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구의원 당선에 환호하는 범민주 진영 지지자들. ⓒAP Photo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는 강력한 적 타노스와 맞서기 위해 1400만 개의 미래를 살펴 ‘단 하나의 이기는 수’를 발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We’re in the endgame now.’

엔드게임. 2019년 홍콩 시위대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가 지금은 중국에 형편없이 밀리고 있지만,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처럼 최종적으로 중국을 이기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겠다는 믿음을 버린 적이 없다.

홍콩 시위대가 발견한 단 하나의 이기는 수는 앞으로 다가올 홍콩 총선거였다. 2019년 구의회 선거에서 홍콩 시위대가 지지하는 민주 진영이 친중파를 누르고 압승한 사실을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그다지 큰 권한도 없는 당시 구의회 선거에 홍콩인들이 집중한 이유는 이들 구의원에게 행정장관 선출 기표권 117장이 배분되기 때문이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간선제다. 총 1200명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가 행정장관을 뽑는다. 원래 선거 규칙대로라면 총 1200표 가운데 117표는 구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계가 독식할 수 있었다. 여기에 민주계 입법의원(국회의원) 표 30석(예상치) 정도를 더하면 행정장관 선거위원회의 12% 정도를 민주계가 차지하게 된다.

12% 표로 행정장관 선출의 당락을 좌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12%가 캐스팅보트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고 시민들은 생각했다. 행정장관 후보로 죄다 친중파가 나온다 해도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나은 인물을 고를 수 있다는 기대였다. 만약 강경한 친중파와 온건한 친중파가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다면 12%의 단일한 표는 상당히 큰 힘을 발휘한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홍콩 시민에게 우호적인 행정장관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이며 현실적으로 쟁취할 수 있는 최상의 수, 이것이 바로 ‘홍콩판 엔드게임’ 구상이었다.

영화 속 타노스는 이런 계획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타노스는 총선거를 앞두고 선수를 쳤다. 최근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홍콩 선거법을 개정했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처럼 중국 전인대는 또 한 번 홍콩 시민의 저항을 무력화했다.

아이언맨을 찾는 홍콩 시민의 침묵

중국 전인대는 홍콩 입법회 구성 방식과 이들을 선출하는 선거법을 개악했다. 우선 구의원들의 행정장관 투표 참여 권한을 없앴다. 한국으로 치면 국회인 입법회 의석은 70석에서 90석으로 늘었지만 주민이 직접 선출할 수 있는 의석수는 35석에서 20석으로 줄었다. 절대다수인 70석이 중국 정부의 입김에 좌우되는 선거위원회 혹은 친중파가 다수인 직능별 비례대표에 의해 선출된다.

게다가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입법의원 후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후보자 출마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사실상 민주파의 입후보 자체를 막아버리겠다는 의도다. 중국의 한 관영언론은 이에 대해 “비애국자라고 해서 홍콩에 사는 것까지 불이익을 주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정치는 할 수 없다”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홍콩 시민들에게는 단 하나의 수마저 사라졌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 선거법을 개악한 날. 홍콩 커뮤니티에는 아이언맨을 찾는 한숨만 이어졌다. 몇 주째 도시는 조용하다. 이 침묵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게 두렵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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