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는 5월1일부터 월 49유로에 전국 근거리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도이칠란트 티켓(49유로 티켓)’ 판매를 시작했다. ⓒdPA

5월1일부터 독일에서는 49유로면 한 달 동안 지역 철도, 지하철, 버스, 트램 등 전국의 모든 근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티켓의 공식 명칭은 ‘도이칠란트 티켓’이지만 가격 때문에 ‘49유로(약 7만원) 티켓’으로 불린다. 49유로 티켓은 ‘물가상승으로 인한 가계 부담 경감’ ‘대중교통 이용 증진을 통한 기후보호’ ‘독일 교통 티켓 시스템의 현대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정치권의 오랜 논의 끝에 도입되었다. 이 티켓은 독일철도공사, 지역 교통회사, 그리고 다양한 교통 관련 앱을 통해 정기구독 형태로 구입할 수 있다. 더 이상 사용을 원하지 않는 소비자는 티켓 구독을 취소하면 된다.

4월3일, 독일 전역에서 49유로 티켓의 선판매가 시작되었다. 독일 운송회사협회(VDV)에 따르면, 4월25일까지 이미 300만명이 티켓을 신청했다. 이 가운데 75만명은 대중교통 정기권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49유로 티켓 덕분에 대중교통 이용자가 확대되고 기후보호 효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판매 결과이다. 운송회사협회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용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존 정기권 소지자 중 약 1100만명이 49유로 티켓을 이용하고 신규 고객도 약 560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49유로 티켓은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 ‘9유로 티켓’의 후속 정책이다. 물가상승에 따른 가계 부담 감소와 에너지 소비 감축을 위해 도입된 9유로(약 1만3000원) 티켓은 총 520만 장 판매되었다. 운송회사협회에 따르면 티켓 구매자 가운데 20%는 대중교통을 정기적으로 이용하지 않던 사람들이다. 운송회사협회는 9유로 티켓을 통해 탄소배출량이 한 달에 60만t 감소되는 효과가 있었으며 이것을 1년으로 환산하면 700만t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독일은 교통·운송 분야에서 연간 이산화탄소 1억6000만t 이상이 배출되기 때문에 교통 전환을 통한 탄소배출량 감축은 독일의 기후보호 목표 달성을 위해 중요하다.

독일 정부는 9유로 티켓의 긍정적 반응에 힘입어 이 사업을 장기적인 제도로 안착시키기 위해 49유로 티켓을 도입했다. 재정상 운영이 가능하도록 한 달에 9유로에서 49유로로 티켓 가격을 높였고 시민들의 지속적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월마다 자동으로 티켓 가격이 결제되는 정기권의 형태로 만들었다. 티켓 판매와 검사 시스템을 현대화하기 위해 칩카드나 핸드폰 티켓만을 판매할 계획이었지만, 준비 미비로 올해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종이 티켓을 허용하고 있다.

녹색당과 자민당의 이견 좁힌 교통장관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기획기사에서, 49유로 티켓 도입은 치열한 정치적 합의 과정에서 얻은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오르며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자동차 휘발유 가격을 정부가 보조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정부 내각 내에서는 재정장관인 자민당의 크리스티안 린드너가 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녹색당은 강하게 반대했다. 내연기관 자동차에 쓰이는 화석연료의 가격을 보조하는 정책은 녹색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후보호라는 목표와 충돌하기 때문이었다. 녹색당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속도로 운행속도 제한을 요구했다. 에너지 비용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량 감소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업체를 비롯해 산업계에 호의적 입장을 가진 자민당은 녹색당의 요구를 강하게 반대했다.

연방정부의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녹색당·자민당은 물가상승에 따른 시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에너지 사용을 감축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써야 할지 치열한 논의를 벌였다. 녹색당과 자민당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교통장관인 자민당의 폴커 비싱이 지금까지 검토하지 않은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해 지난해 6~8월 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유류세 인하를 실시하는 대신, 에너지 감축을 위한 보완책으로 같은 기간 독일의 모든 근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월 9유로 티켓을 도입하자는 안이었다.

녹색당은 오랫동안 대중교통 지원 정책에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연정 파트너, 특히 자민당이 반대할 것을 예상해 안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녹색당은 교통장관의 안에 찬성했고 올라프 숄츠 총리의 사민당 또한 서민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해당 안을 수용했다. 그렇게 9유로 티켓이 탄생하자 시민들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른 국가에도 에너지 위기와 기후위기를 함께 타개할 수 있는 정책으로 소개되었다. 정부 인사들도 해당 정책의 성과와 의미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9유로 티켓이 지금까지 독일이 시행한 최고의 정책 중 하나라고 추켜세웠다.

정책이 호응을 얻자 녹색당은 일시적인 9유로 티켓을 장기적인 교통정책으로 정착시키는 안을 적극 제시했다. 9유로 티켓이 시행되고 있던 지난해 8월 녹색당 원내교섭단체는 지역 근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월 29유로 티켓과 독일 전역을 범위로 하는 월 49유로 티켓을 도입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재정장관인 린드너는 정부 예산의 한계를 이유로 9유로 티켓의 후속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최초 9유로 티켓을 제안한 같은 당의 비싱 교통장관이나 자민당의 몇몇 정치인은 독일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근거리 교통 티켓을 정착시키는 것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비싱 장관은 9유로 티켓을 통해 독일의 복잡한 대중교통 시스템과 요금제를 현대화할 기회를 얻었다고 평가하며 장기적으로 새로운 티켓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각 지역의 교통회사들이 요금 시스템을 결정하기 때문에 지역마다 서로 다른 복잡한 요금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도이칠란트 티켓이 도입된 5월1일 베를린에서 지하철을 탄 폴커 비싱 교통장관(왼쪽). ⓒAFP PHOTO
도이칠란트 티켓이 도입된 5월1일 베를린에서 지하철을 탄 폴커 비싱 교통장관(왼쪽). ⓒAFP PHOTO

새로운 티켓에 대한 요구는 정부 여당 내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독일 소비자단체연맹은 9유로 티켓을 통해 자가용에서 대중교통으로 옮겨간 사람들이 높아진 대중교통 가격에 의해 다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독일 전역의 근거리 대중교통 이용을 위한 29유로 티켓의 도입을 요구했다. 야당인 기사당에서도 교통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바이에른주 총리인 기사당의 마르쿠스 죄더는 1년 동안 사용가능한 365유로(약 53만원) 티켓을 내놓자고 제안했다.

대도시일수록 호응도 높아

결국 지난해 9월 연방정부는 9유로 티켓의 후속 티켓을 49유로에서 69유로 사이의 가격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합의를 통해 49유로로 가격이 결정되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저렴한 티켓 가격으로 인해 교통업체들이 입을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지원금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해마다 15억 유로(약 2조1700억원)의 자금을 각각 조달해야 한다. 티켓 가격은 시작 단계에서는 49유로이지만 물가상승에 따라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부퍼탈 기후·환경·에너지연구소(부퍼탈 연구소 Wuppertal Institut für Klima·Umwelt·Energie)는 높은 가격 때문에 49유로 티켓이 9유로 티켓보다 수요가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퍼탈 연구소의 교통 분야 연구 책임자인 트로스텐 코스카는 라디오 '도이칠란트풍크'와의 인터뷰에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나 주말에 정기적으로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49유로 티켓이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출퇴근용 티켓의 경우, 고용 사업장이 일정 금액을 부담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49유로보다 저렴한 월 34.30유로(약 5만원)에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거리에 따라 기존 정기권이 월 200유로(약 29만원)가 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주거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특히 큰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들은 시민급여 수급자나 저소득층에게 49유로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고 정부안을 비판해왔다. 이들 단체는 9유로 티켓을 통해 저소득층도 이동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지만 49유로는 부담스러운 가격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방정부는 이들 계층을 위한 지원을 지방정부의 몫으로 떠넘기고 있다. 지방정부에 따라서 실제로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계획 중인 경우도 있다. 베를린시는 49유로 티켓 도입 이전인 지난 4월까지 이미 사회 취약계층에게 9유로 티켓을 제공해왔으며, 5월 이후에도 해당 정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함부르크 주정부는 기초생활 대상자에 한해 49유로 티켓에서 24.8유로를 할인해준다. 아동이나 학생, 노인을 대상으로 저렴한 지역 티켓이나, 무료 티켓을 지원하는 지방정부도 있다. 좌파당은 연방의회에서 경제 능력이 낮은 대학생과 직업교육생을 대상으로 무료 티켓을 제공하는 법안을 상정했지만,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슈피겔〉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시베이가 지난 4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일수록 49유로 티켓에 대한 호응도가 좋았다. 대도시의 경우 응답자 39%가 49유로 티켓 구매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의 경우 겨우 12%만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 9유로 티켓 때도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대중교통 인프라가 좋지 않아 티켓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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