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윤 제공인도 델리 외교가에 타이완의 국경절을 축하한다는문구가 적힌 홍보물이 설치되어 있다.

2005년 중국 여행 안내서를 처음 낼 때의 일이다. 당시 의욕에 넘치던 나는 티베트 섹션에 티베트 문자 현지 표기를 병기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국에 유학 중인 티베트 승려를 접촉해 감수까지 받던 어느 날 어떤 전화를 받았다. 신원을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 여행 안내서 편집 상황이 어떻게 귀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이며 티베트를 독립적인 지역으로 보이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책에 병기하려 했던 티베트 문자 표기는 바로 사라졌다.

지난 6월 중국과 인도의 국경지대인 갈완 계곡에서 충돌한 이후 두 나라 관계는 악화일로다. 지난해 한국에서 벌어졌던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비슷하게 인도도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 판매량 1위부터 3위까지 중국산이 싹쓸이 중인 인도에서 대체 어떻게 중국 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그동안 내가 인도를 잘못 봤나 싶을 정도로 요즘 불매운동의 기세는 맹렬하다.

민주국가 타이완과 전체주의 성향 인도의 연대

인도 언론도 지난여름 이후 연일 반중 캠페인에 열을 올린다. 반중 보도가 나오면 시청률과 클릭 수가 급증하다 보니 요즘 인도 언론의 중국 관련 기사 톤은 과하다 싶을 때가 많다. 10월 들어 인도 언론이 찾은 아이템은 10월10일 109주년을 맞은 타이완 건국기념일이다. 타이완의 건국 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타이완이라는 나라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인도는 이제 전 국민이 타이완 건국기념일의 유래까지 알게 되었다.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지 못해 안달 난 타이완도 이를 놓칠세라 인도 주요 일간지에 자국의 건국기념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중국 외교부가 직접 나섰다. 무려 260여 명의 인도 언론인에게 외교부 명의의 이메일을 발송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잘못된 방법이었다. 개별 언론인에게 편지를 발송한 일이 부적절했을뿐더러 내용도 고압적이었다. 언론 검열로 여길 만한 사안인지라 각국 언론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서 한마디씩 하는 상황이 되었다.

10월10일 인도의 집권당인 인도국민당 델리 지부 대변인 타진데르 바가가 타이완의 국경절을 축하한다는 문구를 적은 홍보물 100여 장을 델리의 외교가인 차나캬푸리 곳곳에 전시했다. 그러곤 중국 대사관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렸다. 곧바로 타진데르 바가는 타이완의 영웅이 됐다. 수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태그하고 감사를 표했다. 심지어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도 직접 나서서 과거 자신의 인도 여행을 추억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차이잉원은 타이완의 인도 식당에서 북인도를 대표하는 서민 커리 ‘차나 마살라’를 먹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타진데르 바가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양국 간 우호관계가 한층 더 두터워진 느낌이다.

타진데르 바가는 문제아다. 그는 무슬림을 변호하는 인도의 인권변호사를 폭행하는 장면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냥 항의 정도가 아니라 정말 몰매를 때렸다. 이렇게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그는 인도 집권당에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을 색출해 물리적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반중국 전선’이라는 이름 아래 아시아 제일의 민주주의 국가 타이완과 전체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보이는 인도의 연대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연대가 ‘자유언론 수호’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아이러니를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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