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의 2009년 작품 ‘경주’. 최선의 프레임은 다양한 시도에서 나온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사진 선생이나 ‘멘토’를 따라 몰려다니며 촬영한다. 멘토가 자리를 정해주면 그곳에서 모두 똑같은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가 이미 터득해놓은 방법에서 배울 것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렇게만 배운다면 ‘독창성’ 없는 아류작만 양산하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20세기 중반을 풍미한 미국 사진작가 리처드 애버던에 대한 수많은 수식어가 떠오른다. 세계 최고의 패션사진가, 천재적인 인물사진가, 아버지의 죽음을 촬영한 사진가, 80세가 넘을 때까지 지칠 줄 몰랐던 열정적인 사진가…. 이런 수식어들로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진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사람이다.

히로(본명 야스히로 와카바야시)라는 일본인 사진가는 1954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작가 활동을 했다. 도미한 뒤에는 뉴욕의 사진학교에 출석하다 커리큘럼에 실망해서 실무작업을 찾아 나선다. 대가의 스튜디오에서 실질적인 사진 교육을 받고 싶었던 그는 마침내 애버던의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하지만 애버던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히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워낙 집념이 강했던 히로는 끊임없이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애버던을 만나자 ‘보수를 안 줘도 좋으니 당신의 스튜디오에 머물게만 해달라’고 애원했다. 이런 집념의 결과로 히로는 애버던의 스튜디오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

시련은 그때부터였다. 애버던은 문자 그대로 ‘스튜디오에 머무는’ 정도만 허락했다. 조수로 쓰기는커녕 말도 잘 건네지 않을 정도로 무관한 사람처럼 대했다. 히로는 언젠가 애버던의 마음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면서 스튜디오 뒤치다꺼리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애버던이 히로에게 구두 한 켤레를 건네며 말했다. “100컷만 찍어봐라.” 달랑 신발 한 켤레로 사진 100장을 찍어 오라고? 히로는 정말 황당함을 느꼈을 터이다. 하지만 그는 그날 밤을 새워서 신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그다음 날에도 애버던은 똑같은 과제를 히로에게 주고 아무 말 없이 스튜디오를 떠났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스스로 익히는 것이 최고로 가는 지름길

이런 식으로 애버던은 한동안 신발을, 그다음에는 다른 종류의 정물들을 100컷씩 촬영해오라는 과제를 꾸준히 냈다. 히로는 최선을 다해 여러 과제를 충실히 수행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히로는 결국 애버던의 정식 조수로 기용된다.

이후엔 어떻게 되었을까? 히로는 세계 최고의 제품과 정물사진 대가로 성장한다. 하나의 사물을 늘 100컷 이상 촬영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될 자격을 갖춘 것 아닐까?

사진은 피사체 안에 작가의 사고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단순히 누군가 촬영해서 성공했던 사진을 답습하는 것은 ‘진짜’ 사진이 아니다. 히로의 이야기는 남들이 이미 보았던 프레임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최고의 사진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애버던은 제자로 하여금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길잡이가 되어준 것이다. 대가는 제자에게 ‘사진은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최고의 자리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아류가 판치는 세상이다. 나만의 사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도전해야 전문 작가를 넘어설 길이 보일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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