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한국관광공사가 추석 연휴에 진행한 랜선 여행 이벤트.

이번 추석 때 혼자 본가에 다녀왔다. 정부 당국에서는 고향에 가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수도권에 홀로 사는 어머니가 쓸쓸하게 명절을 보낼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막상 집에 가서는 크게 하는 일도 없이 예전 내 방의 책장과 서랍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1980년대에 발행한 ‘소년 잡지’ 한 권을 발견했다. 이 잡지의 특집 글은 21세기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소년들도 이런 궁금증 속에 사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소년이던 시절에는 21세기가 되면 천지가 개벽하는 줄 알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토마토와 감자가 한꺼번에 열리는 채소, 손바닥 안의 컴퓨터, 우주여행의 대중화, 끼니를 대신하는 다양한 맛의 알약, 그러나 그 21세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게 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방에 누워 생각해보니 그 예측 가운데 실제 이루어진 건 손바닥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를 대신한 코로나19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초 중국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고 떠들썩할 때만 해도 올 추석에 고향에 가지 말라는 말을 들을 줄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앞으론 이래야 살 수 있다는 상술과 구호가 뒤섞여 서점가에는 미래학이 꽃을 피우고 있다. 누구도 예측 못한 몇 달을 현재 살고 있으면서 앞으로 세상은 이럴 것이라는 예측에 다시 주머니를 여는 걸 보면 자본주의의 위대함에 경탄할 따름이다.

소년 시절에 꿈꿨던 미래에는 특정한 맛을 내는 알약이 끼니를 대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딴판이다. 21세기의 나는 20세기에는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음식을 탐닉하고 그것들을 먹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설사 끼니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맛의 알약이 나온다 한들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그걸 선택할 것 같진 않다. 우리는 늘 ‘오늘 저녁엔 뭐 먹지’를 연발하는데, 그건 결코 먹는 행위가 귀찮아서가 아니란 걸 이제는 모두 알기 때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바뀐 세상을 이야기해봐야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온 어떤 유인원으로부터 시작됐고, 낯선 이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때론 싸우며 문명이 발전했다는 지금까지의 대전제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중세 페스트나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이 세상을 바꿨다지만 사실 천지개벽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시절 마스크를 동여맨 미국인 사진을 지금 보며 느끼는 건 망각의 신속함 정도가 아닐까?

‘랜선 여행’ 장비 살 돈 모아 나중에 여행 가겠다

우리가 겪는 이 역병의 시대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 편찬된 역사책에는 단지 몇 줄로 남을지 모른다. 여태껏 우리가 무심히 넘긴 역사책의 한 페이지란 그 시대 사람들이 겪은 수많은 역경의 산물이었다. 그 시대, 당대란 늘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코로나 환란을 겪은 끝에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뉴노멀 여행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시도하려 했던 ‘랜선 여행’은 포기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서다. 인터넷 환경만 잘 갖춰져 있으면 안방에서 세계 여행을 다닐 수 있다더니, 아니었다. 모니터 화면이 실제처럼 보인다는 ‘8K’ 영상을 그럴듯하게 즐기려면 그에 걸맞은 거대한 모니터와 함께 최신 코덱을 무리 없이 재생할 수 있는 최신형 그래픽카드가 있어야 가능했다. 적어도 300만~500만원은 필요하다. 그 돈이면 언젠가 돌아올 그날, 비행기표를 사리라 결심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비행기를 못 타본 게 스물네 살 이후 처음이다. 나는 ‘오래된 노멀’을 그리워한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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