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가치를 열어가는 부천연대4월20일 부천북부역 마루광장에서 시민 40여 명이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 및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장자(莊子)〉에는 ‘厲之人 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 惟恐其似己也’(여지인 야반생기자 거취화이시지 급급연 유공기사기야)라는 구절이 있다. 불구자가 밤중에 자식을 낳고서 급히 불을 들어 비춰보았는데, 그가 서두른 까닭은 자식이 혹여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는 내용이다. 신영복 선생은 이 구절을 “비통하리만큼 엄정한 자기 응시, 이것은 그대로 하나의 큼직한 양심”이라고 해석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들(정확히는 피의자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있다. 가장 먼저 검거된 피의자 조 아무개씨의 실명과 얼굴 사진 그리고 나이가 공개되었다. 얼굴을 드러낸 조씨가 이송되면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이후 검거된 대화방 운영자들인 피의자 강 아무개씨, 이 아무개씨, 그리고 문 아무개씨의 신상도 차례차례 공개되었다. 아직 검거되지 않은 운영자들은 물론이고 대화방에 가입한 사람 전원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9년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검거를 계기로 2010년 4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정강력범죄법’)에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가 신설됐다. 같은 시기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에서도 당시 제23조(현행 제25조)를 두어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하도록 하였다.

그 이전에도 ‘신상공개’ 제도는 있었다. 이전의 신상공개는 성폭력처벌법 제42조 이하 및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 이하 규정과 같이 법원 확정판결에 따른 보안처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이 있었다. 즉, 확정판결 받는 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사제재로서 기능했다. 반면 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 2, 성폭력처벌법 제25조에서 규정한 신상공개(같은 취지로 ‘범죄수사규칙’ 제178조)는 확정판결을 받기 전 수사 단계의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보안처분의 성격을 띤 이전의 신상공개는 가족 등에 대해 연좌제와 같은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비록 형벌과 보안처분은 형식적으로는 다른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이중처벌과 같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곤 했다. 다만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자에 대한 형사제재의 하나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재범 방지라는 뚜렷한 명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 중인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전자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상 노출에 따라 방어권이 위축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 그리고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근본 문제를 야기한다. 그뿐인가. 피의자 신상공개는 형법을 통해서 일반적으로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고(제307조 제1항), 특히 피의사실 공표라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제126조).

물론 피의자 신상공개는 일정한 요건과 절차가 정해져 있다. 공개의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어야 한다.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필요할 때’(성폭력처벌법) 혹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이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특정강력범죄법)을 요건으로 한다. 2015년부터 경찰서나 지방경찰청별로 ‘신상공개위원회’가 신설되어 이곳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신상공개 시점은 피의사실에 대한 법원의 1차 판단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는 구속영장 발부 시점 이후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대개 ‘강력범 얼굴 및 신상공개 지침’에 따라,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미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의 경우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을 시 구속영장 발부 전에 신상공개위원회 결정을 거쳐 공개할 수 있다. 만약 수배 대상자라면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의해 얼굴 사진과 성명, 나이는 물론 직업, 신체의 특징 등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개할 수 있지만,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의 경우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으로 범위가 축소된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는 자신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발언하기도 한다.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스스로를 영웅시할 수도 있고,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더러는 양형의 참작을 받기 위해 전략적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일단 신상이 공개되면 사실상 돌이킬 수 없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함으로써 제도의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한다. 하지만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에 대해서는 특별 예방(범인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재사회화)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반 예방(범죄자를 처벌함으로써 다른 일반인들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함)의 효과 또한 검증된 바 없다. 그렇다면 국민의 알권리는 무엇일까. 응보 성격의 망신주기와 호기심, 그에 편승한 언론의 상업주의에 그 실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사IN 자료2009년 2월2일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현장검증 모습.

공개된 피의자 신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공공의 이익’을 좀 더 적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이해할 필요는 있다.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처럼 디지털을 활용한 범죄는 피의자가 신상공개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갖기 때문에 의외로 예방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지금 신상공개에 보내는 국민의 지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낮은 처벌에 대한 반발, 즉 검사의 구형과 법원의 판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신상공개가 오히려 성범죄자에 대한 효과적이고 정당한 처벌로 국민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점에서 신상공개 제도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많은 문제를 무릅쓰고 신상공개를 운용할 필요성과 정당성 그리고 운용의 합리성을 도모해야 한다. 우선 ‘공공의 이익’의 내용에 대한 합리적 해석 및 공공의 이익과 침해 법익 사이의 실제적 조화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원칙적이고 뻔한 얘기 같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얻어지는 이익과 침해되는 법익 사이를 면밀하게 따지는 작업, 즉 ‘형량’을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형량 작업을 통해 신상공개 판단의 자의성과 비일관성을 줄여야 한다. 더 나아가 신상을 공개할 만큼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높은 범죄와 행위가 무엇인지 알려줌으로써 법치국가적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신상공개가 자칫 피의자의 마이크로 전락하거나 가해자 서사(敍事)의 계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가해자의 불필요한 신상 노출은 ‘가해자도 알고 보면 지극히 평범하거나 순수한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동정 여론을 형성하거나, ‘오히려 비난받을 사람은 피해자였다’는 식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공개된 피의자의 신상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저 사람이 나와 무관한 인격’이라는 점을 애써 확인하고 그를 타자화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내 안에 잠재할 수도 있는 또 다른 인격의 가능성을 응시함으로써 그를 자기화하려는 것일까. “비통하리만큼 엄정한 자기 응시”야말로 신상공개 제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여야 한다.

기자명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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