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자립준비청년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9월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추석 연휴 이후 첫 공개 행보로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충남자립지원전담기관을 방문했다. 8월18일과 24일 광주광역시에서 아동양육시설(보육원) 출신 청년 두 명이 잇달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데 따른 것이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과의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두 청년의 죽음 이후에 한 대통령의 발언이었는데, 사실관계는 조금 달랐다. 〈시사IN〉이 확인한 결과, 두 청년은 대통령이 책임지겠다고 말한 ‘자립준비청년’이 아니었다. 두 청년은 광주자립지원전담기관이 담당하는 대상자 명단에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됐을까. 두 청년의 삶과 죽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8월24일 사망한 A씨(19)가 2020년까지 머물렀던 보육원에 입소한 시기는 2015년이었다. A씨의 가정이 위치한 지역 행정복지센터는 A씨의 아버지가 양육을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해 A씨와 동생을 광주 광산구의 한 보육원에 입소하도록 했다. 군 생활 이후 트라우마 장애를 앓아온 A씨의 아버지가 자녀 두 명을 홀로 양육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공적제도를 통해 더 나은 양육 환경을 제공받았지만 A씨는 보육원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보육원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꾸준히 원가정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했다. 외출 제한 등 통제가 이루어지는 보육원 환경에 답답함을 느꼈고, 홀로 있는 아버지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며 A씨는 우울 증세를 보이고 시설 규칙을 어기기도 했다. 그러나 보육원에는 아동들을 면밀히 보살필 만한 인력이 충분치 않았다. A씨가 머물렀던 보육원에선 현재 아동 50명가량이 생활하고 있지만 심리 상담을 담당하는 임상심리상담사는 단 한 명이다. 보육원 관계자는 “아동이 70~80명이었을 때도 임상심리상담사가 한 명뿐이었다. 한 명이 그 많은 아동을 담당하는데, 세세한 케어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A씨의 우울증과 문제 행동이 나아지지 않자 보육원은 통고제도를 통해 A씨를 아동보호치료시설로 전원시키기로 결정했다. 통고제도는 아동복지시설장 등이 법원에 아동에 대한 보호처분을 요청하는 절차를 말한다. 법원은 A씨에게 양육을 넘어선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그렇게 2020년 2월 A씨는 6호 처분(6개월 처분)을 받고 보육원을 떠나 전북 고창군의 한 아동보호치료시설로 떠나게 됐다.

통고처분 1회 연장을 포함해 1년간의 생활이 끝난 2021년 2월 중순, A씨를 보호하던 복지시스템에 허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선된 아동복지 정책의 실현이 A씨의 퇴소 시점보다 한 발짝 늦게 이루어지면서다. 시작은 A씨의 퇴소 결정이었다. 퇴소 시점이 가까워오자 보호치료시설은 A씨가 있던 보육원에 다시금 A씨를 보호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그러나 보육원은 A씨를 복귀시키지 않고 원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3월 초가 생일인 A씨가 만 18세가 되기까지 보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6월부로 시행된 아동복지법은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만 24세까지 보호기간 연장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지만, (A씨가 아동보호치료시설에서 나올) 당시에는 학업 등의 사유가 없다면 보호 연장이 불가능했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진학은 포기했던 당시의 A씨는 보호 연장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보육원은 추가적인 보호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A씨를 원가정으로 돌려보냈다.

원가정으로 복귀할 당시, A씨는 퇴소 조치가 옳은지 공적으로 검토받지 못했다. 2021년 6월30일부터 시행된 아동복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보호조치가 종료되는 모든 아동은 각 시군구 사례결정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아동의 복리에 반하지 않는다고 인정’되어야만 만 18세가 되지 않은 보호대상 아동이 원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다. 그러나 A씨가 퇴소하던 2021년 2월은 사례결정위원회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이었다. 따라서 아동에게 무엇이 최선일지 공적 판단 없이, 자신의 희망에 따라 A씨는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원가정이 A씨가 머무르기에 적합한지는 검토되지 않았다.

보름 차이로 자립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불과 보름 차이였지만 이 결정이 A씨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다. A씨가 ‘중간 보호종료아동’으로 분류돼 모든 자립 지원정책으로부터 제외됐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으로서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 등 혜택을 받기 위해선 만 18세가 넘은 이후에 보호가 종료돼야 한다. 만 17년 11개월이던 A씨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없었다. A씨는 자신과 아버지에게 주어지는 기초생활수급 및 장애수당 등을 합친 110만여 원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사후관리를 통해 퇴소 아동이 보이는 위험 징후를 알아챌 수 있는 기회 역시 A씨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의 ‘2021 아동분야 사업안내’는 시군구에서는 보호조치가 종료된 아동에 대해 1년간 4회 사후관리를 실시하고, 위험요인이 발견될 시 사후관리를 연장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A씨는 어떠한 공공기관으로부터도 사후관리를 받지 못했다. A씨가 퇴소하던 2021년 2월 당시 보호치료시설이 위치한 고창군에 사후관리를 위한 인력과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창군 관계자에 따르면 2021년 7월이 되어서야 고창군은 본격적으로 사후관리를 시작했다. 2016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사후관리 조항이 만들어진 지 5년 만이었다.

A씨의 원가정이 위치한 광산구청은 A씨의 원가정 복귀보다 빠른 2020년 10월부터 전담인력을 두고 있었지만 A씨에 대한 사후관리를 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던 고창군이 광산구청에 사후관리를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A씨가 보인 위험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던 추가적인 기회는 허무하게 날아갔다. 그러던 중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불행이 A씨를 덮쳤고, 며칠 뒤 A씨는 “내가 살아온 삶이 고달프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8월18일 사망한 B씨(19)는 사망 직전까지 위험 징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B씨는 지난해 11월부로 만 18세가 됐지만 보육원을 떠나지 않은 ‘연장 보호아동’이었다. 특별한 사유 없이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이었지만, B씨는 보육원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광주 소재 대학에 진학해 보호 연장 사유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하며 B씨는 자립 의사를 꾸준히 밝혀왔다. 그러나 보육원 측은 B씨에게 연장 보호를 권유했다. 경기도에서 광주광역시에 있는 보육원으로 옮긴 지 2년밖에 안 되어 B씨가 광주에 이렇다 할 연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B씨가 계속 자립을 원하자 보육원 관계자는 일단 “독립적인 생활을 체험해보자”라고 권유했다. 보육원 소속으로 남아 있는 대신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자립을 준비해보자는 것이었다.

아직 자립 전 단계였기 때문에 B씨에게 별도의 자립정착금이나 자립수당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B씨에게는 자신 명의로 된 통장에 들어 있는 후원금 700만원이 있었다. 시설 후원금과 분리해 각 아동 명의의 통장에 기부자들이 후원해준 금액이었다. 보육원에서 이 통장을 B씨에게 준 것은 아니었지만, B씨가 이 돈을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간편 송금 서비스인 토스(toss)를 통해 이 돈을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B씨는 2학기 기숙사비 100여만 원을 직접 내고, 10만~30만원씩 여러 번에 걸쳐 후원금을 사용했다. 두 달이 안 되어 B씨에게 남은 금액은 90여만 원뿐이었다.

ⓒ김흥구

‘연장 보호아동’이 겪는 중압감

B씨는 후원금 계좌에서 자신 명의의 다른 통장으로 돈을 이체해 사용했다. 따라서 보육원이 보유한 통장에는 이체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 B씨가 어디에 후원금을 사용했는지 알지 못한다. 경찰 역시 범죄 혐의점이 없어서 B씨 계좌 사용 내역을 따로 조회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B씨는 사망 이틀 전 보육원 관계자와 함께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쓴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B씨가 추후 자립을 한다면, 자립정착금 1000만원과 디딤씨앗통장에 있는 1100여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발표). 자립 5년 차까지 자립수당 35만원이 다달이 제공되고, 기초생활수급비 50여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B씨가 생활고로 인해 처지를 비관했다고 쉽사리 넘겨짚기 어려운 이유다.

연장 보호아동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 한국사회보장정보원 김지선 부연구위원은 B씨의 사망에 대해 “결국 사람이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이 연구를 진행하며 만나본 연장 보호아동들이 자주 반복하던 말은 “혼자 해야 한다”였다. 여전히 보육원에 소속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막 발을 내디딘 청년들은 혼자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연장 보호종료아동의 불안감은 여실히 드러난다. 2019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장보호 상태인 아동 중 44.9%에 달하는 아동이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시설 선생님과 대화를 통해 대처했다는 응답은 3.2%에 불과했다. 평균 11.8년간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여전히 시설에 소속돼 있음에도 시설 선생님은 아동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B씨는 주변 어른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힘든 티를 내지 못했고, 따로 떨어져 살았던 부모와도 소원했다.

‘이렇게 했으면 살았을까’ 하는 질문은 언제나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다. 이제 와 무엇을 바꾼다고 한들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그 죽음이 무의미해지지 않기 위해선 그 죽음을 사회가 한 발자국 나아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기자명 광주·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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