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극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여성영화제에는 있었다. 스크린에는 그 남자의 애인, 엄마, 딸 또는 피해자로만 그려지지 않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관객들은 같은 장면에서 소리 내어 웃고, 같은 장면에서 분노했다. 각자가 겪은 경험들이 영화를 통해 ‘만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일지씨(34)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알게 된 이후 “신세계를 경험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후 독립영화제에 뛰어들었다. 2016년부터 4년간 한국퀴어영화제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상상도 못할 정도로” 영화를 보고 또 봤다. 관객이 아닌 프로그래머가 되어보니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 많았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독립영화가 많은데” 빛을 보는 영화는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뿐인 영화제에서 작품이 관객을 만날 기회는 두세 번이 다였다. 소수의 장편영화들은 IPTV나 OTT 서비스로 유통되기도 했지만, 영화제가 엄선한 단편영화들은 영화제가 끝나면 길을 잃곤 했다.
“기존 플랫폼에서는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작품들만큼이나, 기존 남성 중심적 영화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도 많아졌어요.” 그 간극을 좁히고 싶었다. 조일지씨는 동료 6명과 함께 지난 12월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를 열었다.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같은 일종의 OTT 서비스이지만 여성 감독이 만들거나, 여성 서사이거나, 젠더 이분법에 도전하는 영화들만 다룬다. 이경미 감독의 데뷔작 〈잘돼가? 무엇이든〉부터 신승은 감독·손수현 주연의 〈마더 인 로〉 등 180여 편을 보유하고 있다.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몸’ ‘집을 떠난 여성들의 이야기’ 등 퍼플레이의 관점에서 제공되는 큐레이션도 있다.
퍼플레이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 추천을 부탁하자 조일지 대표는 “조명받지 못한 작품과 배우들을 알리고 싶다”라며 영화 세 편을 언급했다. 〈셔틀런〉 〈그녀의 속도〉 〈아역배우 박웅비〉다. 모두 아역배우가 나오는, 즉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라는 게 어른의 시선으로 쓰인 세계잖아요. 어린이의 관점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요.” 여성영화는 결국 누군가의 소외와 불편함을 말하는 영화였다.
현재 회원 수는 1만명이다. 지난 두 달간 진행된 ‘퍼플레이어 5만인 양성 프로젝트’를 통해 회원 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영화 한 편당 500원에서 2000원씩 결제하는 시스템을 만든 건 감독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일정 몫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여성영화인들이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만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있길 바라요.” 배급사 혹은 감독에게 수익금 70%가 배분된다. 더 많은 여성 서사를 ‘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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