰다. 탄탄한 자금력과 확실한 고정 지지층을 확보한 그의 과제는 중장년층 노동자와 흑인의 표심을 얻는 것이다.
ⓒAP Photo지난 1월26일 버니 샌더스 의원이 아이오와주 라포스트 유세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과연 ‘급진 좌파’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을까?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월3일 아이오와주에서부터 대선 후보들의 경선이 본격화되었다. 민주당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돌풍이 연초부터 거세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해로 정계 입문 28년째인 샌더스 의원은, 그동안 전국적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대선 자금 모금액 규모에서도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민주당 대선 후보 구도는 사실상 바이든 대 샌더스 2강 대결로 좁혀진 상황이다. 샌더스 의원은 2월3일 아이오와주의 코커스(당원대회)와 2월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 이어 3월3일 ‘슈퍼 화요일(캘리포니아 등 11개 주에서 동시 예비선거 진행)’까지 초반 기선을 잡을 계획이다. 샌더스 의원이든 바이든 전 부통령이든 초반에 승기를 잡은 후보가 대세론을 형성하며, 오는 7월 중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

상승세인 샌더스 의원이 바이든 전 부통령은 물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등 쟁쟁한 후보를 모두 물리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슈퍼 화요일’에는 기업가 출신의 억만장자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까지 선거전에 뛰어들 태세다. 샌더스 의원의 낙승을 예측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코커스와 프라이머리가 본격 시작된 가운데 그가 강력한 라이벌인 바이든 전 부통령을 제치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자 ‘샌더스 대망론’이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정치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1월27일자 칼럼에서 “그가 민주당 공식 후보로 지명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더는 억지 주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주류는 급진 사회주의적 색채 때문에 그가 떠오르는 상황을 탐탁지 않게 본다. 2016년 대선에서 그를 누르고 민주당 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샌더스 의원에 대해 “헛소리만 늘어놓아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력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에는 바이든 전 부통령 못지않게 샌더스 의원의 급부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선거 캠프 측은 샌더스 의원의 전 국민 의료보험과 대학생 학비 면제, 부유세 신설 등 급진적 공약이 젊은 유권자는 물론 저소득 노동자에게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해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선출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러스트 벨트(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위스콘신·인디애나주 등 노동자 유권자층이 집중된 퇴락한 산업지대)에서의 승리였다. 샌더스 의원이 러스트 벨트의 가난한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이 어려워진다.

샌더스 의원의 급부상을 보여준 시그널은 무엇보다 민심의 흐름이다. 2016년 대선 후보 경쟁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밀린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바이든 전 부통령에 눌려 워런 상원의원과 2위를 다퉈왔다. 그런 샌더스 의원이 CNN, NBC,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이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불과 며칠 앞두고 실시한 NBC 방송 여론조사에서 그는 22%를 얻어 15%에 그친 바이든 전 부통령을 크게 따돌렸다. 샌더스 의원은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 25%, CNN 여론조사에서도 27%로 1위를 차지했다. 선거 분석가들은 비교적 온건·중도파 친민주당 유권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청년들을 포함한 진보적 유권자를 중심으로 고정 지지층을 둔 샌더스 의원이 약진한 것이라고 본다.

샌더스 선거 캠프는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을 상대로 공을 들이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친민주 성향의 유권자들을 어떻게든 투표장으로 끌어내야 승산이 있다고 본다. 히스패닉계 유권자는 모두 2730만여 명으로 총유권자의 12%. 그러나 투표장에는 잘 나가지 않는다. 아이오와주의 경우 히스패닉계 유권자가 약 8만명에 달하지만 2016년 대선에서 투표장에 나간 사람은 그중 채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샌더스 캠프가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히스패닉계 유권자 공략에 구슬땀

샌더스 캠프는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에서 승리한 뒤 캘리포니아주의 히스패닉 유권자를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아성인 캘리포니아는 유권자가 무려 2000만여 명으로 그중 5%가 히스패닉계다. 대통령 선거인단 역시 미국 최다인 55명이다. 샌더스 캠프는 이미 캘리포니아 전역에 80명 이상의 스태프를 배치하고 5개의 캠페인 사무소를 설치했다. 현지 책임자로도 히스패닉계를 포진시켰다.

샌더스 의원은 자신의 급진적 사회주의 공약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중장년층 유권자들의 민심을 잡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 전문 여론조사 업체인 모닝콜의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이른바 Z세대(18~21세)와 밀레니엄 세대(22~37세)에서는 경쟁 후보들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X세대(38~53세)와 베이비부머 세대(54~72세)에서 그의 지지율은 각각 22%, 13%로 바이든 전 부통령의 30%, 35%에 크게 뒤진다. 먼마우스 대학의 여론조사 전문가인 패트릭 머레이는 온라인 매체 복스(Vox)와 인터뷰하면서 “샌더스 의원은 중장년층의 지지를 좀 더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40~64세 중장년 노동자층 유권자들을 잡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샌더스 의원은 흑인 유권자 표심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크게 뒤져 있다.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흑인층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48%의 지지를 받은 반면, 샌더스 의원은 20%에 그쳤다.

샌더스 캠프는 취약층의 지지를 만회하기 위한 선거자금이 넉넉한 편이다. 지난해 3분기에 180만여 지지자로부터 선거자금 3450만 달러를 모았다. 지지자 1인당 평균 18달러를 샌더스 캠프에 보냈다. 지지 기반이 철저히 일반 서민 유권자들임을 방증한다. 샌더스 선거본부의 파이즈 샤키르 캠페인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이기기 위해선 철저한 풀뿌리 운동이 필요하며, 이는 1인당 18달러 모금액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샌더스 의원은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나라를 만들자는 게 나의 선거운동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거액 모금 조직을 갖고 있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초반 상승세와 탄탄한 자금력, 확실한 고정 지지층을 확보한 샌더스 의원이 바이든 전 부통령을 계속 앞서갈까? 친민주당 성향 유권자 10명 중 7명은 여전히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을 경우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런 여론에도 샌더스 의원은 최근 한 유세에서 “슈퍼 화요일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 현대사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정치 혁명을 이루게 될 것이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버니 샌더스 의원이 그 혁명을 이룰지 아니면 2016년처럼 미완의 과제로 남을지 한 달 뒤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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