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인간은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실존주의자는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웬만해서는 세계에 함부로 내던져지지 않는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민음사, 1990)에서 그들의 성급한 형이상학을 이렇게 공박한다. “인간은 ‘세계에 내던져’지기에 앞서, 집이라는 요람에 놓여지는 것이다. 삶은 잘 시작된다. 삶은 집의 품속에 포근하게 숨겨지고 보호되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이 언젠가는 요람 밖으로 내쳐진다는 사실을 바슐라르 또한 모르지 않는다. 다만 실존주의는 인간이 안락한 상태에 놓였던 시원의 단계를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바슐라르 ‘미래’에 대해 아직 나누지 못한 것들 장정일 (소설가)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서해문집, 2024)은 30대 기자이자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서해문집, 2021)을 쓴 저자이기도 한 전혜원과 연금·재정을 오랫동안 연구한 60대 사회학자 오건호의 대담집이다. 국민연금은 1986년 국민연금법이 공포된 이후, 2006년부터 전 국민에게 의무 가입이 적용되었다.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이 끊긴 노동자들의 노후를 위한 국가정책으로, 개개의 시민에게 민간 보험사보다는 국가가 좀 더 보편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다.2023년 11월 기준으로 남성 노령연금 국보법을 없애자고 할 때마다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2004년 9월5일 노무현 대통령은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을 통해 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탄핵 소추에 대한 여론의 반발로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은 그해 10월, 100명이 넘는 의원의 이름으로 국보법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정당 한나라당도 2005년 4월 개정안을 내놓았다. 문제가 된 조항은 ‘찬양 및 고무’ 등에 관한 제7조와 ‘불고지’를 다룬 제10조였다.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열린우리당 내 강경파와 일부 조항만 개정하자는 한나라당의 견해가 맞선 늙은 시인이 거듭 죽음을 노래하는 까닭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초가삼간 오막살이〉(브로콜리숲, 2024)는 이문길의 열일곱 번째 시집이다. 1939년 대구에서 출생한 시인은 1959년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수료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등단을 하고 나서 시집을 내는 것이 순서이지만 시인은 대구에서 첫 번째 시집 〈허생의 살구나무〉(흐름사, 1981)와 두 번째 시집 〈내 잠이 아무리 깊기로서니〉(흐름사, 1983)를 먼저 냈다. 그러고는 한참 뒤인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가로늦게 등단 과정을 밟았다. 등단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피노키오가 진정 되고 싶었던 것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피노키오로 철학하기〉(효형출판, 2023)에는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1883)과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이 동화를 해석한 〈피노키오. 두 번의 해설과 세 번의 그림이 있는 인형의 모험 이야기〉(2021)가 합본되어 있다. 475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반도에는 1400여 년간 통일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1861년, 마침내 이탈리아 건국이 이루어지자 콜로디는 지역주의와 전근대성으로 낙후된 조국을 근대적으로 계몽하기 위해 저 교훈적인 동화를 썼다. 나무토막에서 꼭두각시 인형으로 탄생한 피노키오는 인 우리는 아직도 자폐를 잘 모른다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신성아의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마티, 2023)은 독자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던 지은이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소아백혈병 진단을 받자 직장에 사표를 내고 딸의 전속 간병인이 되었다. 할리우드의 재난 영화는 가족의 재발견으로 끝난다. 갈등과 앙금은 해소되고, 용서와 화해를 바탕으로 가족의 귀중한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집안에 중환자가 생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간병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지은이도 새삼 놀랐듯이 “이 글은 소재를 배신하고 말았다. 아이의 병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아이를 중심 정치 팬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연예인에게 열광하듯이 정치인을 따르는 사람을 ‘정치 팬덤’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이 현상은 ‘노사모’가 결성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지만, 대중의 정치인 숭배는 그제야 생겨난 게 아니다. 대중의 갈채와 환호를 받아온 영웅은 언제나 있었다. 1980년대의 김영삼·김종필만 해도 열렬 지지자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3김 시대의 지지지와 오늘의 정치 팬덤은 성격이 다르다. 사회학자 조은혜는 〈‘팬덤 정치’라는 낙인〉(오월의봄, 2023)에서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김대중·김영삼·김종필’을 묶어 이른바 ‘3김 시대’로 칭했던 ‘보스 절망의 끝에서 ‘노가다’를 택한 중년 기자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돌베개, 2023)는 빈곤가정의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마주한 문제를 밝힌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016년부터 열예닐곱 살의 청소년 여섯 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스무 살이 넘도록 심층 면담을 거듭했다(2018년에 특성화고 출신 청소년 두 명이 추가되어 총 여덟 명이 되었다). 지은이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빈곤층의 삶을 팔아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스스로 책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다행히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겨울날 젊은 작가들의 희곡을 읽다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28년 전에 읽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드러눕는 개〉가 〈엎드리는 개〉(안온북스, 2023)라는 제목으로 새로 번역되었다. 1954년 열여덟의 나이로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한 사강은 이 한 작품으로 단번에 한 시대의 문학 영웅이 되었다. 비평가들은 ‘사강의 세계’ 또는 ‘사강스럽다’를 뜻하는 ‘Univers Saganesque’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사강이 고작 20대 중반일 때 두 권이나 되는 전기가 나왔다. 사강의 남자친구 베르나르 프랑크는 마리 도미니크 르비에브르의 〈사강 탐구하기〉(소담출판사, 2012)에서 “전쟁 이후 프랑 도덕적 주체가 사라진 세계에서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작품을 쓴 이중언어 작가다. 그가 두 개 언어로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면서 부모를 따라 망명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노플, 런던, 베를린, 파리를 떠돌아다녔던 그는 ‘V. 시린’이라는 필명으로 시, 희곡, 소설, 평론을 발표하면서 ‘러시아 에미그레 사회’(러시아 망명객 사회)에서 유명해졌다. 파리 생활을 끝으로 1940년 5월 미국에 정착한 그는 여러 유명 대학에서 러시아·유럽 문학을 강의하면서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58년 간신히 출간된 〈롤리타 하나님이 죽었다고 떠벌리는 자들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정혜실의 〈우리 안의 인종주의〉(메멘토, 2023)에는 한국 정부와 사회가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난민, 무슬림에게 행사하는 제도적 인종차별 사례가 가득하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아시아 곳곳에서 찾아온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사이의 ‘다문화 결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문화 결혼을 한 부부는 똑같은 국제결혼이지만 ‘글로벌 패밀리’라고 불리는 백인과 한국인 부부가 당연히 누리는 법적·제도적 처우를 받지 못한다. 많은 제약을 뚫고 혼인신고를 마친 이주민 배우자는 영주나 귀화를 위해 국가에 또 한번 ‘결혼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지금 읽어야 할 튀르키예 소설가의 걸작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쥴퓌 리바넬리는 이십 대 중반이던 1971년, 군사 쿠데타에 반대해 세 차례나 구속되어 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다음, 해외에서 11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동안 그는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고 영화음악을 맡았다. 일마즈 귀니의 198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욜〉이 그가 음악을 맡은 영화다. 자작곡 약 300곡과 30편의 영화음악을 만든 음악가인 그는 영화 시나리오를 여러 편 쓰고 연출도 했다.1978년부터 단편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그는 시·만화·사회평론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야사르 케말에 대한 연 자존감을 키우면 내 삶이 나아질까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자존감이 성공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내게 닥친 어떤 일이든 더 낫게 설명하려는 긍정의 심리로 무장하면 내 삶이 개선될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덤벼드는 ‘그릿(grit, 한국식으로는 ‘노오력’)’을 함양하면 학업 성적이 오를까. 자존심도 긍정적 사고방식도 그릿도 귀찮다면 ‘파워 포즈(power pose)’를 길러보는 것은 또 어떨까. 이 이론(보다는 상식)에 따르면, 구부정한 자세보다 척추를 세우고 어깨를 활짝 편 자세는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준다. 제시 싱걸은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 한국의 보수 우파가 외면하는 역사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이제훈의 〈비대칭 탈냉전 1990~2020〉(서해문집, 2023)은 정전협정 70년이자 한·미 동맹 70년을 맞은 올해의 책이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소비에트(소련)와 동구 공산권이 몰락했다. 냉전의 한 축이던 공산권의 몰락이 지구 전역의 냉전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한반도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국은 소련(1990)·중국(1992)과 국교를 맺었지만, 북한은 미국·일본과 수교하는 데 실패했다. 기울어진 탈냉전 구도는 북한 정권을 불안하게 하고 ‘핵게임’에 몰두하게 만들었다.〈비대칭 탈냉전 1990~2 모차르트는 정말 천재였을까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스핑크스는 단 하나의 수수께끼로 사람들을 벌벌 떨게 했지만, 모차르트는 더 많은 수수께끼를 낸다. ‘모차르트는 천재였는가’ ‘모차르트는 혁명가였는가’ ‘모차르트는 독살당했는가’ ‘모차르트는 가난했는가’.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먹었지만 모차르트는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그의 일생이 빚어낸 수수께끼들은 그의 음악을 더욱 풍요롭고 깊이 있게 해준다. 이채훈의 〈모차르트 평전〉(혜다, 2023)은 그동안 제출된 답안들을 복기하고 종합하면서 새로운 답안을 작성하는 재미를 준다.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스물 지난여름 당신이 여행지에서 했던 일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섬에서 정영신 외 3명이 함께 쓴 〈제2공항 너머, 시민의 대안〉(진인진, 2019)을 읽었다. 공저자 4명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국의 공항들은 갈수록 ‘문제적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라는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공항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2017년부터 2022년 6월까지의 15개 전국 공항(국제공항 8개, 국내공항 7개) 당기순이익 현황을 보면, 인천국제공항과 제주·김포·김해·대구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공항이 매년 적자를 기록했다. 강원도 양양국제공항은 사실상 문을 닫았고,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1990년대는 대체 어떤 시대였단 말인가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허윤의 전작 〈1950년대 한국 소설의 남성 젠더 수행성 연구〉(역락, 2018)와 〈남성성의 각본들〉(오월의봄, 2021)은 한국 근대문학이 국가와 민족을 수립하고 가부장제와 남성성을 확립하기 위해 수행했던 역할을 밝혔다. 반면 이번에 새로 나온 〈위험한 책읽기〉(책과함께, 2023)는 남성이 주도권을 쥔 국가와 민족 만들기 서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들의 저작과 독서가 주제다. 1908년, 고등여학교령이 공포되면서 한국 땅에 여성 교육을 위한 최초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지만, 여성이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 여성의 본분인 가 눈이 펑펑 내리는 이 여름밤에 추천하는 시집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바람이 와서 몸이 되다〉(창비, 2023)는 44년 동안의 시작 활동을 중간 결산한 고형렬 시인의 작품집이다. 단독 시집 열여섯 권과 장시집 두 권에서 고루 뽑은 시를 수록한 시선집에는 시인의 첫 시집 〈대청봉 수박밭〉(청사, 1985)의 표제작 ‘대청봉 수박밭’이 당연히 실려 있다. 이 시는 “눈이 펑펑 소청봉에 내리면 이 여름밤/ 나와 함께 가야 돼. 상상을 알고 있지/ 저 큰 산이 대청봉이지/ 큼직큼직한 꿈 같은 수박”으로 시작한다. 설악산에는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가. 대청봉에 수박밭이 있는가. 전혀 사실일 수 없는 두 진술 예수께서 묻노니, 내가 너희에게 날씬하라 하였느냐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두 개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이 쓴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호밀밭, 2023)는 탈진실 시대로 묘사되는 지금,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2020년에 출간된 것을 보면 지은이로 하여금 이런 우려를 하게 만든 장본인은 도널드 트럼프다(‘열대의 트럼프’라는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헝가리의 독재자 빅토르 오르반도 이런 우려에 기여했다). 트럼프는 영광스럽게도 이 책에서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와 파시즘의 완성자 히틀러와 동격이 되었다.지은이는 파시즘의 가장 큰 특색이 “주로 진실을 냉전은 어떻게 동아시아를 바꿔놓았는가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일본은 두 차례 법적 전후 청산 절차를 밟았다. 첫 번째는 1946~1948년에 이루어진 극동국제군사재판(일명 도쿄 전범재판)이고, 두 번째는 1951년에 조인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공식 명칭은 대일평화조약)이다. 두 절차에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이해 당사국 대부분이 참여했으나 주도권을 행사한 나라는 미국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사용한 군기인 욱일기를 전범기로 간주해서 기피하고 있지만, 정작 금지되어야 할 것은 일장기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추축국(독일·이탈리아·일본) 가운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