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대물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눈의 결정체를 촬영하고 있는 ‘눈송이 전문가’ 윌슨 벤틀리.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도 연하장이나 광고지에 나오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크리스털 형태의 눈송이일 터이다. 어린 시절 옷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눈의 가장자리가 다소 뾰족하게 보이던 것이 기억난다. 과학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눈송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그 각각의 형태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점도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도구까지 동원해서 눈을 관찰하진 않는다. 결국 눈송이들의 모습은 비슷비슷한 형태의 영롱한 육각형의 크리스털 이미지로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사실 이 같은 눈송이의 대중적 이미지는 한 사진가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19세기의 미국 사진가 윌슨 벤틀리는 버몬트주 제리코 근처의 한 농장에서 성장했다. 그는 교사 출신인 어머니의 지도로 14세까지 ‘홈스쿨링’을 받았다.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현미경을 선물로 받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벤틀리는 그 선물로 눈송이를 확대해서 보는 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부모를 설득해 당시에는 거금이었던 현미경 대물렌즈를 구매하여 눈송이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오랜 기간 고독하게 눈송이만 고집스럽게 촬영하던 그는, 당시 버몬트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윌리엄 험프리의 도움으로 1898년 애플턴 출판사에서 발행하던 과학잡지에 자신의 눈송이 사진을 게재할 수 있었다. 그 후 벤틀리는 ‘눈송이 전문가(snowflake man)’로 불리게 된다. 1931년에는 기상학자들과 함께 눈송이 사진 2500장을 수록한 연구서 〈눈의 결정체(Snow Crystals)〉를 발간해서 영원한 베스트셀러로 만든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눈송이 입자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그리는 모형이 되었다. 우리가 떠올리는 전형적인 눈송이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시즌과 겨울철이면 항상 만나는 다양한 크리스털 입자의 눈송이 문양은 바로 윌슨 벤틀리가 남긴 사진을 본떠서 그린 것이다. 실제 눈송이의 모양은 벤틀리의 사진으로 기록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심지어 벤틀리 역시 수많은 눈송이 가운데 사진으로 표현할 때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 촬영하고 책에 수록했다고 한다. 결국 그의 사진 컬렉션에 의해 우리가 기억하는 눈의 결정체 표준이 만들어진 셈이다.

사진이 기억하게 만드는 세상의 모습

눈의 결정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그토록 많은 형태로 바뀌는지는 아직도 과학적 미스터리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소년의 상상력이 과학의 발전을 이루었고, 우리의 문화도 풍족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못하는 자연 현상이지만, 사진을 통해 우리는 겨울을 그리고 훈훈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억하는 영원한 상징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마치 눈의 결정체를 우리가 육안으로 본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진이 가진 힘이다. 사진은 우리가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기억(?)하게 만든다. 누구나 사진을 촬영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사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어떤 사진에서 본 것일까?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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