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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지지 블록이 붕괴하는 와중에도 40대는 버텼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노무현 효과’도 작지 않으리라 추측한다. 지금 40대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풍을 일으키던 2002년에 20대였고, 비극을 맞던 2009년에는 30대였다. 성인이 된 후 강렬한 정치적 체험이 온통 ‘노무현’이던 세대다. 아마 2002년에는 살면서 처음 정치인을 좋아했을 것이고, 그러다 임기 중에는 실망했을 것이고, 그러다 2009년에는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노무현을 죽인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사무쳤을 것이다.

청년 시절의 이 정도로 강렬한 정치적 체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각인된다. 이 세대 중 많은 이들은 아마도 2016년 촛불집회를 ‘반격의 서막’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졌을 것이다. 이런 마음은 정치참여의 열정을 일으킨다. 그러나 한 발만 삐끗하면 정치를 보는 기본 관점을 뒤튼다. 상대의 승리가 악의 승리이고 우리의 승리가 선의 승리라는 태도, 정치를 거악(巨惡)에 맞서는 성전(聖戰)으로 보는 태도를 부를 수 있다. 참여의 열정은 민주주의와 궁합이 좋다. 하지만 ‘거악에 맞서는 성전’과 민주주의는 궁합이 나쁘다. 이 갈림길은 민주주의의 운명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일찍이 이를 공들인 연설로 지적한 정치가가 있었다. 길게 인용해본다.

“민주주의는 공존과 통합의 기술입니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모두 포섭하고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제도입니다. 민주주의는 상대주의에 기초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사상입니다. 관용이 없는 사회는 사생결단의 사회, 배제의 사회가 됩니다. 공동체로 통합할 수가 없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는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대화와 타협, 경쟁과 승복, 그리고 재도전 기회 보장을 통하여 이견과 이해관계를 통합하는 정치 기술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참 가치입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말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반대자를 이렇게 관용하는 사상이 민주주의 외에는 없습니다.”

이 연설은 2007년 6월8일 원광대에서 있었다. 연설한 사람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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