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캐나다 토론토의 한 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빌려 나오는데, 사서가 “책 제목이 뭐냐?”라고 물었다. 손목을 포개어 살랑살랑 흔드니 “갱남스타일?” 하며 금방 알아보았다. “강남은 맞는데 스타일이 아니라 드림이다.” 그것은 황석영씨의 소설 〈강남몽〉이었다.

손동작만으로 노래를 한눈에 알아내는 것도 그렇고, 한국 책 제목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가수 싸이의 인기를 말해준다. 유튜브의 기록적인 조회 수, 음원 다운로드 횟수, 음악 차트 상위권 진입 등 인기를 알려주는 수치도 많지만, 나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싸이의 인기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다.

1980년대 ‘빌리진’ 인기 능가

최근 ‘젠틀맨’이 발표된 이후 나는 일 때문에 만나는 토론토의 외국인 50여 명에게 “싸이를 아느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30~60대 평범한 남녀 시민인데 “모른다”라고 답한 사람은 1명뿐이었다. 토론토는 북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가 몰려드는 도시여서, 세계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젊은 층도 아닌 이곳의 중장년층이 싸이를 알고 좋아한다면, 전 세계 모든 연령층이 싸이의 음악을 즐긴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는 몰라도 싸이가 한국 가수라는 것은 다 안다.
 

ⓒ뉴시스가수 싸이(가운데)가 4월13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해프닝> 콘서트에서 신곡 ‘젠틀맨’을 선보이고 있다.


외국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의 공통점이 있다. “싸이를 아느냐?”라고 물으면 활짝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오우~, 예이 예이 예에~.” 그들은 인터넷이 아니라 주로 텔레비전을 통해 싸이를 보았다고 말한다. 라디오·텔레비전·신문 등 모든 매체가 싸이를 쏟아내고 있으니, 싸이는 보는 게 아니라 보인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린다. 내가 느끼기에, 지난해 세계 최대 히트곡 ‘강남스타일’의 북미 지역 인기는,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의 마이클 잭슨 ‘빌리진’을 능가한다.

싸이의 인기는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4월 중순 토론토의 중학교 퀴즈대회에 “요즘 유명한 한국 래퍼는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에는 싸이를 뉴스와 홍보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체들은 핼러윈데이에 유행할 의상으로 싸이 패션을 꼽았고, 12월16일 토론토에서 열린 미식축구리그 NFL 경기 광고에도 뜬금없이 싸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광고 카피는 ‘토론토 스타일’. 경기 자체가 아니라 하프타임의 싸이 공연이 손님을 모으는 이슈였다.

하프타임 공연 리뷰도 칭찬 일색. “그 직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저스틴 비버의 그레이컵 하프타임 공연에서는 팬들의 야유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반면 싸이 공연은 모든 관중이 춤추고, 지는 팀 팬들조차 스코어를 잊고 즐길 정도로 재미있었다”라는 리뷰가 최대 일간지 〈토론토 스타〉에 실렸다. 저스틴 비버는 현역 최고의 팝스타다.

‘강남스타일’에 이어 ‘젠틀맨’까지, 전 세계 팬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은 기존 팝 음악에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싸이의 독창성 때문이다.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한류의 인기가 싸이 붐에 한몫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신인 B.A.P의 북미 4개 도시 공연 티켓이 10분도 안 돼 매진되고 ‘Hallyu(한류)’라는 고유명사가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등 아이돌 그룹이 주도하는 한류의 강세는 여전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싸이 인기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아이돌 음악은 온라인을 주 매체로 사용하는 10대와 20대 초반 젊은 층 문화다. 아이돌 한류에 대한 젊은 팬들의 열기는 더없이 뜨거운 반면, 젊은 층을 빼고 나면 음악에 관한 한 ‘Hallyu’라는 용어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류를 알든 모르든 북미 대중은 싸이만 보면 신바람이 난다. 싸이 음악을 들으며 퍼포먼스를 보면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그러니 싸이 이름만 들어도 웃음과 함께 “오우~ 예에~” 소리가 터져나온다. 가사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옵 옵 옵, 오빤 갱남스타일!” “알랑가 몰라~~”만 따라하면 그만이다.

“어이없지만, 재미있다”

싸이 음악의 무엇이 세계 대중을 그토록 신명나게 하는가. 그들은 한결같이 ‘재미(fun)’를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크레이지’하다는 것이다. 크레이지는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와일드’ ‘아웃고잉’ ‘에너제틱’을 합친 좋은 의미이다. 거칠고, 거침없고, 에너지가 넘치면서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다. 팝 음악계에 이런 스타일의 가수는 없었다.

세계의 대중이 ‘강남스타일’에서 발견한 것은 ‘크레이지 가이’가 느닷없이 등장해 선사하는 엉뚱하고 어이없는 재미였다. 키 작고 통통한 평범한 외모의 남자가 나와서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어이없어서 웃었다’는 대중은, ‘젠틀맨’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이번에는 정말 재미있다’고 반응한다. 싸이가 전하는 웃음 코드에 익숙해지기도 했거니와 외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싸이의 ‘악동질’을 재미있게 보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가이로 유명한 노홍철의 춤을 이곳에서는 ‘저질 댄스’로 여기지 않는다. 노홍철은 재미있게 춤추는 ‘퍼니 가이’다.

대중을 사로잡은 싸이 음악의 가장 결정적인 매력은 가수와 함께 추는 춤이다. 싸이의 춤은 재미있고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 인기 팝스타들의 춤은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퍼포먼스가 대부분인데, 싸이는 바로 그 틀을 깨버렸다. 싸이는 팝 음악계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이 쉽게 출 수 있는 춤을 만들고, 함께 추자고 부추긴다. 아니, 함께 추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는 그저 괜찮은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강남스타일’ ‘젠틀맨’의 뮤직비디오는 어깨를 들썩이며 신명나게 춤을 따라 추게 만든다. 공연장에서든, 거리에서든, 스포츠 경기장에서든 싸이가 공연하면 팬들은 함께 춤을 춘다. 이곳 대중에게는 새롭고 신기하고 흥겨운 것이 싸이 스타일이다. 꽃미남 팝스타 저스틴 비버에게는 야유를 보내는 안티 팬이 있어도, 이웃집 젊은 아저씨 같은 친근한 외모의 싸이가 함께 춤을 추자는 데 따라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세계의 팬들은 싸이를 통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아주 새로운 음악 예술을 즐기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젠틀맨’이 확실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계의 대중은 ‘강남스타일’ ‘젠틀맨’의 곡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싸이가 만든 새로운 음악 문화와 그 스타일을 즐긴다. ‘젠틀맨’ 이후에도, 싸이가 어떤 음악을 발표하든 싸이 스타일은 전 세계에서 당분간 통할 것 같다.

기자명 토론토·성우제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sungwo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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