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숙모델:최숙희(70세) 사진:이건숙

1월1일이 지나고 우리는 또 한 살을 먹었다. 누구 마음대로 1월1일을 기점으로 나이 한 살을 더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세월을 부여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몸을 나이가 채워간다’는 의미다. 차곡차곡 채워지는 나이에, 좋든 싫든 주름은 덤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진 찍는 것에 질색하는 분도 있다. 주름은 죄가 아닌데도 말이다.

몇 해 전, 경기도 구리 시민 몇 분이 모여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모습으로 ‘사진 책’을 만든다며 도움을 청한 적이 있다. 각자 사진을 찍고 글 쓰는 작업을 배분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물을 만들어냈다. 그중 한 분이 재래시장에서 일하는 나이가 지긋한 여성들의 웨딩드레스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디어를 결혼 당시 면사포도 써보지 못했던 분들을 위한 일종의 한풀이로 생각했다. 결과물을 본 뒤에는 “스튜디오라도 빌려 촬영을 해보지 그랬느냐”라며 배경과 조명 등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기술적인 문제만 지적했다. 그러나 보충 촬영은 더 이상 없었다. 사진은 그대로 책에 실렸다.

책에 인쇄된 사진을 본 나는 기술적 문제만 언급했던 나의 ‘속물근성’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진 속의 나이 든 신부가 나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일상이 된 시장에서 그녀는 ‘도라지 좀 더 달라’ ‘거스름돈 계산이 틀렸다’ ‘깎아달라’는 손님들과 끊임없이 흥정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흥정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 ‘안 사겠다’고 어깃장을 부리며 상품(그녀에겐 마늘)을 내동댕이치고 가버린 사람도 있었을 터이다. 그런 그녀의 지난 시간이 사진에 보였다. 인고의 세월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녀의 미소는 어색하지만 당당하다. 그 세월을 견뎌낸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미소다. 그녀의 웃음은 ‘자기 자랑’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뭐 자랑할 게 있다고 웃음이 나오나, 내가 뭐 잘난 게 있다고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도 되는가’ 하는 웃음이다. 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당당하다. 그 당당함이 예쁘다.

여성학자 박혜란은 〈나이 듦에 대하여〉에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고 심지어는 죄라고 배워왔다. 더구나 여성의 경우는 훨씬 더 심했다. 결국 산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이다”라고 적는다.

산다는 것은 시장에 나가서 장사를 하는 것이고, 매일 일상의 자리에서 등이 굽어가는 것이며, 아이를 키우고, 나이가 드는 것이다. 그 매 순간의 ‘예쁜’ 모습을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세련된 연예인 사진처럼 배경이나 조명이 완벽하게 맞춰져 있지는 않지만, 이 ‘늙은 신부’의 사진은 가식이 아닌 인생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진은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해도 사진 속 신부는 우리에게 ‘이것이 내 삶이야’라고 말한다. 꾸미지 않아도 그녀의 세월이, 그녀의 삶이 온전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기술이 사진의 전부는 아니다

사진을 배우는 많은 사람이 내게 묻는다. ‘좋은 사진이 무엇이냐?’고. 나는 대답한다. “사진은 카메라와 조명 같은 기술적인 부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기술이 사진의 전부는 아니다. 사진은 이야기다. 누군가의 인생이 사진 속에 담길 때 그 사진을 좋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첨단기술을 동원해서 아무리 매끈하게 다듬어도 이야기가 담기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사진이다.”

수업 시간마다 ‘사진은 기술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렇게 떠들어대던 선생이 시민 한 분이 힘들게 찍어온 사진에 대해 ‘기술 부족’만을 이야기하다니…, 내 얼굴은 아직도 화끈거린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