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되지 않은 평상시 모습의 매릴린 먼로. 일반인은 잘 모르는 사진이다.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이 탄생한 부유한 중산계층은 자신들의 모습이 귀족이나 상류층 사람들처럼 초상화로 드러나길 원했다. 자신의 모습을 돋보이게 만드는 초상화는 상승된 중산계층의 지위를 확인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사진의 발명은 이런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멋진 모습의 초상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제공한다. 모르던 사람도 자주 사진 이미지로 접하면 그 자체에 ‘의미’를 붙이게 된다. 이른바 ‘스타’들은 이런 방식으로 대중에게 접근한다.

영국의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잘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작가였다. 하지만 그의 초상 사진이 돌면서 그를 알아보고 거리에서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심지어 그의 집까지 쫓아오는 ‘골수팬’들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테니슨은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알려졌지만, 더 이상 조용한 삶을 누리지는 못하게 되었다.

이런 사진 효과를 알게 된 홍보 담당자들은 유명인의 모습을 대중과 차별적 세상에 사는 이상화된 모습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까지 유명인, 특히 연예인의 사진은 흠결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른바 ‘유명인의 황금시대’다. 이 사진들은 사진 속 인물의 성공·부·행복 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유명인의 명성은 사진이 동시에 대량으로 배포될 수 있는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진은 유명인을 숭배하게 만드는 장치이자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으로 승격되었다.

안중근 초상 엽서가 일으킨 열풍

이처럼 완벽한 연예인의 이미지가 깨지게 된 계기는 ‘파파라치’라 불리는 사진가들의 등장이다. ‘아주 큰 모기’가 날아다니며 내는 소리를 묘사한 이탈리아의 방언이라고 한다. 파파라치들은 흠결 없는 모습으로 포장되었던 유명인의 환상을 철저히 파괴했다. 파파라치는 주로 ‘유명인이 유명인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포착한다. 이로써 대중에게 보이는 유명인의 모습 자체가 본질적으로 변화되었다. 연예인 역시 땀을 흘리며 냄새를 풍기고, 코를 골며 잠에 빠지고, 화장실에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가 오히려 친근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흔히 ‘굴욕 사진’으로 불리는 연예인의 평범한 모습이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최근 연예인들이 사생활을 SNS 등에 과감하게 노출하는 상황 역시 이러한 추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상 사진이 촬영·배포자의 본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를 처형한 뒤 그의 모습을 ‘이토 암살자, 안중근’이라는 제목의 사진엽서로 만들어 유포했다. ‘암살자’ 안중근을 강조함으로써 조선의 야만성과 폭력성, 범죄성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이 도대체 누구이며 어떻게 생겼는지는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 모두의 관심거리였다. 그 호기심을 사진엽서가 충족시켰다. 안중근 ‘팬덤’이 생길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일제의 의도와 전혀 달리 일종의 ‘한류 열풍’을 일으켰던 이 사진은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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