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좋은 커피점을 찾아 일본까지 다녀온 내게 2002년 봄 새로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경기도 일산에서 머리를 기른 어떤 자가 공방을 열어 커피를 가르치고 커피를 볶아 판매하는데, 미국에서 배워온 내공이 만만찮다는 내용이었다. “공~바아앙~?” 하며 궁금해했으나, 그해 5월 캐나다로 건너오느라 분주했던 까닭에 끝내 그곳을 찾지 못했다.

얼마 전 커피점 연재를 위한 취재차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건재할 뿐만 아니라 이름을 ‘공방’에서 ‘아카데미’로 바꾸고 서울 한복판인 명동으로 옮겨와 있었다. 그 사이 아카데미 산하 커피점 ‘전광수커피하우스’가 생겨났고, 그것은 명동 본점을 시작으로 9개로 늘어났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커피점 대표들이 모두 그렇듯, 전광수 대표도 지난 10년간 한국 커피계의 질적·양적 성장과 팽창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말 그대로 비약적이다.

전광수커피하우스를 운영하지만 전광수씨는 일반 전문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보통은 커피점을 열어 커피를 공부하고 좋은 커피를 만들어 사업을 키운다면, 전씨는 커피 자체보다는 커피 볶기와 볶기 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다. 커피 생산의 여러 과정 중에서도 볶기에 치중하면서, 그것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은 것이다.

 

ⓒ시사IN 백승기전광수커피하우스 명동 본점(위). 미국의 한 도서관에서 가져왔다는 의자와 탁자는 자연스럽고 튀지 않는 편안함을 연출한다.

 

 


제자 400여 명 중 150명이 ‘커피 창업’

공방과 아카데미를 통해 그동안 배출한 제자만 해도 400명이 넘는다. 그중 150명이 커피로 창업했다.
2004년 명동으로 옮겨온 뒤 2007년 전광수커피하우스를 여니, 제자 한 사람이 커피점을 만들어달라고 청했다. 프랜차이즈에 별 관심도, 노하우도 없어서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서울 안국동 옆 북촌에 전광수커피하우스 2호점을 열었다. 대박이 났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광수커피하우스가 9개(서울 7개, 지방 2개)가 되었다. 명동 본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자가 운영하는데, 그가 성수동 커피 공장에서 볶는 커피를 받아 쓰고 매출액의 1%를 프랜차이즈 비용으로 낸다(보통은 2% 정도. 캐나다에서는 8% 이상). 동문으로서 결속력이 강한 점주들은 3개월마다 모임을 열면서 뚜렷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전광수씨가 직영하는 명동 본점에 들어서면 그의 색깔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커피를 강하게 볶는 편이다. 전광수커피하우스의 색깔은 먼저 묵직한 보디감(입 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이나 무게감)에서 찾을 수 있다. 산지별로 커피 맛은 달라지지만 전광수 커피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 쓴맛에 섞여 살짝 묻어나오는 단맛.

 

 

 

 

 

ⓒ시사IN 백승기전광수커피하우스 전광수 대표(위)는 블랜딩(여러 종의 커피 섞기)을 중시한다. 그는 “커피 맛은 결국 블랜딩 싸움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또 다른 개성은 블랜딩(여러 종의 커피를 섞기)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그는 “맛은 결국 블랜딩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단종 커피의 맛은 한계점이 있는데, 커피를 여러 종 혼합만 잘 하면 무한대의 맛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단종 커피의 맛과 향을 ‘어떻게’ ‘잘’ 파악하여 ‘혼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실력이라고 믿는다.

사실 커피 볶는 방법은 이른바 고수 세계에서 큰 비밀에 속한다. 식당으로 말하자면 주방장의 레시피(조리법)와 같다. 그런 점에서 커피 볶는 방법을 가르치는 전광수씨를 ‘커피 전도사’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2년 전 〈전광수의 커피 로스팅〉이라는 책까지 펴내며 16년 노하우를 공개했으니 전도사 중에서도 ‘열혈’에 속한다. 그는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나도 그렇게 배웠으니까.”
멀쩡하게 회사에 다니다가 커피를 배우겠다며 미국으로 훌쩍 떠난 때는 나이 서른을 갓 넘긴 1993년이었다고 한다. 지인의 소개로 엘살바도르 출신의 스승 밀튼 코레아스 씨를 만났다. 동양 정서를 지닌 스승은 자기 집을 숙소로까지 제공하며 갈 때마다 일주일에서 보름씩 가르침을 아낌없이 주었다. 전광수씨는 미국을 오가며 배운 그 지식을 국내 제자들에게 나눠주는 셈이다.

그는 커피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재미’라는 말을 즐겨 쓴다. 커피를 볶는 것도 종류에 따라, 볶음 정도에 따라 수많은 맛을 잡아낼 수 있는 재미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도 배우러 오는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커피 볶는 가게가 크게 늘어서 1000개를 넘어섰으나, 그가 보기에 별 재미가 없어 보인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자기 세계를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데, 그런 곳이 드물다는 것이다.

전광수커피하우스의 명동 본점에서 그가 추구하는 개성을 찾아보았다. “나는 편안한 숍을 원한다”라고 했다. 문을 열 때부터 편안함을 주기 위해 전돌을 구해 바닥에 깔았다. 미국의 어느 도서관에서 가져왔다는 의자와 탁자는 앤티크 스타일이면서도 ‘튀지 않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차림표는 만화를 그려넣어 재미있게 꾸몄다. 특히 이런 문구가 눈에 띈다. ‘전에 먹은 커피가 진하면 바리스타에게 농도 조절을 요구하세요.’

주방 앞에는 직원들 보라고 이렇게 적어놓았다. ‘커피를 맛있게 추출하면 뭣 하나. 식기 정리도 안 하는 것을…. 자네는 알 거야.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것을….’ 손님들도 보고 웃으라는 것이다. 전광수커피하우스에는 이런 자잘한 재미가 많다.

※ ‘아주 특별한 커피&카페’는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기자명 토론토·성우제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sungwo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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