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톰슨, 식사 테이블에 모여 있는 만주 여성들, 베이징, 1871~1872.스코틀랜드 사진가 존 톰슨은 런던의 거리 풍경과 인물 사진을 촬영한 초기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그는 1862년부터 10년간 아시아 여러 국가를 촬영했다. 그가 남긴 초기 유리건판 필름 사진은 19세기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남아 있다.

사진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종류의 시각적 증거(visual evidence)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 사진은 그 속에 담긴 사물 자체를 보여준다. 이 경우 사진은 사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다. 우리는 존재하는 사물 없이 사진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물의 시각적 증거인 사진은 촬영 행위와 함께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사진은 그 작품을 만든 사진가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전통적 예술사에서 작품은 예술품이라는 범주를 넘어 그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개인적인 영역을 반영한다. 여기서 사진은 개인적 시각 혹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실제로 예술이라는 물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가들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유행을 좇거나 누군가의 작품을 따르는 ‘아류작’은 예술이 될 수 없다.

마지막 단계에서 사진은 작가 개인뿐 아니라 그를 에워싼 세상의 집단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여기서 사진은 한 사람의 초상이라기보다 사회·문화적으로 결합된 태도, 신념, 가정을 반영한다. 우리는 사진 작품을 통해 작가의 무의식에 녹아 있는 국가, 시대, 계층, 종교, 철학 등의 시대정신을 통찰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대표적 사례다. 이 장르의 작품은 한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치를 보여줌으로써 공적 의미를 갖는다. 1960년대에 등장했던 뉴 다큐멘터리 운동은 개인적 시각과 그가 속한 사회의 단면들을 함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증거’로서 사진이 갖는 의미

이처럼 사진이 가진 세 종류의 ‘증거’ 능력은 각각 특정한 가치를 지닌다기보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증거’로서 사진이 가지는 의미를 보스니아 내전을 장기간 취재했던 사진가 질 페레스의 이야기를 통해 되새겨보면 좋겠다. “보스니아 취재 경험은 내 사진을 바꾸어놓았다. 난 이제 어느 면에서는 증거를 수집하는 법정 사진가처럼 작업한다. 증거를 수집하는 경찰 사진가처럼 정물들을 더 많이 촬영하기 시작했다. 전통 포토 저널리스트와는 다른 전략을 채용하게 되었다. 그것은 좀 더 사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좋은 사진’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난 더 이상 ‘좋은 사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난 역사를 위한 증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도록….”

개인화·파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역사를 위한 증거를 모으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사진을 만들어내는 작가를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작가가 성장할 여건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예술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자구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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