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 대학 학생 피터 F. 주와 중앙대 학생 노지영씨는 스물두 살 동갑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또 있다. 모두 1학년 때부터 대학 언론단체에서 일했고, 그 언론사를 대표하는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점이다. 청년 언론인으로서 두 사람의 열정이나 능력에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누리는 표현의 자유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버드 대학신문 〈더 크림슨〉 회장인 피터 주는 자기가 대표하는 신문이 학교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더라도 아무런 간섭을 받을 이유가 없다.

반면 지난해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편집장이었던 노지영씨는 다르다. 자신이 펴낸 교지에 비판적인 내용이 있다며 학교가 강제 수거하는가 하면, 돈줄을 쥔 학교가 다음 호 교지 발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 피터 주가 누리는 자유와 노지영씨가 겪는 고초 사이의 간극은 미국과 한국 대학의 표현의 자유 수준의 간극과 닮았다.

 

 

ⓒ시사IN 박초롱 인턴기자2월2일 중앙대 학생들이 교지 〈중앙문화〉 발행을 위협하는 학교 본부의 조처에 항의하며 언론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지난 2월2일 오후 중앙대 본관 입구에 검은 관 하나가 누워 있었다. 관 앞에는 흰 국화 다발이 놓였고 향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영정이 있는 자리에는 ‘언론자유’라는 글귀와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의 표지가 걸려 있었다. 중앙대 학생들이 학교의 언론 탄압에 항의해 연 ‘언론 장례식’ 퍼포먼스다.

학생들은 참배를 하고 조사를 읊었다.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본관에 들어오던 중 학생들과 부딪쳤다. 그는 “언론을 한다는 학생들은 이러면 안 된다. 촌스럽게…”라며 삿대질을 했다. 총장은 2층 계단을 지키는 양복 사내들을 뒤로한 채 사라졌다. 지지 발언을 마친 학생들은 영정과 함께 관을 운구했다. 교지 〈중앙문화〉 전 편집장이었던 노지영씨는 “오늘은 언론의 장례식이지만 곧 학내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중앙대 교지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중앙문화〉 58호가 발행되면서 시작했다. 중앙대 언론매체부장(교수)이 학생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책 내용 중 ‘기업은 대학을 어떻게 접수했나’ 기사 등을 문제 삼았다. 교수는 책을 일단 회수하고 총장에게 먼저 보여주자고 제안했고 편집장은 거절했다. 하지만 학교는 학교 본관 주변에 배포되어 있던 교지 4000부를 수거해갔다. 1월13일 중앙대 측은 2010년도 교지 발행 예산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교지를 폐간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 소식이 학내 커뮤니티 게시판에 오르면서 〈중앙문화〉 사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월18일 학교 측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교지 대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등록금 고지서에 교지 대금 납부 용지를 넣어서 원하는 학생에게만 구독료를 받는다는 뜻이다. 발행비 전액 삭감보다는 나은 제안이지만, 과거 학교에서 일괄 발행비를 대는 방식에 비해 예산이 크게 줄게 된다. 중앙대 홍보부는 “고려대·연세대 등 다른 대학도 교지 대금을 자율 납부하는 곳이 많다. 언론 탄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학 언론은 지역 밀착형 언론 돼야

하지만 고려대는 자율 납부를 하는 대신 교지가 본부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편집권이 독립되어 있다. 연세대는 등록금과 분리해 교지 대금을 받긴 하지만 100% 징수하고 있어 재정에 문제가 없다. 이에 대해 중앙대 홍보부는 “그건 그 학교의 정책이고 다른 학교의 사례를 우리가 굳이 따를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중앙문화〉 편집진은 성금 등을 모아 오는 3월에 교지 발행을 성사시킬 계획이다.

사실 〈중앙문화〉 사태는 요즘 벌어지는 대학 언론 편집권 갈등 가운데 최고로 심각한 사례가 아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교지 편집위원이 해임당하고 동덕여대에서는 학보사 기자 전원이 해임되는 사태도 있었다. 한신대, 부산장신대, 숭실대, 인하대, 명지대 등 비슷한 사태를 겪는 대학이 너무 많아 사회의 관심도 떨어지고 있다.

기성 세대는 대학 내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기 전에 대학 밖 언론 자유를 챙기기도 급급하다. 중앙대에서 ‘언론 장례식’이 열리던 2월2일 각 신문 미디어면을 장식한 뉴스는 감사원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MBC 대주주) 감사 착수 소식이었다.  KBS 김인규 사장을 비판한 사내 게시글이 삭제됐다는 뉴스도 보였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한국 언론자유 지수는 지난해 69위로 3년 전 31위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졌다.

 

 

 

 

중앙대 본부 쪽이 기사 내용을 문제 삼아 교지발행 예산 지급을 중단해 폐간 위기에 놓인 〈중앙문화〉

사회의 무관심 속에 대학 언론자유는 후퇴하고 있다. 학보사 편집권 갈등이야 1990년대 이후 내내 계속된 거지만, 요즘에는 학보뿐 아니라 대학 사회 곳곳에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고려대에서 ‘이명박’ 세 글자가 들어간 대자보나 플래카드가 철거된다거나 이화여대에서 총장 얼굴이 들어간 대자보가 사라지는 등의 일이 벌어진다.
요즘에는 언론 탄압의 주체가 학교가 아니라 총학생회인 경우도 많다. 경성대학교 교지 〈용연문화〉는 총학생회가 교지 대금을 부당하게 삭감해 책을 발행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총학생회의 성향에 따라 학생회비에 의존하는 자치 언론이 위협받는다.

대학의 표현의 자유 후퇴의 중심에는 대학 언론의 위기가 있다. 대학 언론 위기의 원인으로 대학 언론 자체를 꼽기도 한다. 정남기 교수는 “대학 매체가 독자의 관심보다 학술·사상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데서 오는 식상함”을 지적했다. 학교나 총학생회에 의지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된다. 거의 모든 학보사가 발행인을 총장으로 두고 있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형적 형태다. 해외에는 학보사가 독립해 있거나, 설사 재정 지원을 받더라도 발행인이 총장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대학신문을 직접 탐방하며 한국과 미국 대학 언론을 비교해온 김성해 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박사)은 “고정 독자를 3만명 이상 가진 국내 대학신문을 관심의 사각지대에 방치해도 되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사정이 비록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식 대학신문 모델(지역공동체 저널리즘)을 한국에 구현할 수 없다고 보지 않는다. 미국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대학도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식 모델의 경우 사회적 주목을 받는 이른바 ‘메이저 대학’(명문대)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대학 언론인 사이에서 새로운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 4대 대학 매체(학보·교지·방송사·영자신문)와 별개의 독립적인 자치 언론 매체를 창간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지난해 말 연세대에서는 〈나불나불〉〈헤드에이크〉 같은 자치 언론이 생겨났다. 고려대 학생은 지난해 무크지 〈Unknown〉을 창간했다. 원광대 학생들은 〈알지뉴스〉를 창간하려 한다. 서울대에서는 지난해 웹진 〈자하연 잠수함〉이 창간됐다. 자치 언론은 몇 년 못 가 흐지부지 문을 닫는 곳이 많지만, 〈서울대저널〉처럼 15년째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있다. 미국 대학신문들이 본부로부터 독립해 편집권을 보장받게 된 계기는 역설적으로 대학 신문의 위기가 닥쳤던 1970년~1990년대 사이에 마련되었다. 때로는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박초롱·김수지 인턴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