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윤 제공2019년 11월 홍콩 침사추이의 시위대와 최루탄.

어쩌다 보니 여섯 개 나라의 최루탄을 맞고, 세 개 나라의 물대포를 경험해봤다. 홍콩에서만은 최루탄 맡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지난 1년간 과거의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격렬하게 최루탄 냄새를 맡은 곳이 홍콩이었다.

영어권에서 CS라고 부르는 이 물질의 원래 이름은 클로로벤질리덴 말로노니트릴(Chlorobenzylidene malononitrile)이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 당시 지루했던 참호전을 끝내려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최루탄은 화학무기이기 때문에 1925년 생물학무기와 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한 제네바 의정서에 따라 사용이 금지됐다.

이 무기가 다시 쓰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30년대 들어 영국에서 식민지 폭동이 발생했을 때 실탄 대신 ‘자비롭게도’ 최루탄을 쓰는 것이 어떠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실제 민간인에 대한 사용은 미국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런 점에서 최루탄의 역사는 무척 아이러니하다. 국제적으로는 사용이 금지된, 국내 전용 화학무기라고나 할까?

걸핏하면 최루탄 난사하는 홍콩 경찰

아시다시피 최루탄은 군사정부 시절 독재정권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방어 장치였다. 당시 한국의 시위대는 평소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 탓에 한국 최루탄이 유독 독하다고 생각했다. 공식적으로 한국에서는 1998년 만도기계 총파업 당시 사용된 최루탄이 마지막이다. 현재까지 23년 동안 최루탄을 쓰지 않은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해외에 나가 방독마스크를 쓴 채 백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유려한 포물선 사이로 흩어지는 군중을 보다 보면 때때로 묘한 기시감에 빠져들곤 한다. 최루탄에 처음 접촉하면 일단 눈이 쓰라려온다. 시각 의존도가 높은 동물인 인간은 시각 정보가 차단되면 공포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뒤이어 목이 매캐해지면서 기침을 한다. 약간의 호흡곤란 증세가 오는데 이 때문에 군중은 대열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최루탄이 시위나 폭동 진압용 무기로 개발된 이유도 집단을 손쉽게 분리할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만능으로 보이는 최루탄은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잠시나마 군중이 흩어지는 듯하지만 그들은 다시 더 단단한 집단이 되어 돌아온다. 최루탄은 기본적으로 고통을 공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최루가스 속에서 고통을 공유한 사람들은 곧 군중에서 동지로 변화한다. 초반의 공포만 극복하면 더 격해진 개인과 집단이 된다. 또한 최루탄은 시위대에게만 타격을 가하는 게 아니라 그 일대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을 고통 속에 빠트린다. 시위대에게 별 감정이 없던 이들이 국가가 선사한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고 나서 오히려 시위대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동조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이 최루탄 난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최루탄으로 집단을 흩트릴 수 있는 시간은 채 몇 분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모이게 된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위대는 잠시 후 한층 더 분노한, 더 과격해진 집단으로 돌아오기만을 반복할 뿐이다.

요즘 홍콩 경찰은 걸핏하면 최루탄을 뿌려댄다. 심지어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그렇다. 일종의 무력 과시 용도다. 인도에서도 그렇다. 정부의 농업정책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수도인 델리로 몰려들자 최루탄을 난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최루탄을 지근거리에 두고 살아온 우리는 안다. 최루탄 난사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팬데믹 상황에서도 모일 수밖에 없는 전 세계의 저항자들에게 ‘당신들이 이기는 날을 고대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해피 뉴 이어.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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