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의 〈대일 전승기념일의 타임스퀘어〉. 1945년 8월14일 미국 뉴욕에서 찍은 사진이다. 종전의 상징이 된 이 사진은 〈수병과 간호사〉,〈더 키스〉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진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도 사진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표현은 ‘결정적 순간’ 아닐까? 그리고 ‘결정적 순간’ 하면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의 작품은 사진 속 ‘순간성’이라는 관념을, 하나의 그림으로 사건과 스토리를 이야기한다는 예술사의 오래된 개념과 융합시켰다. 전체의 이야기 혹은 사건을 하나의 사진 안에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18세기 후반 유럽 예술에서 ‘역사회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역사회화는 사진처럼 현장성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하나의 이미지로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는 장르다.

18세기 독일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고트홀트 레싱에 따르면, 복잡한 사건을 재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이야기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읽고 정리할 수 있는 ‘배태적 순간’을 보여주라.” 그리스어 ‘페리페테이아(Peripeteia)’는 극적인 순간, 운명의 급작스러운 변화, 즉 ‘배태적 순간’을 의미한다. 이야기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대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브레송의 르포르타주 스타일 뉴스 사진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개념이다. 그런 사진은 단일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로 전체 이야기를 풍성하고 활력적으로 드러낸다.

페리페테이아를 잘 활용해야 성공적인 뉴스 사진을 생산할 수 있다. 역사회화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 전쟁 사진에서 특히 그렇다. 사실 유명한 전쟁 사진은 대체로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역사적 사건의 전체 이야기를 축약하는 데 성공한 작품들이다. 미국 사진가 에디 애덤스의 ‘즉결처형’, 닉 웃의 ‘네이팜탄 소녀’, 전쟁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여러 작품이 그러하다.

‘역사적 사건’ 사진은 선택된 것이다

결정적 순간은 ‘현실’ 그 자체와 다르다. 사진가가 현실의 극적인 요소들이 그 의미를 드러낼 수 있도록 적절한 ‘순간’에 셔터를 누른 결과로 생산된다. 카메라는 사진가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휴대용 극장’이나 ‘사진 스튜디오’일 수 있다. 사진가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스튜디오인 카메라로 삶의 흐름에서 만들어진 장면을 연출해낸다. 제스처, 표정, 행동의 정확한 조합으로 인물이 자세를 잡을 때 사진가는 셔터를 누른다.

우리는 사진에 담긴 이미지를, 역사적 순간에 촬영되었으며, 그 역사적 사건을 대변할 수 있는 ‘진실’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식 자체가 ‘사진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 사진이 다른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결정적 순간’에 촬영되었으며, 분명한 관점까지 지니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짜 뉴스가 판치고 있는 요즘, 이른바 정론지를 자처하는 대형 신문들이 싣는 수많은 이미지 역시 ‘결정적 순간’이라는 얼굴로 편파적 주장을 배포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장의 사진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각적 장치를 통해 특정 순간을 포착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편집자는 이 사진을 자사의 논조에 맞게 포장한다. 그야말로 사진의 진실 게임이 시작되는 ‘결정적 순간’이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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