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4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러시아 문제’로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며 무력침공 가능성이 커지자 유럽연합의 최강국 중 하나이며 나토 회원국인 독일이 러시아에 강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국내외에서 높아졌다. 하지만 독일과 러시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얽혀 있는 데다 독일 정부 내의 의견 또한 통일되어 있지 않다. 숄츠 총리가 대외적으로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특히 발트해를 거쳐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잇는 천연가스 수송라인 ‘노르트스트림 2’가 독일 정부의 약점이다.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지지하는 측은 러시아가 노르트스트림 2에서 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숄츠 총리와 집권당인 사민당의 주요 인사들은 “노르트스트림 2는 민간경제의 영역이기 때문에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면 안 된다”라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노르트스트림은 그동안 독일 사민당 주요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진행된 프로젝트다.

가스관 길이가 약 1230㎞에 달하는 노르트스트림 2는 러시아의 국영 천연가스 회사인 가즈프롬(Gazprom) 소유다. 80억 유로 규모가 투자된 인프라다. 노르트스트림 2를 제재하면 러시아에 직접적인 경제 손실을 가할 수 있지만, 독일 처지에서도 노르트스트림 2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2020년 독일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천연가스는 약 563억㎥로, 2위 이탈리아(197억㎥)의 세 배에 가깝다. 독일의 천연가스 총수입 규모로 봐도, 러시아산의 비중이 절반을 웃돈다. 특히 독일은 올해 내로 핵발전소 가동을 완전 중단할 예정이다. 2030년까지 ‘탈석탄’ 체제로 이행하고자 한다. 이런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일정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노르트스트림 프로젝트는 2005년에 개시되었다. 당시 퇴임 직전이던 슈뢰더 독일 총리(사민당)가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가스관(노르트스트림 1) 관련 협약서에 러시아 푸틴 총리와 공동으로 서명했다. 독일의 에너지 공급 경로를 다각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당시에도 러시아에서 동유럽 국가(폴란드,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독일로 들어오는 가스관이 있었다. 다만 러시아와 동유럽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독일이 기존 가스관을 통해 가스를 받는 데 차질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노르트스트림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존 가스관이 경유하던 동유럽 국가들은 노르트스트림 프로젝트에 반발했다. 자기 영토로 가스관이 지나가는 대가로 받아오던 수수료를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항할 외교적 수단 중 하나가 가스관이었다. 러시아가 노르트스트림을 통해 유럽에 대한 에너지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슈뢰더 당시 총리는 퇴임 직후 러시아 천연가스 기업의 로비스트가 되어 구설에 올랐다.

2019년 7월10일 독일 북부 루브민에서 ‘노르트스트림2’ 공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노동자. ⓒdpa

우여곡절 끝에 노르트스트림 1은 2011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2018년엔 노르트스트림 2의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노르트스트림 1과 비슷한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러시아와 긴장관계인 우크라이나가 반대했다. 노르트스트림 2를 추진한 독일 메르켈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 수송량은 기존처럼 유지할 것을 러시아와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는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며 이 사업에 참여한 러시아 업체들을 제재했다. 여기에 참여한 독일 업체에 대한 제재도 계획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측은 독일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메르켈 당시 총리와 노르트스트림 2 완공에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노르트스트림 2가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노르트스트림 2는 현재 공사가 마무리된 상태이며 가동을 위한 허가와 점검 절차만이 남이 있다.

‘구시대 좌파의 러시아에 대한 전형적 호의’

집권당인 독일 사민당 정치인들이 가진 러시아에 대한 호의 또한 숄츠 정부가 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이지 않은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민당 원내대표인 롤프 뮈체니히는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가 서로에 대한 위협을 멈춰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논란에 올랐다. 러시아가 ‘우리나라의 안보가 우크라이나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다’라고 실제로 생각한다면,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서 러시아의 군사력 이동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민당의 이런 태도는 ‘구시대 좌파의 러시아에 대한 전형적인 호의’라는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과 자민당은 사민당에 비해 러시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다. 특히 녹색당은 러시아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르트스트림 2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외무장관인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르보크는 자신의 첫 해외 순방 일정이었던 러시아를 방문하기에 앞서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 이는 독일이 외교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녹색당은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수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사민당-녹색당-자민당의 연정을 통해 탄생한 숄츠 정부는 연정 합의서에 “분쟁지역에는 무기를 수출할 수 없다”라고 명시했다. 전통적으로 독일의 무기 수출을 반대해온 녹색당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녹색당의 원내 외교 분과 소속이며 당내 좌파 진영의 대표 격인 위르겐 트리틴은 현 상황에 대해 “우리는 변함없이 무기 수출 제한을 지지하고 있다.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곳에 무기를 보낼 수 없다는 방침은 확고하다”라고 말했다.

숄츠 정부 역시 원칙적으로 우크라이나로의 무기 수출을 반대한다. 그뿐 아니라 ‘옛 동독’산 무기까지 규제한다. 최근 발트해 국가인 에스토니아는 자국에 배치되어 있는 옛 동독산 곡사포를 우크라이나로 보내겠다며 독일 정부에 허가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독일 정부는 그 대신 ‘보호 장비는 지원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군사용 헬멧 5000개를 보냈다. 독일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그저 상징일 뿐’이라며 실망을 표시했다.

독일의 강력한 협력을 기대했던 미국의 비판 또한 거세다. 독일이 저렴한 천연가스를 공급받기 위해 제재에 미온적이라는 기조다. 주미 독일 대사인 에밀리 하버는 자국 외교부에 “독일이 미국 내에서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평가절하되고 있다”라며 심지어 러시아 제재의 장애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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