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007년 경남 거제에서 찍은 사진. ⓒ김성민 제공

사진학교에서 학생들의 과제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하는 비평 시간에 대다수 선생님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이다. 사진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해보라는 요구다. 필자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발표라는 것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유학 시절, 교수들로부터 ‘자네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하는 질문을 받으면 무척 곤혹스러웠다. ‘내가 왜 사진을 찍었지?’라는 벽에 부딪히고 말았던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서 뷰파인더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사진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물어봐야 한다. ‘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완벽한 기술력을 통해 강하게 표현하고 싶은가? 아니면 이 현장에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이끄는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고 판단해서 카메라를 들이댄 것인가? 이 장면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통해 사진가는 자신의 표현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는 〈픽토리얼 사진〉에서 사진가를 세 부류로 분류했다. ‘무지한 자’ ‘테크닉에만 몰두하는 자’ 그리고 ‘예술가’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무지한 자’는 어떤 바람직한 작업도 이루어내지 못한다. ‘테크닉 몰두’파는 문자 그대로 테크닉만 배운다. ‘예술가’는 테크닉에 더하여 예술가적 감성과 영감을 함께 추구한다. 스티글리츠는 사진을 매우 혹독한 정신 작업으로 본다. 그래서 사진가는 모든 테크닉을 터득하고 난 뒤에라도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작품에 쏟아부어야 한다. 뛰어난 사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니라 메시지 혹은 감정의 제대로 된 표현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사진에서 기술적인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초점이 흐리거나 흔들렸고, 노출이 엉망이며, 구성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도 해당 사진에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작업의 기술이나 여러 가지 지켜야 할 규칙에 사진가 자신을 노예처럼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

사진으로 이야기 만들기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포토저널리즘에 더 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포토저널리즘 그 자체가 이미 스토리텔링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토저널리즘에서조차 사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자칫 주제에 대한 단순 묘사에 그치거나 그 의미를 독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해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포토저널리즘은 사진 여러 장을 동원하는 포토스토리 형식을 통해서 스토리텔링 효과를 배가시키려 한다. 그러나 포토저널리즘을 제대로 구현하려 한다면 사진이 한 장이든 여러 장이든 단순한 ‘주제 묘사’가 아니라 ‘주제 표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사진은 어떠한가? 촬영의 주제가 풍경이든 인물이든 사진가는 동일하게 항상 ‘내가 사진으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할 수 있도록 작업해야 한다. 단순한 ‘묘사자’가 아니라 ‘표현자’가 되도록 말이다. 사진 작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촬영할 당시 사용했던 조리개나 셔터, ISO, 렌즈 같은 정보에 크게 집착한다. 그러나 메타 데이터보다는 ‘내’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을 기억하고 이를 사진 작업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주제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해야 한다. 표현력이 사라질 때 사진은 빈껍데기로 남는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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