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5월25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뉴스의 주제는 아무래도 코로나19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 운동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은, 아직 일본의 일반 여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못하다. 일본 정부는 5월28일 현재까지 공식 대응하지 않았다. 일본 지지통신은 “일련의 소동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본 정부도 우선 ‘(한)국내 문제’로서 상황을 지켜볼 태세다. 그러나 일·한 관계를 악화시킨 하나의 원인으로 보면서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라고 5월18일 전했다.

일본 각지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의 모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의 양징자(재일동포 2세) 공동대표는 최근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일본에서 한국 소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주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일본어판이다. 〈한겨레〉 일본어판이 조금 다른 정보를 주는 정도다. 이번 논란에서는 특히 〈조선일보〉에서 온통 이 소식(정의연 논란)만 번역하는 상황이다. 인터넷상에서 혐오 발언을 하는 ‘우익’들은 그런 기사를 찾아 보면서 정의연과 이용수 할머니의 대결이 재미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이번에 윤미향 전 이사장이 ‘이용수 할머니가 처음 정대협(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전화했을 때 자신의 일이 아니라 친구 일이라고 했다’고 한 것을 의문스럽게 전한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위안부’ 피해자임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당시 사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윤 전 이사장이 이용수 할머니가 거짓 위안부라는 것을 폭로했다’고 잘못 이해하는 식이다.”

일본 언론들은 우익처럼 노골적으로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연을 싸잡아 비난하는 식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전하면서 자신들이 정의연에 대해 평소 비판하고 싶었던 바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 양징자 대표의 견해다. “〈산케이 신문〉부터 〈아사히 신문〉까지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과 윤미향 전 이사장을 이렇게 비판했다는 것만 열심히 쓰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와 정의연 쪽에 서 있던 일본 시민으로서는 그런 정보밖에 전달되지 않으니 당황스럽다.”

일본에서 이번 논란에 가장 앞장선 매체는 극우 성향 일간지 〈산케이 신문〉이다. 이 신문은 일종의 사설인 ‘주장’이라는 코너에 5월20일 “위안부 단체 반일 집회 그만두고 소녀상 철거를”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글은 ‘수요집회가 증오를 가르치고 있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을 언급하며 “(이씨의) 비판에 귀 기울여 반일 증오의 상징인 위안부상을 조속히 철거하기 바란다”라고 주장했다. “이씨가 이번에 정의연에 대한 비판을 강화한 이유는 모르지만, 반일 집회를 그만둬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단체의 부적정한 운영 등을 부각시킨 것도 의의가 있다.”  

우익 성향으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요미우리 신문〉은 5월24일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인터뷰를 실었다. 천 이사장은 정의연(과 그 전신인 정대협)에 대해 “‘위안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다”라고 말했다. 특히 ‘사이토 안’과 관련한 특유의 주장을 피력했다. 사이토 안이란, 사이토 쓰요시 당시 일본 관방 부장관이 내놓은 ‘위안부’ 문제 복안으로, 주한 일본 대사가 피해자를 한 명씩 면회해 일본 총리의 사죄 친서와 일본 국가예산에 의한 보상금을 직접 전달하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인 천영우 이사장은 사이토 안에 대한 의향을 묻기 위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5~6명을 만났다.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전(前) 위안부’ 할머니(일본 언론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전의 위안부’로 부른다)들은 살아 있는 동안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금을 받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측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정의연은 (정대협 시절부터)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 인정’을 강경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 내용이 난해했기 때문에 할머니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천 이사장은 또한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가 사이토 안에 기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였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윤씨가 순수하게 ‘전 위안부’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녀와) ‘전 위안부’ 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구나라고 깨달았다. 사이토 안은 ‘전 위안부’에게 나쁜 일이 아니지만 윤씨에겐 자신의 역할을 끝내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연합뉴스5월21일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정의연 압수수색과 회계 관련 의혹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논란의 핵심은 ‘법적책임 인정’

결과적으로 사이토 안은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서 합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윤 전 이사장이나 당시 정대협의 반대 때문에 사이토 안이 불발된 것은 아니다. 천 이사장의 인터뷰는 ‘위안부’ 피해자와 정대협의 이해관계가 달랐다는 의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천 이사장 개인뿐 아니라 일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인식인 듯하다. 양징자 대표는 “천영우 이사장 발언은, 일본에서 보수뿐 아니라 리버럴(진보) 세력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정대협은 자신들이 (단체로서) 존속해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논리다”라고 말했다.

논란의 핵심에 ‘법적책임 인정’ 요구가 있다.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 인정을 요구해왔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이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라며 법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버텼다. 교착상태가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많은 피해자들이 사망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설립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총리 명의의 사죄 편지와 함께 (민간 모금으로 마련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정대협은, 민간 모금으로 보상하는 방안은 ‘일본 정부가 법적책임을 인정한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모호하다’라며 반대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이때 보상금을 받은 피해자는 61명이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의 30%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28일의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에는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 표명,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을 전제로 한 재단 설립이 합의 내용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 합의로 당시 생존했던 ‘위안부’ 피해자 47명 중 70% 이상에 해당하는 36명이 1억원씩 지급받았다. 정의연은 합의에 반대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합의를 사실상 백지화했다.

진보 성향인 와다 하루키 도쿄 대학 명예교수는 5월21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2·28 ‘위안부’ 합의는 정의연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연이 주축이 돼 2014년 6월 도쿄에서 개최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을 거론하지 않은 채 사죄의 표시로 돈을 내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칫 정의연이 합의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면서도 나중에 합의를 거부했다는 취지로 읽힐 수도 있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2014년 아시아 연대회의의 결의문이 일본 정부에 법적책임 인정 요구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결의문 작성 주체들은 와다 하루키 교수의 오독이라고 말한다. 참여자 중 한 명인 양징자 대표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 “2014년 결의문은, 단순히 ‘군의 관여가 있었다’를 넘어서 일본군이 위안소를 기획하고 설치, 관리·통제했으며 그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구체적으로 인정하면 그것이 법적책임 인정이라는 의미였는데, 와다 하루키 교수가 오해하고 있다. 2015년 12·28 합의의 경우 ‘책임을 느낀다’는 말은 들어갔지만 우리가 밝히라고 한 사실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세 가지 독소조항(소녀상 철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 정대협이 문제 해결을 바라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와 지원 단체들이 일본 측 제안을 받아들여 입을 다물면 이 문제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해결은, 일본 정부의 사실 인정과 공식 사죄, 배상 이후에도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정대협이 할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

일본 우익 언론들은 이번 논란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합의 백지화를 타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 신문〉은 “문재인 정권은 위안부가 아니라 정의연을 피해자라고 착각했다. 문 정권이 말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정의연 중심주의였다”라는 천영우 이사장의 말을 비중 있게 인용한다. 일본의 진보 성향 언론들은 ‘위안부’ 운동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거론한다. 〈마이니치 신문〉의 호리야마 아키코 서울지국장은 5월23일 ‘피해자 중심주의 어디로 가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과 일본은 피해 인정, 사죄 같은 운동적 성과를 초점으로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나 피해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명예를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 아닌가”라고 썼다.

ⓒ양징자 제공2018년 3월13일 정의연의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청년학생기행’ 일본인 참가자들이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정의연을 지지하는 일본 청년들

양징자 대표는 위안부 운동의 성과를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류가 없는 운동은 없다. 개선해야 할 여지가 있겠지만,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운동가로 변화하면서 사람들을 바꾸어놓은 운동은 역사상 처음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위안부’ 동원)을 기억하고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방향성이 바뀌면 안 된다. 이용수 할머니와도 그 방향성은 여전히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기억하며 연대하고 있다. 2017년 일본의 ‘위안부’ 지원 단체들은 ‘희망씨앗기금’을 만들었다. 양국 청년들이 만나 토론하는 ‘투어’도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지난 5월14일 연대 성명을 냈다. 반나절 만에 82명이 참여했는데 그중 51명이 일본인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좀처럼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웠습니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감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저했고, 일본에서는 가해국의 국민이 나서도 될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정의연의 수십 년에 달하는 활동 역사,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두 눈에 담은 사실들, 수요집회에서 하나 되어 외친 구호가 우리들을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활동의 원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이후의 어떠한 왜곡과 날조에도 정의연을 지지하고 함께할 것입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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