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일반인유가족협의회 배상수 부위원장(48)의 어머니 고 김순금씨는 그날 환갑 기념으로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나던 길이었다. 배 부위원장은 지난 10년 세월 동안 일반인 유족들을 쫓아다니고 부탁하러 다니다 추모를 다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슨 정신에서인지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출근을 했어요. 회사 현장에서 일하던 도중에 ‘동생에게 연락해보라’는 전갈을 받고 나서 동생과 통화를 했어요. 동생은 어머니가 타신 배가 사고 난 것 같다는 거예요. 진도로 출발하기 전에 TV에서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 입으실 트레이닝이랑 이불을 챙겨서 내려갔어요. 내려가는 도중에 여행사랑 병원 등에 연락을 해보고 진도체육관 쪽에도 연락했는데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팽목항으로 가게 됐어요.
오후 1시쯤 도착했던 것 같아요. 몇몇 가족이 바다만 바라보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고, 저도 그렇게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그러다 배가 한 척 들어왔다는 기사를 보고 해경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한 척 더 들어올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또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나중에 더 이상 들어올 배가 없대요. 그땐 막막했어요.
어머니 친구분들의 자제들은 진도체육관에 있었는데, 시신이 올라오면 제일 먼저 팽목항으로 온다고 해서 저는 끝까지 기다렸어요. 그런데 이해 못할 일들이 벌어졌지요. 대형 천막이 쳐지고 인원 파악을 한다고 해서 이름을 쓰러 갔는데 ‘몇 학년 몇 반’ 이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일반인 탑승자라고 했더니 학생 아니면 파악 안 한다는 거예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자기도 모르겠대요.
사고 첫날 밤 해경 배를 타고 현장에 갔어요. 그날 밤 바다가 잔잔했어요. 진짜 호수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잠수사 한 분이 오셔서 바닷속의 해류가 빨라서 내려가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분 말을 믿어야지요.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현장에 가봤는데 해경 담당자는 매번 바닷속 해류가 빨라서 못 들어간다는 말만 했어요.
어머니는 세월호 같은 선실에 있던 친구분들과 함께 4월21일에 뭍으로 올라오셨어요. 어머니는 늘 ‘네가 손해 보는 삶을 살아야 잘 사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손해 보지 말고 나가셨어야지, 이것 때문에 기다리고 또 저것 때문에 기다리다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10년 동안 정부를 너무 믿고 따라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처음부터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소리 높여서 얘기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싶어요. 더 앞에 나가서 소리치며 싸웠어야 했는데 뒤로 빠져 있었던 게 가장 후회돼요.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2016년에 문을 열었는데 지원금을 주지 않아서 2017년 몇 달 동안은 문을 닫기도 했어요.
어떤 참사가 발생하면 피해자 가족들이 단체를 만들지 않아도 되도록 체계가 잡혔으면 좋겠어요. 피해자 가족 단체가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억울함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족 잃은 슬픔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드는데, 외적인 부분을 자꾸 건드려대니까 더 안 잊혀요. 무슨 일만 생기면 그 일을 복기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10년 세월이 흘렀어도 제대로 된 추모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 같아요. 인천가족공원에 오시면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다는 걸 꼭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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