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여 전 쌍용차 가족과 아이들, 이명수·정혜신 선생님과 〈벽 속의 요정〉이라는 연극을 봤다. 스페인 내전 당시 상황을 한국 근현대사로 각색한 작품인데, 보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죽어간 쌍용차 노동자들이 끊임없는 연상작용을 일으켰다. “살아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절절한 대사엔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죄스러웠다. 7년 동안 이어진 공연인데 나는 왜 이제야 봤을까. 운명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

어떤 이의 따뜻한 손에서 차가운 내 손으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들어왔다. 사막에서 물을 찾아 뻗어나가는 나무뿌리의 절박함일까. 2005년 번역되어 6년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내게 들어왔다. 니체의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라는 말을 프랭클 박사는 체험적이며 실증적으로 웅변한다. 삶의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던, 그래서 도살장이라 명명되던 아우슈비츠에서도 릴케의 시를 생각했던 것은 낭만이 아닌 초인적 삶의 열정이다.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하루하루를 기억하고 기록했으며 삶의 일부로 등록했다. 관계가 파괴되고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에 직면하고 번호로 취급되는, 살아 있는 유령 대접을 받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 책은 인간 승리를 다룬 휴머니즘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희망’에 대해 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고통과 절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소개한다. 전망과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의 이면은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다. 전망 부재라는 것이 나쁜 방향으로 몰리거나 몰아갈 필요는 없다. 인간의 실존과 삶의 의미 또한 같은 맥락이다. 삶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엔 ‘진실의 힘’이라는 분들이 있다. 1980년대 간첩으로 몰려 수십 년간 고문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분들이다.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살아야 할 이유가 또렷해진다. 살아갈 의미를 상실한 사람이 있다면, 삶이 아직까지 그대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바가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함께 싸워나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읽고 나누고 싶은 책이다.

그 밖의 추천도서:〈25일〉 〈사람을 보라〉

알라딘 추천 마법사가 이창근 님께 권하는 책
〈우리가 보이나요〉이승원·정경원 지음/ 한내 펴냄
〈지배와 저항〉문지영 지음/후마니타스 펴냄
〈정당한 위반〉박용현 지음/철수와영희 펴냄

기자명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기획실장·희망버스기획단 대변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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