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0일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민자 임시 숙소로 지정된 뉴욕 맨해튼 한 호텔 앞을 지나가고 있다.ⓒ양호경 제공
1월30일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민자 임시 숙소로 지정된 뉴욕 맨해튼 한 호텔 앞을 지나가고 있다.ⓒ양호경 제공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 한 호텔 앞에서 이민자로 보이는 한 여성에게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여성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페인어로 몇 마디 하고 호텔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곧이어 호텔 앞에 스쿨버스가 도착했다. 여성은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와 함께 호텔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루스벨트 호텔은 대표적인 이민자 임시 숙소다. 호텔 앞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줄지어 스쿨버스를 타고 내린다. 한겨울인데도 가을옷을 입은 아이들이 가끔 눈에 띈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스페인어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2022년 봄부터 18개월간 16만명이 넘는 이민자가 뉴욕으로 몰려들었다.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이민 행렬로 뉴욕시와 학교, 그리고 이민자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뉴욕에 급증한 이민자는 대부분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위기와 안전 문제를 피해 국경을 넘은 난민들로, 주거과 일자리 등 미국에서 살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미국 남부 국경을 넘어 텍사스주 등으로 들어온 이민자들이 뉴욕을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다. 뉴욕이 임시 숙소를 제공받을 권리(Right to Shelter)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연방법과 뉴욕 주법은 이민자라 하더라도 신분에 상관없이 무료로 교육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 덕분에 아이들은 이민자라는 불안정한 법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임시 숙소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뉴욕시 발표에 따르면 2022년 6월 이후, 최근까지 아동 3만3000명이 학교 등록을 마쳤다. 이는 전체 뉴욕 학생 수 98만명의 3%를 넘는 규모다. 이민자 아이들의 학교 교육이 순탄치만은 않다. 특히 루스벨트 호텔과 같은 대규모 난민 숙소 인근 학교는 갑자기 늘어난 학생을 교육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비영리 교육 뉴스 사이트 ‘The 74’는 뉴욕시 퀸스 지역의 한 학교에서는 전체 학생의 3분의 1 정도인 이민자 학생 267명이 지난 1년간 새롭게 등교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민자가 대폭 증가한 학교에서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의사소통이다. 이민자 아이들은 교사와의 의사소통 문제로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 없고, 아이들 간 소통 문제로 교우관계 형성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뉴욕시에서는 당장 영어 교사 3400명과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교사 1700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필요한 만큼의 교사 자격을 갖춘 사람 찾을 수가 없다. 얼마 전 미국 〈CBS 뉴스〉는 이민자 임시 숙소에 거주하며 학교에 다니는 13세 학생이 학교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폭행을 당한 사례를 보도했다. 이민자 아이들의 학교 적응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는 추세다.

이에 뉴욕시는 2022년부터 ‘프로젝트 오픈 암스(Project Open arms)’ 정책을 통해 이민자 아이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학교 등록 및 예방접종, 통학을 위한 스쿨버스와 교통카드 지원뿐만 아니라 수업 교재를 다양한 언어로 제공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학생들의 심리 상담 인력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선 학교는 혼란에 빠졌다. 사실상 뉴욕시가 이민자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학교 스스로 감당하도록 내버려두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각 학교에 ‘한 학생도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 알려주지 않아 논란이 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이민자 임시 숙소 제한 규정이 생기면서 아이들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뉴욕시는 임시 숙소 제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녀가 있는 이민자 가족이 한 숙소에서 60일 이상 체류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60일마다 새로운 숙소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 숙소가 학교 근처로 배정되지 않을 수 있다. 임시 숙소 제한 규정으로 인해 아이들은 막 적응한 학교를 다시 옮기거나, 길게는 편도 2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됐다. 뉴욕시의 교육 지원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임시 숙소 제한 규정이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우려한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뉴욕시 교육감 데이비드 뱅크스는 “뉴욕시 공립학교가 여러분을 위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라며 어떠한 신분이든 학교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보장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각 학교에서는 이민자 아이들을 위해 겨울옷을 기부받거나 임시 숙소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빨래를 도와주기도 한다. 교사들은 언어 장벽이 낮은 미술과 음악, 체육활동에 교육과정을 녹여내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영어와 스페인어가 가능한 성인들의 자원봉사 참여도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뉴욕에서 10세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한 한국인 부모는 포용적 이민정책에 수긍하면서도 “교사들이 새로 온 이민자 학생들을 챙기느라 다른 학생들에게 집중을 못하는 것 같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민자 아이들이 학교에서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봤는데 본인의 아이가 소외되는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다.

지난해 8월1일 이주민 수십 명이 뉴욕시가 제공하는 임시 숙소 배정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AFP PHOTO
지난해 8월1일 이주민 수십 명이 뉴욕시가 제공하는 임시 숙소 배정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AFP PHOTO

“더 이상 공간이 없다”

뉴욕시 정부도 이민자 지원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뉴욕시는 2023년도에 이민자를 위해 전체 시 예산의 5% 수준인 14억5000달러(약 1조9300억원)를 지출했으며, 2025년까지 총 120억 달러(약 15조9700억원)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도 6만여 명이 임시 숙소 200여 곳을 사용하고 있어 지출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민자 증가 역시 계속되리라 보이는 상황에서, 임시 숙소로 제공되던 호텔도 한계에 이르렀다. 뉴욕시가 제공한 일부 임시 숙소 중에는 겨울철 한파를 막지 못하는 천막 형태로 만들어진 곳도 있었다. 여론의 비판을 받자 인근 학교 체육관을 임시 숙소로 정했다가 해당 학교와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연방정부와 뉴욕주에 재정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지난해 10월에는 중남미 국가를 방문해 “더 이상 공간이 없다”라며 미국 국경을 넘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뉴욕시는 60일 이상 체류 금지 규정처럼 임시 숙소를 제공받을 권리(Right to Shelter)를 약화시키기 위한 여러 법적 조치 역시 함께 추진하고 있다.

뉴욕은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매년 24만명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현재도 전체 인구의 37%인 310만명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민자들의 도시’이다. 아이들은 가방 하나 들고 미국 국경을 넘어 텍사스에서 사흘간 버스로 뉴욕까지 이동해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학교에 다닌다. 이 아이들의 도전만큼, 뉴욕 역시 큰 도전에 직면했다.

기자명 뉴욕·양호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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