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배우기, 어렵고도 쉬운 길 문정우 기자 어느덧 ‘활자의 영토’를 연재한 지 3년8개월이나 지났다. 아쉽게도(동의하지 못하는 분도 많겠지만) 4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작별을 고해야겠다. 정년을 앞두고 안식월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글은 몇 가지 안타까움을 동력으로 삼았다. 아직 글에 대해 순정을 간직한 세대로서 인터넷상에서 수많은 글이 일회용품처럼 순식간에 소비되고 버려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적어도 몇 년은 두고 읽어도 좋을 글을 쓰고 싶었다. 이미지와 동영상에 치여 글이 갖는 매력이 날로 퇴색해가는 세태에 반감을 가졌다. 글쓰기로, 감각기관만이 아니라 내면의 깊... 젊고 매력적인 사회주의자 출현하나? 문정우 기자 대학에서 12학기 동안 글쓰기를 가르쳤다. 열정 있는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 내내 내 가슴은 첫사랑을 다시 만난 듯 설렜다. 35년 가까이 글을 써왔지만 정작 ‘가르치는 데’ 눈뜨기까지는 3년 넘게 걸렸다. 그전에는 의욕만 앞서 학생들에게 억지로 떠먹이려고 했을 뿐이다. 나 자신과 학생의 한계를 깨달아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이 즐겁고 자연스러워지기까지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유감스럽게도 행복한 경험만 한 것은 아니다. 갈수록 좋아져야 마땅하건만 가르치고 배우는 환경이 날로 척박해졌다. 초기에 전임과 강사들은 학급... 외계인이 안 오면 우리가 간다 문정우 기자 친구 중에 태양계에는 숨겨진 행성이 있다고 굳게 믿는 녀석이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3억8000만 년도 더 전에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의 후손일 리 없다. 진화론은 완벽한 사기다. 우리는 12번째 행성에 사는 거인, 즉 신의 직계다. 그가 나를 붙들고 이런 얘기를 너무나 진지하게 할 때면 당혹스럽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가 아니어서 더욱 놀랍다. 알고 보니 그의 생각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팔레스타인에서 자란 유대계 미국인 제카리아 시친이란 사람의 주장과 같았다. 그는 검증할 수 없는 주장을 일삼아 주류 과학계에서 의사 과... 엘살바도르 수도가 어디게? 문정우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새삼 한 가지 사실을 절감했다. 아직도 우리 운명은 우리 손아귀에서 멀다는 점이다. 두 정상이 우리 삶을 좌우할 중대한 논의를 하는데도 우리는 바깥에서 빙빙 돌아야만 했다. 회담이 결렬로 치닫는데도 한국 기자들은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날리는 트윗에만 목을 맸다. 백악관 출입기자의 표현대로 회담은 ‘초현실적으로’ 마무리됐지만 내용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잘난 척하며 장황하게 떠든 얘기를 들은 게 고작이다. 그 가운데는 차마 들어주기 거북한 대목도 있었다. 그는 한... 코끼리,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다 문정우 기자 거울을 들여다보면 앳된 소년도 혈기왕성한 청년도 간데없고 머리가 허연 중년 사내만 남았다. 얼굴 곳곳에는 검버섯마저 피었다. 인생은 창가를 휙 스쳐 지나가는 백마와 같다고 했던가. 새삼 세월이 빠르다는 걸 절감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상념에 젖을 수밖에 없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거울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살피는 존재는 지구상에 자기 말고는 없는 줄로만 알았다. 거울은 상상력을 자극해 신화와 전설, 동화의 소재가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완전한 독립체(자아)로서 의식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한의학은 과학인가 철학인가 문정우 기자 스타가 떼 지어 나오는 예능도 아니고 화제의 드라마도 아니면서 갤럽이 조사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순위 앞자리를 고수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MBN이 2012년 8월부터 방영해온 〈나는 자연인이다〉 말이다. 이 프로그램이 가진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치유이다. 저 험한 바깥세상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던 이들이 자연의 품에 안겨 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는 좇는다. 출연자 중에는 도시에서 남부럽지 않게 돈도 벌고 고급 식당에만 출입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일상적인 결핍과 소박... 죽음과 위험의 글로벌한 외주화 문정우 기자 오래전부터 삼성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거울은 우리가 법치를 운운하기에 한참 멀었다는 점을 냉정하고도 잔인하게 일깨운다. 이 기업은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이건희 회장을 거쳐 지금의 이재용 부회장 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숱한 범법을 저질렀다. 공짜 상속과 기업 이익을 위해 권력자와 공무원을 매수하는 짓을 반복해 가중처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번번이 법망에서 빠져나갔다. 함께 범죄를 도모했더라도 현직 대통령은 감옥에 가지만 이 기업 부회장은 무사하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LG는 물론이거니와 올망졸... 칩을 만드는 자, 천하를 가지리라 문정우 기자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자동차와 철강과 같은 오래된 전장에서 관세라는 구식 무기가 날아다녀 얼핏 식상해 보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정면으로 거론된 적은 없지만 양대 진영이 서로 절대로 양보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분야는 따로 있다. 바로 반도체다. 이 싸움은 지난 세기 핵 경쟁만큼이나 절박하다. 21세기의 주도권은 오로지 이 깃발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는가. 미래의 통신, 교통, 상거래, 금융, 전력망, 군대까지 현대의 모든 핵심 분야를 움직이는 ... 문재인 정부 발밑의 함정 문정우 기자 환경 보전이나 난민 대책을 위한 국제기구 회의를 취재할 때마다 마음에 남는 일이 있었다. 회의를 주재하는 이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대개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고 세련된 백인이었다. 그들이 하는 얘기는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이들이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상투적이었다. 보편적인 인류 공통의 가치, 나이·종교·성별·인종에 상관없는 인간의 기본권, 열린 사회, 다원화, 언론의 자유, 지속 가능한 발전 등등. 그들은 마치 밀린 숙제라도 하듯 언제나 이런 단어들을 빠르게 조합했다. 모두 중요한 얘기임에 틀림없지만 공허하다는 느... 동남극도 눈물을 흘린다 문정우 기자 어려서부터 교과서를 새로 받으면 맨 먼저 홀린 듯 읽던 책이 있었다. 지리부도였다. 그곳에서는 무궁한 얘깃거리가 펼쳐졌다. 공간을 압도하는 드넓은 바다와 박력 있게 대륙을 가로지르는 높은 산맥, 텅 비어 오히려 꽉 찬 듯한 메마른 사막.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선이 빚어내는 각 나라의 모양은 또 얼마나 다양하던지. 우리나라의 각 도나 미국 50개 주의 생김새는 따로 떼어놓고 보면 하나같이 개성이 넘쳤다. 나라나 지자체 가운데는 서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낳자마자 헤어져 자란 쌍둥이처럼 신통하게 닮은꼴이 많았다. 내 마... 북한도 자본주의를 잘못 배운 걸까 문정우 기자 북한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은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난다. 고인이 된 북한 지도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동상, 초상화의 융단폭격부터 받는다. 운전기사는 이 죽은 신들의 앞을 통과할 때면 공손하게 속도를 줄인다. 외곽에서 신들의 골짜기인 평양으로 들어가려는 차들은 경건하게 세차를 해야 한다.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시내에서는 노란색 작업복을 걸친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화초를 손질하거나 잡초를 뽑는다. 피라미드를 숭배하는 고대의 전제 왕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북한의 속살 문정우 기자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나은 법이다. 동영상이 판치는 인터넷 세상에서도 특파원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건져낸 현장 사진은 여전히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막강한 힘을 과시하곤 한다. 그러나 단 한 곳. 북한을 찍은 사진에서만은 좀처럼 그런 영감을 받기 힘들다. 숱하게 많은 기자와 작가가 북한에 다녀왔지만 언뜻이라도 저 사회의 속살을 보여줬다고 느끼게 만드는 작품은 보질 못했다. 아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그동안 북한 당국이 얼마나 정보를 가리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왔는지 말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갑근세 제로 시대’를 꿈꾸다 문정우 기자 지난여름 휴가 때 강원도 속초에서 삼척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다. 길이 아름답고 평탄해 최고의 라이딩 코스라는 얘기를 익히 들어 별러온 터였다. 폭염 속에서 악전고투했지만 풍광은 기대 이상이었다.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마치 신발을 적시기라도 할 것처럼 가까웠다. 아쉽게도 자전거도로는 해변을 따라 면면히 이어지지 못했다. 종종 내륙의 국도 쪽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바닷가 벼랑이 가팔라서가 아니었다. 재벌이 운영하는 리조트나 직원 전용 하계 휴양소, 군부대... 다시 듣게 된 그 이름 ‘헨리 조지’ 문정우 기자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닌 1970년대만 해도 참 배가 고팠다. 친구들끼리 캠핑을 가서 라면이라도 끓이면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젓가락을 들고 돌진해 사정없이 밀치며 입천장이 까지든 말든 라면을 최대한 목구멍 안으로 빨리 밀어넣으려고 애썼다. 개중에는 코펠에 침을 뱉는 녀석도 있었다. 더러우면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다 퍼먹을 테니. 나이가 들어서도 동물 세계에서 흔한 ‘형제 살해’와도 같은 살벌한 환경에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형제 살해란 한배에서 태어나거나 한 둥지에서 부화한 새끼들끼리 먹이를 두고 다투다가 약한 개체를 ... 당신은 마법사인가, 예언자인가 문정우 기자 당신은 어떤 편인가.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망해간다고 여기는가. 나는 본래 생겨먹기를 낙천적인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응원하던 권투선수가 KO패를 하기 직전까지도 역전승을 하리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아 빈축을 사곤 했다. 쇼핑을 할 때마다 눈에 띄는 족족 물건이 다 좋아 보여 결정 장애를 겪곤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의 쓴맛을 많이 보고 증상이 ‘호전’되기는 했으나 본바탕은 역시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겨울과 이번 여름을 겪고 나서는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삼한사온과... 조선만 사랑했던 황제의 재림일까? 문정우 기자 작고한 타이완의 지식인 보양 선생은 중국 역사에서 특히 정신 상태가 황폐했던 황제가 다스린 때를 단두정치(무뇌 정치) 시대라고 불렀다. 단두정치 시대는 수도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명나라 신종, 만력제 시대가 단연 어두웠다. 16세기 중국은 대암흑기였다. 지식인이란 자들이 3년상이나 대례의(적통이 아닌 태자가 친부모를 친부모로 불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논쟁에 목숨을 걸던 때였다. 엘리트 놀음에 이가 갈려서였을까. 어려서 황제가 된 만력제는 엄한 스승이던 재상 장거정이 죽자 정신없이 노는 데 빠져들었다. 아편을 상습적으로 피웠... 노회찬의 유머를 잃어버린 세계 문정우 기자 당신이 기자라고 치자. 급박하게 화재 현장에 달려왔더니 사람들이 미처 피하지 못한 가족과 이웃을 구하고 귀중품을 끄집어내느라 혼이 다 나간 모습이다. 냉정하게 취재에 전념해야 할까, 아니면 마감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사람들을 도와야 할까.대한민국이 아직 군부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노태우 정권 때 정치부 기자였던 나는 비슷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불의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김영삼· 김종필 세력을 흡수하고 재벌과 유착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6·29 선언 이후 잠깐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던 사회는 기후변화라는 막장의 카나리아 문정우 기자 1863년 미국 뉴욕 당구공협회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액수인 1만 달러 현상금을 내걸었다. 당구공의 재료인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발명하는 이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남획으로 코끼리 수가 줄고 피아노 건반이나 고급 장식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아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져서였다. 여기에 아마추어 발명가인 존 웨슬리 하이엇이 도전했다. 그는 몇 년간 고심한 끝에 천연 유기화합물인 셀룰로오스와 질산과 황산을 섞어 만든 니트로셀룰로오스에 장뇌(녹나무에서 추출한 고형 물질)를 혼합하면 당구공을 만들 만큼 단단한 물체를 합성할 수 있다는 ... 신용카드, 네 잘못이다 문정우 기자 하상욱 시인 특유의 짧은 시 가운데는 걸작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내가 항상 감탄을 금치 못하는 작품이 있다. 본문은, ‘니가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시를 읽는 재미는 제목에 있다. 여러분도 한번 맞춰보시라. 이 시에는 어떤 제목을 붙이면 좋겠는가. 답은 ‘신용카드’이다. 신용카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보통 사람에게 발급된 백지수표이다. 황송한 일이지만 없는 사람 사정 봐주려고 생겨난 제도는 아니다. 돈에 쪼들려 사는 게 일상인 이들에게는 잔인한 고문이 아닐 수 없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 합법적으로 ... 프라이버시의 사망 문정우 기자 지난해 프랑스 사진작가 스테판 글라디외는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보통 사람의 개성 넘치는 인물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북한 사람들은 독사진을 찍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애써 혼자 세워놓으면 약속이나 한 듯 말쑥한 차림에 억지웃음, 영락없이 체제를 선전하는 그림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적게는 두 명, 많게는 다섯 명이 함께 찍은 사진밖에는 건질 수 없었다. 그 정도 선에서만 사람들의 독특함이 살짝 살아났다. 그가 왜 답답해하는지 피사체가 된 사람도, 그의 작업을 내내 곁에서 지켜보며 따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