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질병관리본부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매일 진행되던 브리핑이 어린이들에게 받은 질문으로 채워졌다. 영상을 통해 전해진 어린이들의 질문은 훈훈한 반응을 불러왔다. 그 가운데 “어떻게 하면 질병을 관리하는 본부장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그 질문을 한 어린이가 조금 부러웠다. 정은경 본부장 같은 롤모델을 가진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세계는 좀 더 넓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학동아〉에 연재되었던 만화를 묶어 펴낸 이 책 〈숙녀들의 수첩〉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심정이 되었다. ‘숙녀들의 수첩’은 18세기 실제 영국에서 발행되었던 여성 잡지(Ladies’ Diary and Women’s Almanack)의 이름이기도 하다. 창간호는 요즘 우리가 보는 여성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애, 결혼, 아름다움을 다룬 에세이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발행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숙녀들의 수첩〉은 수학 문제와 수수께끼를 싣는 잡지로 탈바꿈한다. 1709년 6호를 만들던 존 티퍼 편집장의 말이다. “요즘 여자들은 요리보다 수학을 더 좋아하니까 앞으로는 수수께끼와 수학 문제만 싣겠다!”

여학생들이 주로 문과를 택하고 이공계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훨씬 적은 요즘 세상에, 여성들이 취미로 수학 문제를 풀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차라리 허구처럼 여겨진다. 대체 지난 2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만화 사이사이에 책갈피처럼 끼워져 있는 글이 이런 의문에 답한다. 수학과 과학으로부터 여성들이 유리(遊離)되었던 과정을 짚으면서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이를 다시 반박한다. 학습만화를 바탕으로 꾸려진 책이지만 글의 비중이 적지 않고 그 무게 또한 가볍지 않다. 여전히 어린이들이 부럽긴 하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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