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10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이런 말을 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해 국민들께 이해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 좋은 말이다. “기자간담회를 자주 갖겠다”라고도 했다. 이것도 좋은 말이다. 대통령실 청사에서 난데없이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직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뮤직비디오’ 같은 소통 방식에 이르긴 했지만. 처음에는 저런 말을 했다.
그때 공언한 대로 물가 문제를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과일·채소 값을 하루아침에 잡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런 ‘기적’은 기대하지 않는다. 왜 물가가 올랐고 어떤 대책이 있는지 설명하고, ‘금사과’로 대표되는 고물가에 시민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공감할 수는 없었을까. 지난 3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경제점검회의에 앞서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들렀을 때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떠오른 생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도 시장을 많이 가봤는데, 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라고? 한 줄기가 아니고? 그 가격의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이 매장에서 일주일 전까지 대파를 한 단에 2760원에 팔았다고 한다. 방문 당일에는 875원이 되었다(하루 1000단 한정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 지원금, 농협 자체 할인, 정부 30% 할인쿠폰 등이 만들어낸 마술이다. 1000단 한정으로, 대통령 방문에 맞춘 ‘대통령을 위한 가격’인 셈이다. 애초 3월20일까지 할인하려다 ‘대통령 가격 논란’ 탓인지 3월27일까지 할인 기간이 연장되었다(대통령실은 “최근 발표된 정부 물가안정 정책이 현장에서 순차적으로 반영된 가격”이라고 했다).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말은 어떤가. 대파 한 단이 875원에 팔린다면, 농가는 그 가격대에 맞추어 대파를 생산할 수 있을까? ‘대통령을 위한 가격’처럼 지원금, 할인쿠폰이 없는 상태에서 대파가 875원에 팔려나갔다간 대파 농가가 우수수 나가떨어지리라. 2020년 도매가가 1000원이 안 되자 농민들이 대파밭을 갈아엎기도 했다.
대통령이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현장 방문이었다. 참모들이 현장에서 대파 875원의 비밀을 제대로 설명했다면, 대통령이 저런 ‘워딩’을 했을까. 설명했는데도 저런 말이 나왔다면 문제이고, 설명을 안 했다면 그것도 문제다. 이날, 대통령은 “과도한 가격인상, 담합 같은 불공정 행위로 폭리를 취하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하루 뒤 공정거래위원회가 설탕 업체 세 곳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했다. 물가를 엄히 잡으려나, 마치 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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