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기회다 - 행복한 방구석  다시 볼만한 영화 〈테이크 쉘터〉

〈테이크 쉘터〉
감독:제프 니콜스 
출연:마이클 섀넌·제시카 차스테인·토바 스튜어트

 

한 남자가 꿈을 꾼다. 거대한 먹구름이 몰려오는 꿈이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새떼가 먹구름 반대 방향으로 맹렬하게 도망치는 꿈이다. 이윽고 비가 내리는데 마치 기름처럼 끈적끈적, 황톳빛 빗줄기가 쏟아지는 꿈이다. 너무 생생해서 결국 비명을 지르며 깨고 마는 꿈이다.

영화 〈테이크 쉘터〉는 악몽이 현실이 될 때를 대비해서 자기 집 앞마당에 방공호를 만드는 남자 커티스(마이클 섀넌)의 이야기다.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멈출 수 없다. 꿈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그 생생한 꿈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방공호 만드는 것도 멈출 수 없다.

겨우 두 번째 연출한 이 작품으로 제64회 칸 영화제에서 상을 3개나 받은 젊은 감독 제프 니콜스는 말한다. “〈테이크 쉘터〉를 쓰는 동안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느끼는 삶의 불안감이 전 세계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미국인들이 처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믿음이었다. 〈테이크 쉘터〉를 통해 우리가 공유하는 그 공포와 불안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 2008년 여름. “결혼한 뒤 과연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하던 때. 이제 막 가장이 된 감독의 불안감이 때마침 ‘전 세계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미국인들이 처한 현실’과 맞닿는 일이 생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시작으로 세계경제가 휘청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1년 완성된 영화를 공개하며 감독은 “말하자면 커티스는 당시의 나다”라고 고백했다. 영화를 본 미국 관객들은 “말하자면 커티스는 지금의 나다”라고 주장했다. 겁에 질려 허둥대는 영화 속 가장, 서로에게 질려 삐걱대는 영화 속 가정이 남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엔 커티스처럼 악몽에 시달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단순히 악몽을 꾸는 것보다 내가 꾸는 악몽에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때 진짜 악몽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됐다. 말하자면 커티스는 지금의 우리 모두다. 저마다 자기 몫의 불안과 근심으로 밤잠을 설치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겠다고 제각각 발버둥치는.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평양의 외국인들에게 어서 한반도를 떠나라는 권고가 내려졌다. 언론은 언제 미사일이 발사될지 모른다고 겁을 준다. 말 그대로 폭풍전야. 하필 이럴 때 〈테이크 쉘터〉를 보았다. 절묘한 타이밍. 그래서 더 흥미로운 해프닝. 단순한 이야기. 그러나 의미심장한 메타포. 근사한 연기. 그리고 힘 있는 연출. 위태로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불안과 근심을 담아낸 사려 깊은 미국 영화 한 편이 질문을 쏟아낸다. ‘지금 당신의 악몽은 무엇입니까?’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FM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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