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1월26일 뉴델리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한일 자동펌프’ CF가 유명했다. 코미디언 서수남과 하청일이 부른 ‘물 걱정을 마세요~’라는 CM송이 국민적 인기였다. 도시에 사는 나는 펌프가 왜 필요한지 잘 몰랐지만 흥겹게 따라 불렀다. 당시 한국에서 농업의 위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모내기 철이 되면 대통령이 직접 농기계에 올라타거나, 바지를 걷어올리고 논에 들어갔다. 농업이 천대받는 오늘날, 이런 풍경은 볼 수 없다.

IT 산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인도는 노동 인력의 절반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다. 그런 인도에서 3개월째 농민들이 상경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농업 법안 때문이다. 정부가 농산물 가격의 일부를 부담하는 ‘지정가격제’에서 벗어나 시장의 자율에 맡기자는 내용이다. 정부는 ‘농업 선진화’라고 주장하지만, 농민들은 소농과 중농이 몰락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 인도를 보면 과거의 한국이 보인다. 제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 농업에 종사하는 인력을 제조업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정책적으로 농업을 소외시킨다. 농업이 몰락하면 농촌의 젊은 인구가 도시로 흘러가 도시 노동자가 된다. 우리도 중국도 이 과정을 거쳤다.

인도 정부의 행태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인도는 농촌에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해도 이를 도시에서 받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모디 정부는 출범 이래 대대적인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 전환을 추구하고 있지만, 전환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코로나19 국면이다. 이미 도시에도 실업자가 넘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권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왜 지금 이런 농업정책을 내놓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모디 정부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현재 이 법안은 이미 의회를 떠나 시행만 앞두고 있다. 이에 맞선 인도 농민들의 시위는 기록적이다. 전국에서 농민 2억5000만명이 24시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기네스북〉에 오른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인 까닭에 외신의 관심도 높다.

농민 시위의 주축은 델리 서쪽에 있는 하르야나, 그리고 파키스탄 국경과 마주하고 있는 펀자브 지역이다. 펀자브는 전통적으로 시크교도의 땅. 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시크교도다. 인도 농민 시위 사진에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의 얼굴이 유독 많은 이유다. 비교적 정체성이 옅고 느슨한 힌두교도와 달리 시크교는 이슬람과의 오랜 투쟁으로 교단 전체가 무력 사용에 능하다. 지금도 모든 시크교도 남자는 칼을 차고 다닌다. 1984년 당시 현직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까지 암살할 정도로 드셌던 시크교 분리주의 운동의 주요 원인도 당시 정부의 농업정책으로 인한 중소 농민의 몰락이었다.

핍박받는 무슬림 지켜본 인도의 시크교도

정책이 유독 어떤 집단에게 차별적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들은 단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서야말로 분리주의 운동의 땔감이 될 수 있다. 이번 농민 시위에 시크교도가 대거 참가하면서 인도로부터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칼리스탄(Kalisthan)’ 운동가들은 고무된 모습이다.

모디 정부는 집권 2기를 거치며 인도 사회에서 가장 큰 마이너리티 집단인 무슬림을 주류 사회에서 완벽하게 배제하는 데 성공했다. 무슬림의 핍박을 지켜본 또 다른 마이너리티 집단인 시크교도는 두려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이번 농민 시위로 이들의 분노와 두려움이 어떻게 번질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인도 정부가 코로나19를 극복했다는 자화자찬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인도를 괴롭힌 분리주의라는 먹구름이 또다시 몰려올지도 모른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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