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31일 아침,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자전거를 타던 44세 여성이 레미콘 차량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직후 병원으로 옮겨진 여성은 바로 뇌사 판정을 받았고 11월4일 결국 사망했다. 사건 직후 일부 언론은 기후 활동가들의 도로 점거 시위 때문에 구조대 차량 투입이 늦어졌다며 시위대에 책임을 돌렸다. 시위대가 좌파 테러 단체였던 적군파(RAF, 68혁명 이후 서독에서 조직된 무장단체)와 비교되기도 했다. 이 사고는 순식간에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사고 장소에는 하얀 자전거가 세워졌으며 사람들은 그곳에 꽃과 촛불을 가져다 놓았다.
기후 활동가들은 당시 인근에서 기후재난을 막기 위한 정부의 신속한 조처를 요구하는 도로 점거 시위를 하고 있었다. 소방 당국의 최종 보고에 따르면 시위 때문에 레미콘을 들어 올릴 특수 차량의 투입이 약 8분 지연되었고 긴급한 상황이어서 특수 차량의 도움 없이 구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출동한 응급의사는 레미콘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차량이 빨리 왔다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대응 시위를 향한 여론이 비판적으로 급변했다. 사건 일주일 후 주간지 〈슈피겔〉은 베를린에서 기후 활동가들이 도로 위에 손을 본드로 붙이고 점거 시위를 하는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기사는 시위대를 향한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을 자세히 묘사했다. 검정 SUV를 탄 한 남자가 창밖으로 “살인자!”라고 소리를 질렀고, 인도를 지나가던 행인이 기후 활동가들에게 일주일 전에 발생한 죽음의 책임을 추궁하기도 했다.
사건 직후 〈슈피겔〉이 여론조사기관 ‘시베이’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도로 점거, 미술작품에 대한 음식물 투척 같은 현재의 기후위기 대응 시위 방식이 지나치다고 평가했다. 응답자 중 78%는 이런 방식의 시위를 하는 활동가들에 대해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도 대답했다. 이런 반응은 같은 설문에서 응답자의 53%가 정부의 기후보호 정책이 부족하다고 평가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정부의 기후보호 정책이 충분하다는 응답은 29%였다). 응답자들은 정부가 더 강한 기후보호 정책을 펴기 원했지만 이를 요구하는 시위 활동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현재 독일에서 도로 점거 같은 방식의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지난해 초 활동을 시작한 기후보호 단체 ‘마지막 세대(Letzte Generation)’다. 이들은 자신들이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며 3년 안에 기후변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단체의 활동가인 카를라 로첼은 주간지 〈차이트〉 인터뷰에서 친구들과 기후위기에 대한 자료를 자세히 읽은 후 더 이상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결국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정치학 공부를 그만두고 전업 기후 활동가가 되었다. 마지막 세대의 활동가 대부분은 로첼처럼 학업이나 직업을 그만두고 운동에 뛰어들었다. 마지막 세대는 자전거 운전자 사망사고 이후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강한 비판과 비난에도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에만 수도 베를린에서 이들의 활동에 대한 형사 고발이 약 2700건 접수되었다.
‘1.5℃ 투쟁’ 상징이 된 뤼체라트에서 생긴 일
기후보호 운동에 대한 불신의 시선은 ‘마지막 세대’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후위기에 대한 독일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청소년·청년 기호보호 운동인 ‘프라이데이 포 퓨처’의 시위 덕이 크며 여론 또한 지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현재는 기후보호 운동과 시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와 의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노천 갈탄 채굴 예정 지역인 뤼체라트에서 있었던 시위대 해산과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시위대 간 폭력에 대한 여론은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뤼체라트는 에너지 기업 RWE가 기존 노천 탄광을 확장해 새로운 채굴을 계획하고 있는 지역이다. RWE의 계획과 법령에 따라 이 지역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은 2006년부터 점차 다른 곳으로 이주해갔다. 하지만 2020년부터 기후 활동가와 환경운동가들이 새로운 갈탄 채굴에 반대하며 뤼체라트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지구 기온 상승 저지선 1.5℃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녹색당 소속인 로베르트 하베크 연방 경제기후 장관과 모나 노이바우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경제기후 장관이 뤼체라트 갈탄 채굴을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RWE와 합의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의 탈석탄을 당초 계획보다 8년 앞당긴 2030년에 완료하고, 또 다른 탄광 확장 예정 지역 다섯 곳의 계획을 포기한다는 조건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또한 합의의 근거가 되었다. 정부와 RWE의 합의는 기후보호 단체와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때문에 새로운 갈탄 탄광이 필요하다는 근거를 반박하는 목소리가 컸다. 에너지 경제학자인 독일경제연구소 소속 클라우디아 켐페르트 교수는 현재 채굴이 진행되고 있는 탄광만으로도 필요한 갈탄 수요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다며 정부의 합의에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에도 채굴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시위대에 대한 강제 해산이 결정되었고, ‘프라이데이 포 퓨처’를 포함한 기후보호 단체들은 해산을 막기 위한 연합을 결성했다. 지난 1월 경찰이 투입되면서 여러 날에 걸쳐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이 발생했다. 1월14일 뤼체라트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집회 측 추산 최대 5만명의 시위대가 몰려왔다. 그리고 1월14~15일 경찰이 시위대를 최종 연행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났다. 경찰과 시위대는 서로의 폭력을 규탄했다. 시위대는 경찰에 의해 적게는 수십 명에서 최대 1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경찰이 조직적으로 시위대의 머리를 가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찰은, 해산 과정에서 구급차에 실려 간 활동가는 9명이며 해산이 시작된 뒤 부상당한 경찰이 70명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시위대는 경찰 차량을 공격하거나 경찰을 향해 화염병과 돌을 던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경찰의 연행에 평화롭게 대응했는데, 경찰과 일부 시위대 사이에 발생한 충돌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시위대를 폭력 집단으로 규정하려는 목소리가 즉각 표출되었다. 보수 성향인 기민당 소속 슈테판 감 연방의원은 프라이데이 포 퓨처가 폭력 시위를 정당화했고 이를 통해 기후 활동가들의 반민주주의적 모습을 알게 되었다며 시위대를 규탄했다.
해당 사건을 통해 기후보호 운동 사이에 균열이 생길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차이트〉는 한 칼럼에서 뤼체라트 사건을 통해 녹색당과 기후 활동가 사이의 분열뿐 아니라, 기후운동 자체에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녹색당은 이번 사건을 통해 기후보호 활동 단체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기후보호라는 녹색당의 정치적 사명이 이번 사건을 통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녹색당 내부 인사 중 일부도 하베크와 노이바우어에 의해 이뤄진 합의를 비판했고 시위대의 목소리를 지지했다. 직접 시위에 참여하는 인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후 활동가 사이에도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는 일정 수준까지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면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차이가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평화시위는 힘이 약해지고 일부 시위대는 조금 더 과격한 방식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이중적 인식
시위대만의 문제일까. 기후위기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이중적 인식은 언론을 통해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독일 시민들은 기후위기에 관한 높은 인식을 보여줬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각종 정책적 금지에 대해선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한편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자신들이 유지하는 삶을 바꾸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1월 초 공영방송 ZDF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는 석탄발전 확장에 반대했다. 하지만 같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 일시적으로 석탄발전소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옳은 정책이라고 답했다. 기후보호를 중요시하면서도 현재 생활의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녹색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여름 〈슈피겔〉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에너지 위기에 따른 한시적 원전 운행 연장에 관해 응답자의 70%가 지지를 보냈다. 특히 전통적으로 탈원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녹색당 지지자 중 49%가 원전 운행 연장에 찬성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반대는 32%였다.
ZDF가 지난 3월3일 발표한 기후보호 정책 관련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2%가 기후위기 대응 시위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74%는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기후위기 대응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독일 시민의 부정적 인식을 보여줬다. ‘시위 및 운동 연구소’ 소속 사회학자 시몬 토이네 박사는 〈슈피겔〉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기후위기 대응 시위의 원인보다 과격성에 대해 논쟁하려 하는 것은 기후위기 저지선인 1.5℃ 상승을 막을 방법을 논의하고 싶지 않아서다”라며 독일 사회의 현실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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